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프러스 Oct 10. 2022

배려, 너무도 어려운 말이지만

이 말 밖에 없기 때문에

저는 배려한다는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모든 관계는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상대를 배려해야 그 사람도 나를 배려해준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보자'.. 이런 좋은 말이 세상엔 넘쳐나죠. 저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고요.


하지만 "배려"만큼이나 힘든 것이 없고, "이해"만큼이나 어려운 종목도 없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요. 성선설을 믿고 싶지만, 매일 남의 가정 싸움을 지켜보는 일을 하자니 점점 성악설,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 이런 것에만 눈이 갑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상담을 하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라고 합니다. 근데 그걸 사람들이 과연 몰라서 못할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양보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이런 류의 덕목을 무한 주입당하면서 자랐습니다. 심지어 교과과목에 '도덕', '윤리' 이런 것들이 있었죠. 지금 교과과정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런 덕목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수 요소로 배웠습니다.


저도 인간이라면 모두가 누군가와 함께 살기 때문에 "배려"는 필수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도 어려워요. 상황이 좋을 때나 여유가 있을 때는 배려합니다. 이해도 하고요. 여유로운 주말에는 아이의 한없는 미적거림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평일 아침엔 얘기가 달라지죠. 옷을 이거 입을래, 이건 마음에 안 들어하는 순간 화가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애가 늦으면 저도 늦으니까요. 저는 늦어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유치원 선생님이 안 계십니다. 여길 회사로 생각하냐 놀러 오는 대로 생각하냐 화내는 상사만이 저를 기다리죠. 이건 아주 사소한 예의뿐입니다.


가정불화로 신고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싸우진 않았을 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을까. 왜 부부가 서로 좀 더 이해해주고 힘든 걸 감싸주지 못할까. 조금만 상대를 배려해주면 이런 싸움은 나지 않을 텐데. 이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습니다.


상대가 힘든 걸 이해 못 해서가 아니라 내 상황이 지금 너무 힘든 겁니다. 정신적 이유든 경제적 이유든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은 각자 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짐을 충분히 지고 갈 능력이 되는 사람도 있고, 내 능력보다 짐이 무거운 사람도 있겠죠.


심각하게 싸우는 부부도 처음부터 신물 나게 싸우진 않았을 겁니다. 살다 보니 닥치는 수많은 위기에 지치고, 마음이 상하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그것이 쌓이다 보니 더 이상은 상대의 힘듦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각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만 보이게 되는 거죠. 서로 짐을 나누자가 아니라 '내 것이 너무 힘드니까 가져가 주면 안 될까' '나한테 네 짐까지 넘기려 하지마..' 이렇게 돼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그 사람이 단순히 자기밖에 생각 못하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회사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도 생계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거나, 깊은 우울증이 왔어도 쉼 없이 육아를 해야 하거나, 가족 중에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생기거나 세상엔 수없이 많은 짐이 생기고 위기가 닥치니까요.


삶의 소용돌이에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람에게 "배려하세요, 이해하세요" 이렇게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타인의 시선으로 저 정도면 그렇게 힘들 일도 아닌데 유난 떤다고 하면 안 되죠. 


내가 어려운 상황이 놓였을 때도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삶, 공자던 맹자던 누구든지 오시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내 고통을 묻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타인을 배려한다는 건 노벨배려상 정도는 줘야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힘든 때일수록 더 상대를 배려하라는 건 어쩌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지만 마음의 힘이 없을뿐이까요.


이 글을 힘든 일은 누구한테든 생길 수 있으니 그때마다 격변해서 안하무인으로 해도 되고, 쌈닭에 빙의해서 누구든지 물어뜯으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겠죠.

어려운 일을 겪고 있거나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면 내가 누굴 배려하지 못한다 해도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자는 말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그럴 때 누군가와 다툼이 생겨도 너무 스스로를 책망하고 내가 나쁜 성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 접자는 겁니다. 잠시 이해하고 배려하는 걸 멈춰도 될 때가 있습니다. 나를 돌보지 못한 채 타인만 배려하다가 더 큰 감정싸움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배려"라는 말을 사랑합니다. 왜냐면 이 말 밖에는 없거든요.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무기가. 그래서 너무도 어려운 말인 줄 알지만 어떻게든 해보려 하고, 몇 번을 실패하던 다시 시도하려 합니다.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내 마음 상대의 마음도 지킬 수 있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