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역시 엄마인가 보다. 길을 걷다가 주방용품 매장이 보이면 그렇게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라고 국자나 뒤집개를 금으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게 재밌나 보다. 확실히 주방용품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만의 특색 있는 소형 매장에 많이 있어 재미를 더하긴 했다. 그 와중에 국자 쇼핑하는 엄마, 갖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있었지만 들고 가는 것도 일이었기에 엄마를 간신히 말렸다.
사색에 빠지게 하는 전기포트
그중에 엄마가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바로 전기포트였다. 지나가면서 봤던 명품 디자인의 전기포트를 보고 저게 너무 갖고 싶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한국에서 살 경우 60만 원을 넘는 몸값을 자랑했다. 내가 보기엔 무슨 부활절 달걀처럼 생겼더니만 엄마는 지금도 그게 머릿속에서 아른아른거린다고 한다. 전기 포트만 사나, 하나 사면 깔맞춤으로 다른 것도 사고 싶지. 돈만 넉넉하게 있다면 뭐든지 다 사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마음이 짠하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 내가 갖고 싶은 걸 마음껏 사주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돈 때문에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거다. 그때 떼쓰지 말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전기포트가 날 이렇게 사색에 빠지게 하다니, 너 대단하다.
오페라 가르니에
엄마는 어딜 가나 환호했고 감상에 빠졌고 넋을 놓고 파리의 모습을 바라봤지만 그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곳은 [오페라 가르니에]였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오페라를 공연하던 극장이다. 이 극장을 지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서 [오페라 가르니에]가 되었다. 이 곳의 내부는 밖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정말 눈이 부시도록 수많은 샹들리에와 조명이 온통 금빛으로 치장한 극장을 비춘다. 로비에서부터 마음을 뺏겨서 사진을 찍느라 계단 하나 올라가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대체 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많은 스냅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 찍는데 자신감이 붙은 엄마는 겉옷까지 벗어던지고 온갖 포즈를 구사했다. 나도 질세라 엄마에게 벽에 붙어봐라, 손끝을 살려봐라, 다리를 꼬아봐라 등 갖가지 요구를 해댔다. 한참을 신나게 사진을 찍고 앉아서 쉬었다고 또 사진을 찍는 것을 무한 반복한 뒤에야 굿즈 판매점으로 몸을 옮겼다. 굿즈 판매점에서도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열쇠고리와 오르골을 손에 쥔 채 나왔다.
마리아쥬 프레르 홍차
향수를 마시는 것 같아 냄새도 맡기 싫었던 홍차를 몇 년 전부터 일상처럼 즐기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는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점점 어른 입맛으로 바뀌어서 곱창이나 간 같은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홍차를 마시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연히 알게 된 홍차카페에서 권해준 [마리아쥬 프레르]의 홍차, 마르코 폴로를 마시고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녹차나 커피에서는 맡을 수 없는 깊고 진한 꽃 향기 같은 것이 입안에 스며들었다.
우연한 기회의 경험이 내 인생 취미가 된 순간이었다. 만약 카페에서 권해준 것을 마시지 않고 '난 원래 홍차를 마시지 못하니까 그냥 커피나 마셔야지'라고 생각했다면 홍차의 매력을 만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매력덩어리는 상당히 비싼 취미였다. 저 작은 틴케이스가 한국으로 오면 45,000원 정도가 된다. 물론 오래 마실 수 있긴 하지만 여러 맛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이라 이것저것 사다 보면 십만 원은 금세 넘는다. 게다가 홍차를 우릴 도구, 찻잔 세트 등 알면 알수록 내 지갑을 열게 하는 취미였다. 그래도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차 우리는 법을 흉내도 내보고 서울에 있는 다만 프레르 매장을 찾아가서 홍차 향을 느끼며 소소하게 취미를 이어갔다. 그리고 2019년이 되어 프랑스를 가게 된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르코 폴로의 본고장인 프랑스를 직접 갈 수 있게 되었다. 매장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감격일 수밖에 없었다. 매장뿐만 아니라 쇼핑몰, 동네 슈퍼에도 비치되어 있었고 나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와.. 와.." 거리는 나를 보며 뭐가 좋아서 저러는 건가 했지만, 엄마의 국자나 내 홍차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해주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세유 비누
두 번째로 내가 꼭 찾아가고 싶었던 곳은 마르세유 비누를 파는 곳이었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지방에서 나는 올리브유를 원료로 만든 것으로 다른 화학약품을 첨가하지 않고 천연성분으로 만든 비누다. 마르세유 비누 공장은 수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비누에 대해 자부심이 매우 크다고 한다. 처음엔 플라스틱 통을 쓰지 않고 화학성분이 범벅이 된 샴푸나 폼클렌징을 쓰지 않으려고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가끔 올라오던 트러블도 전혀 올라오지 않고 사용감도 좋아서 계속 쓰고 있다. 프랑스에 가면 매장에 꼭 가볼 생각을 했는데 영업시간을 잘 못 맞춘 데다 한참 길을 헤맨 끝에 녹초가 되어 매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힘들었냐는 듯 폭풍쇼핑을 하면서 빨래 비누처럼 생긴 비누를 잔뜩 이고 지고 돌아왔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국자, 비누였지만 엄마와 나에겐 '기분이 좋아지는 어떤 것'이었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이다. 프랑스의 어느 매장에 걸려있었을 때는 단순한 국자였던 것이 그것을 좋아하는 엄마의 손에 들어간 순간 선물이 되고 추억이 되었다. 비누는 쓰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쓸 때마다 그때 비누를 팔던 곳, 이것저것 비누향을 맡아보며 골랐던 기억이 비누 거품처럼 마구마구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