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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트럭 Sep 22. 2017

12시 7분, 몬스터,
그리고 세 가지 이야기

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 영화편

모처럼 휴가를 내고 영화관을 찾았다. 예매한 영화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극찬한 "몬스터 콜". 이동진 씨의 글을 참 좋아하는 지라, 더 관심이 갔던 영화다. 그런데 큰 극장에 관객은 오롯이 나 혼자...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리 평일 아침시간이라지만, 이 영화 재미없는 거 아냐?' 아무튼 극장을 통째로 전세내고 관람하는 기분은 썩 괜찮았다.


첫 장면은 시골마을의 어느 산길. 다소 음산한 분위기 속에 한 아이가 걸어가고 있다. 아이의 이름은 코너.

영화의 색채는 코너의 불안한 마음을 암시하는 듯 어둡고 음울하다 


어린아이가 혼자 아침을 차려 먹고 빨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코너의 엄마는 병에 걸려 누워 있고, 아빠는 이혼해 멀리 LA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는 불량학생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코너에게는 전부나 다름 없는 엄마


엄마의 병이 점점 심해지자, 고지식하고 강압적인 할머니가 찾아와 코너를 데려 가려 한다. 이처럼 코너는 불행한 환경에 둘러싸여 점점 마음을 닫는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멀어지려 한다. 


바로 그때 집 앞마당에 있는 주목나무가 몬스터로 변해 코너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제안한다.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마. 그다음엔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해. "


몬스터는 늘 같은 시간인 12시 7분마다 나타나 코너에게 차례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 이야기... 우리가 동화책에서 보던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쁜 왕비도 왕이 아프자 진심으로 슬퍼하고, 나쁜 왕비를 물리친 왕자가 왕비를 모함하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죽이기도 한다. 


이야기를 마치며 몬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단다. 사람은 언제나 선과 악의 중간쯤에 있으면서 선하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거야."


두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약제사를 모함하던 목사가 자신의 두 딸이 죽을병에 걸리자 약제사를 찾아가 모든 것을 포기할 테니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약제사는 결국 도와주지 않고 두 딸은 다음날 죽게 된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몬스터의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몬스터는 마지막으로 세 번째 투명인간의 이야기까지 들려주고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코너는 엄마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주목나무에게 달려간다. 엄마를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주목나무는 몬스터로 변해 코너에게 말한다. "이제는 네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야." 


코너는 몬스터에게 밤마다 꾸는 악몽 이야기를 한다. 엄마와 함께 있는데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엄마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순간 코너가 엄마의 손을 붙잡는다. 하지만 결국은 엄마를 놓치면서 꿈에서 깨어나는데, 사실은 엄마의 손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코너 자신이 스스로 손을 놓는 것이었다고 고백을 한다. 


코너는 사랑하는 엄마가 낫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같은 고통스러운 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슴속 깊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그런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몬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엔 코너,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단다. 오직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할머니와 함께 엄마의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 코너는 뜨거운 포옹으로 엄마를 떠나보낸다. 그때 코너의 뒤에는 몬스터가 나타나 그 모습을 지켜준다. 엄마가 눈을 감는 순간, 시계는 12시 7분을 가리킨다.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된 다음날, 코너는 엄마가 어릴 적 그린 그림책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어린 엄마가 그린 몬스터의 모습이 있다. 코너가 만났던 바로 그 몬스터가 말이다.


엄마는 자신이 죽는 순간을 코너가 이겨낼 수 있도록 코너에게 몬스터를 보내 준 것이었을까?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의 발육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를 거치며 방황하고 결국은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바로 그때, 옆에서 지켜주는 몬스터가 필요할 것이다. 


영화에서 몬스터의 목소리는 배우 "리암 니슨"이었다. 그런데 목소리만 출연한 리암 니슨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순간이 있다. 코너 엄마의 어릴 적 사진 속에서 어린 엄마를 안고 있는 아빠로 말이다. 엄마에게 몬스터는 아빠였을까?


세 아이를 재우며 오늘 본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백설공주 이야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나쁜 왕비가 착한 모습을 보이고, 착한 왕자가 연인을 죽이는 이야기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 아이들도 더 자라면 동화 속 세상이 아닌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겠지. 잠든 아이들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때 아빠가 곁에서 몬스터가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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