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행지를 가나 그 나라의 밤이 가장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의 밤은 야근하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슬픈 불빛이라고 하던데 프랑스는 아무도 야근을 하지 않는지 밤이 되면 조명이 꺼진다. 아주 은은한 조명만이 몇 백 년을 버텨낸 건물을 비출 뿐이다.
야경투어
이국의 밤은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젊은이들끼리 간 것도 아니고 엄마랑 단 둘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야경투어를 신청했다. 3시간 정도 차로 돌아다니며 파리의 야경을 감상하는 투어이다. 스냅사진 투어나 궁전 투어, 야경투어까지 신청을 하니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나갔지만 파업으로 교통이 불편했던 터라 하루에 2-3시간 정도 차로 편하게 다니는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에펠탑에서 만나서 개선문, 알랙산더 3세 다리, 루브르 박물관,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돌아보고 오는 루트였다. 홍콩에서처럼 환상적인 야경 쇼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품 있고 고상한 야경이 이어졌다.
엄마의 작은 변화
알랙산더 3세 다리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국인 가족이 지나갔다. 3대가 함께 온 것 같았는데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와 부부, 그리고 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함께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난 엄마 모시고 온 것도 온갖 걱정을 하면서 왔는데 어린아이에 어머니까지 모시고 온 그 부부가 굉장해 보였다.
엄마는 부부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엄마는 60대인 지금도 다리가 아파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힘든데 저 할머니는 저렇게 허리가 휘고 지팡이를 집고 다니면서도 이 멀리까지 와서 여행을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던지 이후에는 엄마는 그 할머니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저렇게 허리가 휘기 전에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해야겠지만 그래도 일 해서 모은 돈으로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너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이번 여행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더 나이가 들고 성치 않은 몸으로 먼 곳까지 여행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큰 비용이 드는 걸 알고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결심했다. 그러나 할머니를 보면서 조금 마음이 바뀐 것 같다. 허리가 휘든 지팡이를 집든 움직일 수 있고 마음만 있다면 원하는 것, 즐거운 것을 하는 것이 인생을 즐긴다고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엄마가 원한다면 어디든 갈 준비가 돼있다. 물론 열심히 돈을 버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 되겠지만.
고요하지만 무서웠던 사크레쾨르 성당
사크레쾨르 성당은 낮에도 위험할 정도의 치안을 보여주는 곳이다. 팔찌 사기단도 많고 워낙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인데 밤에 가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지금이 정말 위험하다면서 남자분들이 앞장서면 좋겠다며 장난을 쳤다. 차에서 내릴 때도 강도가 문을 깨고 가방을 가져갈 수 있으니 가방은 들고 내리고, 옷 안 쪽으로 잘 숨겨서 메라고 당부했다. 아무도 강도를 만날 걱정을 안 하는 것 같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미어캣처럼 주변을 경계하면서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여느 파리의 야경과 비슷했다. 불빛이 화려하고 고층 건물이 많아야 야경이 더 멋있어질 텐데 여긴 오히려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조용했다. 하지만 그 고용함이 오히려 성당의 신비하고 오묘한 매력을 잘 살려주는 것 같았다.
가장 아름다웠던 루브르 박물관
이날 야경 투어에서 압권이었던 것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전경이 아니라 바로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워낙 커서 어딜 가도 보일 정도인데 낮에는 '무슨 박물관이 이렇게 큰가' 정도로 생각했다면 밤에 되니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에펠탑이나 개선문은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책에서 봤던 유명한 건물 정도로 였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거대함과 웅장한 멋에 눈을 떼지 못했다. 파리의 야경이 그와 같았다. 소리를 모두 차단한 듯한 고요함 속에 웅장함이 배가 되었다.
야경보다 수면, 졸음을 이기지 못한 바토무슈
작은 배를 타고 센 강을 천천히 따라 올라가며 파리의 밤을 구경하는 바토무슈. 한 시간 남짓이지만 생각보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고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너무 졸릴 뿐이었다. 추운 날씨 탓에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보지 못해서인지 엄마도 나처럼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신혼여행으로 와서 파리에 있는 게 실감이 안 나 눈물지었다는데 나와 엄만 하품이 나와 눈물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