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중앙지검장 취임식을 하지 않은 이유
윤석열은 적폐청산을 기조로 삼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다. 2017년 5월 19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윤석열을 호명했다. 윤석열 이름이 발표되자 기자들은 “와!”라는 탄성을 질렀다.
기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경우의 수였기 때문이다. 일단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는 고검장급이다. 검사장이 승진해야 고검장급 자리에 갈 수 있는데 윤석열은 검사장도 아니었다. 청와대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고검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내리고 윤석열을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측에선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을 바라보고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는 유인을 차단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고검장급이 서울중앙지검장이면 바로 다음 인사에서 검찰총장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청와대가 적폐 수사를 이끌어 갈 적임자로 윤석열을 지목한 만큼 자의든 타의든 청와대가 원하는 수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게다가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바로 갈 순 없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정권 내 윤석열이 검찰총장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배에게 인사받고 중앙지검 입성
논란은 커지지 않았다. 윤석열이 적폐수사의 적임자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첫 출근은 모든 주요 언론매체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중앙지검에는 검사장급 이상이 둘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 서울중앙지검장을 보좌하는 1차장 검사가 검사장급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사장급으로 낮아지다 보니 노승권 1차장 검사가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보다 선배였다.
검찰은 일반 회사와 달리 부장보다 차장이 직함이 높다. 차장의 ‘차’는 한자로 ‘다음 차’자로 기관장 바로 다음이라는 뜻이다. 전국 최대 지방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보필하는 차장검사가 3명이다. 윤석열은 노승권 1차장과 이동열 3차장보다 후배이고 이정회 2차장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통상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출근하면 후배 차장검사들이 출근길을 기다렸다가 도열해 환영한다. 윤석열보다 사법연수원이 2기수 선배인 노승권 1차장, 1기수 선배인 이동열이 출근길 도열을 할지가 관심사였다. 이들이 만약 윤석열을 맞이 하지 않는다면 청와대의 파격 인사에 불만을 제기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5월 22일 오전 8시 50분 3명의 차장 검사는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을 기다렸다. 노승권 차장은 고개 숙여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을 환영했다.
취임식 생략이 파격행보?
윤석열은 취임식도 생략했다. 검사와 직원들과 약식 상견례로 대신했다. 언론에선 파격 인사인 만큼 파격 행보라고 치켜세웠다. 그럴만도 한 것이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식을 생략하고 바로 업무에 들어가는것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검사들도 있었다. 전임 서울중앙지검장인 이영렬은 이른바 ‘돈봉투 만찬’ 파문으로 5월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감찰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이영렬 지검장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을 수사한 특별수사본부에 참여한 간부 검사 7명은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과 검찰국 검찰1,2과장과 함께 4월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만찬 자리에서 안태근 국장은 특수본 수사팀장들에게 70만원에서 100만원씩 격려금을 지급했다. 이영렬 지검장도 검찰국 1,2과장에게 100만원씩 격려금을 건냈다. 당사자들은 관행이라고 설명했지만 법무부 과장들은 다음날 서울중앙지검에 격려금을 반납했다.
특수본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전탐팀까지 꾸려 수사했지만 우 전 수석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뒤 불구속 기소하면서 수사가 충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이런 때 특수본의 본부장이었던 이영렬 지검장이 우병우 전 수석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안태근 국장과 공적인 돈을 주고 받았다는 것은 수사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게 됐다. 이런 사실은 5월 15일 한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우병우 전 수석 등에 대한 부실 수사 지적을 받는 검찰과 법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격려금을 주고 받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특수본은 2016년 10월 정치권에서 특별수사를 도입하겠다고 결정하자 급하게 구성됐다. 검찰은 시민단체가 최순실씨 관련 의혹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건을 한달이 지나도 진척이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야가 특검 도입을 결정한 다음날 대검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특수본은 특검이 구성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기 전까지 수사를 한 뒤 수사 내용을 넘기게 되는 상황이었다. 특검이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력을 채워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려면 한달 정도의 시간이 예상됐다. 특수본은 한달짜리가 된 것이다. 검찰은 인력을 보강해 명예회복에 나섰다. 짧은 시간 동안 특수본은 최순실,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을 구속기소했고 헌법상 불소추 특권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특검에 바통을 넘긴 특수본은 2017년 3월 3일 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다시 이영렬 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특수본을 재정비해 수사에 나섰다. 특수본 관계자는 “우병우 전 수석 자택은 물론 가족회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도 수십명을 불러 조사하는 등 최선을 다했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2017년 6월 이영렬 검사장도 검찰 내부전산망 ‘이프로스’에 올린 마지막 인사글에서 “특수본 수사의 시작은 살아 있는 권력이 대상이어서 칼날 위를 걷는 사투와 다름없었다”며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로지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한다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임했다”고 했다. “소중한 수사성과는 훗날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통상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전임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이취임식을 함께 해애 하는데, 이임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취임식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었다는 시각을 가진 검사도 있었다. 언론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윤석열 지검장을 치켜세우기만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적폐수사를 맡게 됐다. 특수통 중심으로 꾸려졌던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 파견 검사는 물론 윤석열과 가까운 특수통들이 윤석열 지검장을 중심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요직을 차지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해당 의혹을 엄정히 조사하고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등 위반이 있었는지도 확인하라고 법무부와 대검에 감찰을 지시했다. 이영렬 지검장은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2018년 4월 무죄를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