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행 내내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렇게 긴장을 하면서 여행 공포증에 떨었는데 막상 파리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파리를 즐겼다. 물론 중간중간 매우 당황스러운 일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있었기에 곧 안정을 찾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7박 9일이라는 시간이 바람처럼 사라진 것 같았지만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던 엄마. 분명 더 쉬고 싶고, 다른 것이 먹고 싶기도 했을 테고, 다른 곳에 가보고 싶거나 어떤 곳에선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텐데 내 의견에 최대한 동의해주었다. 여행 하면서 항상 내가 엄마를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엄마가 더 내게 맞춰주고 있었다. 덕분에 우린 다치지 않고 큰 사고 없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엄마 어디가 제일 좋았어?"를 몇 번이고 물어봤다. 계속해서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추억한다. 지금도 몇 번씩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 우리가 정말 12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서 프랑스에 갔다 온 걸까 싶을 정도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에게 프랑스 여행은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았다.
다시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무서운 전염병이 온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 온갖 낭설과 소문들이 퍼져있는 데다 세계 곳곳은 아직도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추세이다. 아마 당분간은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은 당연하고 국내에서도 마음껏 다니는 것은 힘들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2019년 12월에 여행을 다녀온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아직 여행을 다녀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더욱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커진다.
앞으로 여행을 간다면 이번처럼 긴 시간을 투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원하는 여행지를 가고 싶다. 엄마는 기회가 된다면 이집트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 하필이면 그렇게 위험한 나라가 가보고 싶구나. 엄마와 합의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우리에게 다음 여행의 관건은 전염병보다는 엄마의 건강이다. 이번 여행은 어떻게 약도 먹고 여행 전 주사도 맞으면서 걸어 다녔지만 다음번엔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빠는 왜 아픈 몸을 이끌고 그 멀리까지 가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고생을 해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면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여행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잠시 현실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마음껏 웃고 즐기다 힘든 현실을 이겨낼 힘을 얻고 오는 것이다. 엄마 또한 나와 같은 것을 느꼈다. TV에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무릎에서 오는 통증은 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지팡이를 집든 휠체어를 타든 함께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엄마가 좀 더 편히 쉴 수 있게 좋은 숙소를 구하는 걸 1순위로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릇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그런 것이 많은 곳으로 쇼핑일정을 잡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엄마가 와인을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와인이 맛있는 나라를 가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일이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아빠도 꼭 같이 할 것이다. 이건 여행 내내 엄마와 얘기했던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볼 때마다 항상 "아빠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빠는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서 여행을 가냐며 핀잔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될까 봐 몇 번이고 거절을 해온 것을 안다. 아빠를 설득하는 게 돈 모으기보다 힘들겠지만 멀리 가지 못해도 꼭 다음 여행은 아빠와 함께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