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이 독이 됐을까...'복수 수사'라는 비난에, 검사의 자살까지
“4년 동안 좌천됐다고 동료 검사한테 한풀이 하는거냐.”
“도가 지나쳤다. 책임자만 처벌하면 되는 것아니냐. 파견 나간 검사야 시킨대로 한 건데.”
변창훈 검사 자살 이후 검찰 내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한편에선 “더 엄정히 수사해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검찰 내부에서 복수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윤석열이 좌천성 인사로 4년을 직접적인 수사를 하지 않는 지방의 고검 검사등을 전전하면서 얼마나 와신상담했는지를 검찰 조직원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사는 2003년 검찰에 복귀한뒤 대검 중수부 검찰연구관, 대구지검 특수부장,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대검 중수2과장, 대검 중수 1과장 등 특수수사 관련 부서에 줄곳 있었는데 항명 사건 이후 2014년 대구고검 검사, 2016년 대전고검 검사로 인사가 났다.
윤석열은 검찰 내에서 큰 사건이 터질때, 위기를 돌파할 칼잡이기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을때마다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대구고검과 대전고검 등 수사할 수 없는 곳을 전전해야 했다. 주변에서 그를 응원하는 법조 출입 기자들도 정기 인사에서 좌천성 인사가 날때마다 ‘검사님 힘내세요’라는 메세지를 보낼 정도였다.
검사들은 법무부가 발표하는 인사 결과를 보고 조직을 떠나야 할때를 가름한다. 동기나 후배 자리에 발령이 나면 일차적으로 나가라는 뜻이다. 연속해서 지방만 전전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된다. 법무부에 아는 동기라도 있으면 인사 배경을 확인하고 다음 인사때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조직을 떠날 시기라고 생각하고 사의를 표한다.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명분이지만 검찰을 떠나 변호사를 하게 될 경우에도 나가야 할때를 알아야 좋은 평판을 유지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윤석열은 달랐다. 이미 변호사 생활을 1년 가량 해봤다. 변호사는 윤석열의 적성이 아니다. 그에겐 법무부의 좌천성 인사에 개의치 않고 때를 기다렸다. 2016년 여름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에서 만난 윤석열 검사. 그는 대전에서 근무 중이었지만 집이 서울이어서 주말이면 올라와 측근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주말이었지만 술자리에 초대를 받고 택시를 잡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서초동과는 집이 멀어 술자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앉아 자고 있었다. 10명의 기자와 술자리를 해도 10명의 기자들에게 폭탄주를 한잔씩 주고 받는 그가 졸고 있다니 그 관경이 믿기지 않았다.
검사들의 술자리는 소주와 맥주를 섞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병권자’로 칭한다. 병권자는 소주와 맥주의 비율을 정할 수 있고 첫잔은 본인이 마신뒤 참가자에게 한번씩 폭탄주를 제조해 돌리고 병권을 다른 사람에 넘긴다. 이렇게 하면 한번의 병권자가 바뀔때 참가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한잔씩 마시게 된다. 하지만 윤석열은 참가자 모두에게 술잔을 주고 받고 한다. 참가자가 10명이라면 참가자들이 한번씩 마시는 동안 윤석열은 10잔을 마시는 것이다.
그런 그가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다니 건강이 먼저 걱정됐다. 스트레스로 건강이 안좋아졌다는 말을 들은지 얼마 안됐기 때문이다. 먼저 온 참가자에게 물었더니 같은 말을 들었다.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예전 같지 않으시네.”
그를 택시에 태우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는 뒤늦게 온 저자에게 술을 권했다. 그제서야 그동안 좌천성 인사에 대해 기자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던 그가 입을 열었다.
“끝까지 견딘다. 아무리 그래도 개업 안해. 지방에 있어도 좋아. 기회는 다시 올 거야.”
윤석열은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 합류하면서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의 말대로 기회가 온 것이다. 특검에 임명된 박영수 변호사는 2016년 11월 30일 오후 5시쯤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박 특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박지원 의원과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박영수 변호사가 부산동부지청에서 지청장으로 근무하던 2003년 동부지청의 차장검사가 바로 황교안 권한대행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황교안 총리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황교안 총리를 지원한 적도 있다. 당시 박영수 변호사는 “각 부처 장관들은 물론 국회와 원활한 관계를 맺으며 불협화음 없이 매끄럽게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영수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된 직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을 통해 “국민의당이 추천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한 박영수 특검. 박영수 중수부장 시절 최재경 중수부 과장. 우병우 전 수석의 심복 국정원 최윤수 2차장을 양아들이라고 호칭할 정도의 매우 가까운 사이. 특검 수사 잘 될까요?”라는 글을 남겼다.
박영수 변호사가 있는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 앞 첫번째 기자 회견장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다. ‘검찰 재직 시절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의 친분이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박 특검은 “단순 선후배 관계다. 전혀 영향 없다”며 세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우 전 수석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최윤수 차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절대 그런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제가 특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박 특검은 윤석열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 특검은 임명장을 받은 다음날 가장 먼저 윤석열 검사부터 영입했다. 직접 수사를 담당할 특검보를 먼저 선임하는 것이 순서인데 윤석열 검사 파견을 특검보 임명보다 먼저 요청한 것은 이례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거 인연이 있다고 수사 의지를 의심 받으면 아무리 열심히 수사를 해도 수사결과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기에 윤석열의 영입은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다. 일각의 오해를 불식한 효과도 있겠지만 굶주린 사자에게 사냥의 기회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특검 수사 고비마다 제기된 내부 갈등설을 불식시키기도 했다. 박영수 특검이 아무리 예전에 수사를 잘했고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어차피 특검 수사가 끝나면 친정(검찰)으로 돌아가야 할 후배검사들을 이끌어 가는 데는 윤석열 검사가 적임자였다.
그는 그에게 찾아온 기회를 엄중하게 받아들였다. 기자단과 특검팀과의 첫번째 상견례 자리. 법조 출입 언론사 1사당 1명씩 점심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윤석열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신중했다. 점심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말실수도 차단하기 위해 작은 말 한마디, 표정하나가 오해를 살 수 있어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말이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