도전은 새로운 기회가 된다

포트럭이 들려주는 회사생활 이야기(3)

by 포트럭
R&D부서를 떠나다

입사 후 R&D부서에서 근무한지 1년반쯤 되었을 때 일이다.


회사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때였다. 회사 단지 내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8시쯤 일어나 대충 씻고 8시 20분에 나서면 8시 30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업무를 마치면 저녁에 회사 근처에서 선배들과 술자리를 겸한 식사를 하고, 사택에 들어와 자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회사는 대전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내 업무는 우리 회사가 아니면 전혀 써먹을 수 없는 일이었고,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끼는 일도 아니어서 회의감도 많았다.


거기다가, 가끔 서울 출장을 와보면 왜 이렇게 똑똑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이 많은지, 뭐가 그렇게들 바쁜지, 나만 뒤쳐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 속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회사 인사이동 시즌이 왔다. 서울 본사의 부동산 사업본부에 근무하는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부 내 이동자가 생겨 충원이 필요한데, 만약 내가 생각이 있다면 부서장에게 추천해 주겠다는 것이다.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데, 나는 다른 입사동기들과 달리 채용 때부터 이미 R&D본부 배치가 정해져 있었고, 인턴 시절에도 그곳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던 터라, 1년 반 만에 이동하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아침 회의 중 부장님이 혹시 인사이동을 희망하는 직원이 있으면 본인에게 얘기해 달라 신다. 용기를 냈다. '일단 말씀은 드려보자. 안된다고 하시면 마는 거고..' 이런 심정이었다.


부장님께 서울 부동산 사업본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가고 싶다고 했다. 부장님은 깜짝 놀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하셨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별 불만이 없었고, 더군다나 난 부동산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부장님은 안된다고 하셨다. 좀 더 있으면서 전공을 살려 일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부장님께서 국장님께 이 사실을 말씀하신 모양이다. 그 날 저녁 국장님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셨다. 당시 나의 사수였던 선배도 같이 자리하기로 했다.


저녁식사 자리로 가기 전, 선배가 물었다. 정말 가고 싶냐고.. 가고 싶다고 했다. 선배가 다시 말했다. 부동산사업부는 회사 내에서 힘 있는 부서도 아니니 좀 더 있다가 회사 핵심부서인 전략실에 자리가 나면 본인이 힘을 써서 보내 주겠다는 것이다. (선배는 노조 간부로, 회사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기회라는 게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갈 수 있으면 가고 싶다고 했다. 단, 국장님이 반대하시면 안 가겠다는 말은 분명히 했다.


그렇게 선배와는 얘기를 끝냈고, 선배와 함께 국장님과의 저녁자리로 이동했다. 국장님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참 불편했다. 내가 괜한 얘기를 했나 싶었다. 국장님이 가지 말라시면 바로 알겠다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가 먼저 국장님께 말을 꺼냈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서 부동산 부서로 보내주자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에 대해 느꼈던 점들, 내가 해온 일들, 그리고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등.. 선배는 너무나 애정 어린 말들로 진심을 다해 국장님께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선배가 너무 고마웠다. 평소에는 짜증도 잘 내고, 상처받기 쉬운 말도 잘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원래 표현이 서투른 것이지, 나를 후배로써 정말 아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배다.


국장님은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셨다. 그렇게 저녁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국장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연락이 왔다. 초조한 마음으로 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국장님은 웃으시면서 차를 권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디에 있건, 회사를 위해 일하는 건 매한가지니, 원하는 곳에 가서 더 열심히 일하라고... 따뜻한 차처럼 온기가 넘치는 말이었다. 나는 울음이 날 뻔했다. 선배와 국장님께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 부서에 미안했다.






부동산 부서에서의 당황스러웠던 첫날

부동산 부서가 있는 서울 본사로 출근한 첫날이었다.


아침에 부장님께서 "티타임 하시죠" 하시길래 씩씩하게 "예" 하고 일어났는데, 주변에서 다들 쳐다보시며 웃었다. 예전 부서는 부서단위로 부장과 직원 간 티타임을 했는데, 여기는 실장과 각 부장들이 티타임을 하셨고 부서 티타임은 별도로 없는 것이었다. 우리 부장님이 선임부장이셨기 때문에 다른 부장님들에게 티타임 할 테니 실장실로 들어오라고 부르신 것을 내가 대답한 것이다. 가뜩이나 긴장상태였는데, 얼굴까지 빨개졌다.


