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나도 난생처음 스냅사진이라는 걸 찍어보기로 했다. 요즘은 여행지에 가면 필수적으로 한다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찍고 온다. 스냅사진은 전문 사진작가가 몇 시간 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거다.
여행 어플에서 후기가 좋은 걸로 골라서 신청을 했는데, 2시간에 두 명이서 십만 원 정도를 주고 신청을 했다.
이제 막 스냅사진작가를 시작한 사람이라 프로모션을 해서 이 정도 가격이고 원래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도 찍히지도 못했고 엄마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큰맘 먹고 간 여행지에서 예쁜 추억을 얻고 싶어서 신청했다.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부터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짧은 시간이나마 파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길이라도 익혀보고자 도착하자마자 하는 걸로 신청했다.
원래도 사진에 찍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어색하게 자세를 잡으려 하니 엄마도 나도 너무 어정쩡했다. 보는 사람도 답답하게 만드는 포즈 때문에 우리 사진작가님이 꽤나 고생을 했다. 입꼬리를 끝까지 끌어당겨도 싸운 사람들 마냥 무뚝뚝한 표정에 갈 곳을 못 찾고 각자 떠도는 손발은 자연스러움이라곤 조금도 없이 기괴한 모습이었다. 사진작가님은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온갖 말을 걸어가며 노력했고 그 모습을 보고 가격이 비싼 것 같지는 않구나 싶었다.
파업을 하는 탓에 보르도에 가는 기차도 취소되고 새 숙소를 구하느라고 생고생을 했는데, 파업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에펠탑 앞에서도 꽤나 깨끗한 사진을 얻었다. 원래라면 사람이 바글바글 거려서 배경이 에펠탑이 아니라 사람들이었어야 하고, 회전목마 앞에 한 번 서려면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는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파업 대신 사진을 얻었다.
망할 놈의 파업? 고마운 파업? 인생사 새옹지마
며칠 뒤에는 베르사유 투어를 신청해서 가기로 했다. 원래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도 됐지만 파업 때문에 그냥 투어를 신청했다. 궁전 투어에 스냅사진까지 찍어준다고 하니 우리한테는 딱 맞는 투어였다. 그런데 그놈의 파업이 뭔지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는데 경비원이 오늘 파업 때문에 문을 안열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해대는 거다. 할 거면 전날 알려주던가. 입장시간에 맞춰 왔는데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 뻔뻔함.. 정말 갖고 싶다.
가이드 둘이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정이 될 때까지 그 동네를 각자 돌아보거나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엄마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동네라도 한 바퀴 둘러보자고 하자고 했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게 관리한 건물과 도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들이 동화 속에 나오는 곳처럼 평화로웠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동네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는데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이 추운 몸을 녹여줬고 핫초코가 달달한 마법의 음료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단 음료는 잘 안 마시던 엄마는 "여기는 대체 뭘 쓰길래 이런 맛이 나?"라고 했고, 이때부터 카페에 들어가면 커피보다는 핫초코를 시키게 되었다. 아까 스타벅스 안 따라가길 잘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파업 때문에 한껏 짜증이 올라왔었는데 핫초코를 마시면서 파업이 살짝 고맙기도 했다. 만약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제시간에 궁전에 들었갔을 테고 그렇게 청량하고 고즈넉한 동네를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핫초코에 달달함에 푹 빠져있던 때 출입이 가능하다는 문자를 받고 궁전 앞으로 갔다. 아까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는데 파업 결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돌아간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인원이 팍 줄었다. 성수기 때 오면 미리 티켓을 끊어도 멀리까지 줄을 서야 한다는데 이득도 이런 이득이 없다. 줄 한번 서지 않고 쑥 들어갈 수 있었다. 궁전 내에서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아주 쾌적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을 인간들 틈 속에서 어깨너머로만 봐야 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그 자체로 보석이었던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은 내 생각보다는 아담한 사이즈였다. 자금성처럼 몇 날 며칠을 다녀도 다 못 볼 정도의 크기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한 시간도 안돼서 내부를 모두 봤다. 크기는 아담하지만 화려함은 어느 곳에서 지지 않을 것 같았다. 휘황찬란한 드레스에 오색 보석을 걸친 그 시절 왕비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베르사유 궁전의 메인은 내부보다는 정원인 듯하다. 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이나 푸름이 싱그러운 여름에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을씨년스러운 겨울이어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 규모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고 한다. 프랑스는 멀리서 보는 것과 직접 그 앞에서 마주하는 것이 천지차이인 것 같다.
왕비의 촌락에 어울리는 통나무 2개
궁전을 나와서는 궁전 배경과 인근의 왕비의 촌락이라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줬다. 당시 유럽 귀족들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 유행에 동참하여 궁전의 호숫가에 작은 촌락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왕비의 촌락이다.
위의 사진은 나의 몹쓸 사진 실력 때문에 마치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실제로는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장관이었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보다 여기서 가이드가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역시나 뻣뻣하게 서서 통나무 샷을 마구 양산해냈지만 이것도 한번 경험이 있다고 조금은 살아있는 통나무 같은 느낌이었다. 가이드는 혼신의 힘을 다했고, 배경 또한 자신이 가진 힘을 모두 발산해냈다. 그래서 우린 파리 여행에서 가장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