업무는 더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건폐율 용적률도 모르는 상태에서 왔으니, 자료를 읽어보는데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오후쯤 되니 부서에서 말없이 조용하던 선배가 나를 불렀다. 목에 엄청 힘을 주고는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냐, 잘하는 게 뭐냐 꼬치꼬치 물었다. 그리고는 여기 분위기는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하고 등등 충고하듯이 한참을 설명했다. 선임 선배인 줄 알고 네네 했는데, 알고 봤더니 1달 전에 전문직으로 채용된 사람이란다. 이런... 입사로는 내가 선배인 거다. 아무튼, 범상치 않던 그 직원은 회사가 안 맞았는지 몇 주 뒤에 이직했다. 회사생활 10년 경험상 목에 힘주는 사람 허당인 경우가 많다.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다
(책으로^^;;)

전입 이튿날, 나를 부동산 부서로 추천해 준 동기가 책을 한 권 선물로 줬다. 제목은 "거래의 기술".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온갖 기행과 극우적 발언으로 '돌+아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부동산 디벨로퍼로서의 트럼프는 말 그대로 레전드다. 미래를 내다보는 인사이트와 빠른 판단력,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설득력, 그리고 쇼맨십과 승부사 기질까지...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디벨로퍼의 업무에 대해, 부동산을 보는 관점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부동산 분야의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트럼프의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나는 트럼프를 통해 부동산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도널드 트럼프의 명언 몇 가지를 소개한다.


"부동산은 첫째도 위치(Location), 둘째도 위치(Location), 셋째도 위치(Location)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급 되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다.)


" 그것은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단단하고, 아름답다. 또한, 예술적이기까지 해서 나는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부동산이다."


"투기꾼은 '집값이 얼마나 오를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만 승부사는 '내가 여기에 무엇을 지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은 이기기 위해 투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많이 공부해서 리스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28시간을 순수하게 독서시간으로 보낸다."



맨해튼, 시카고 등 주요 도시에 위치한 트럼프 빌딩들. 하나같이 최고 입지의 랜드마크다.




내 인생을 바꾼 이야기

부동산 부서에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다. 서무 외에 딱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은 남아돌았다. 그때 내 인생을 바꾼 칼럼을 읽게 되었다.


어느 월스트리트 담당 기자가 쓴 글이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나는 세계 금융/경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며, 아침 출근시간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봐 왔다.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7시쯤 되면 운전기사가 차를 모는 고급 세단이 회사로 들어온다. 임원이 출근하는 것이다. 8시가 되면 중대형 세단을 직접 몰고 회사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부장/팀장급 관리자들이다. 그리고, 8시 50분쯤 되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헐레벌떡 뛰어 회사문을 박차고 사람들이 밀려 들어온다. 바로 대리/사원급 직원들이다.

그런데 그중 7시에 출근하는 사원급 직원들이 있었다. 10년쯤 지나고 보니 그들이 임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취직했으니 임원까지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은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았다. 당장 다음날부터 무조건 아침 7시까지 출근하기 시작했다.


일찍 출근하니 평소보다 2시간이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에 부동산 전반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아야 했는데 공인중개사 과목을 보니, 딱 필요한 것들이었다. (부동산학개론, 부동산공법, 공시법, 부동산세법, 공인중개사법, 민법)


그렇게 공인중개사를 취득했고, 공부 내용은 전입 초기, 업무를 익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사업타당성 분석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재무 공부를 하며 회계관리 1급과 재경관리사를 취득했다.


몇 해 전에는 호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이 또한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공부를 하면서 호텔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회사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했다. 아침 2시간은 하루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여러 날이 쌓이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외 효과도 있었다. 월스트리트 이야기처럼 우리 회사도 임원들이 일찍 출근하는데, 출근하면 내가 항상 나와 있으니 그분들에게 나는 성실한 직원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임원처럼 회사 경력이 긴 분들은 성실함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조기출근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고, 지금도 나는 부서에서 제일 일찍 출근하는 직원이다.





Epilogue


1. 나는 회사 정책에 반해 부서이동을 했기 때문에, 인사실 입장에서는 블랙리스트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그 일로 윗사람들에게 찍히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 남의 일은 쉽게 잊는 사람들의 특성상 그 당시에만 잠깐 이슈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회사에서 본인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후회하지 말고 요구하시길. 단, 몇 번 부딪쳐 봐서 안될 거 같으면 깔끔히 포기하고. (어느 선을 넘지 않는 게 중요하다.)


2. 부서 이동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R&D부서의 사수는 진심으로 나를 아껴준 가장 고마웠던 사람이다. 그리고, 국장님은 내가 부동산으로 옮긴 후에도 서울 본사 출장을 오시면 종종 들러서 격려의 말씀을 주셨고, 내가 승진을 하면 먼저 축하 전화를 주시는 너무나 고마운 분이셨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그분의 온화한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나에게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고, 그들은 회사생활 고비의 순간마다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나도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3. 발레리나 강수진은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보잘 것 없는 하루하루를 반복해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 낸사람"이라고 답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세요. 그리고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세요. 많은 변화가 생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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