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검색해서 찾아다니는 것도 괜찮겠지만 엄마와 나는 입이 워낙 둔감한 편이라 그냥 지나다니면서 분위기가 괜찮은 곳에 가자고 하여 느낌이 딱 꽂히는 곳을 중심으로 식당을 골랐다. 유럽에선 식당에 가면 인종차별을 많이 당해서 주문을 하려고 해도 엄청 늦게 온다는 말도 많았고 앉는 자리도 불편한 자리를 준다는 말이 많았는데 내가 간 데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차별을 했는데 내가 못 느껴서 그런지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친절했고 서로 안 되는 영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애잔하기도 했다.
뭐든지 맛있을 나이, 3060
우린 정말 무딘 입맛 덕분인지 어딜 가도 맛있었고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간단하게는 피자부터 시작해서 에스카르고, 스테이크를 먹었고 아침에는 빵 냄새가 솔솔 나는 곳을 코로 찾아다니며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냥 아무 식당에서나 시킨 스테이크였고 나의 짧디 짧은 영어로 미디엄-웰던을 시켰는데 어떻게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굽기로 가져다줬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것이 바로 이건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에스카르고는 그냥 이 나라의 특색 있는 요리니 맛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시켰는데 웬걸, 달팽이 따위가 왜 이렇게 맛있는 건가. 물론 엄마는 조금 짜다고 했지만 나는 싸들고 한국에 오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뱅쇼(와인에 과일 등을 넣어 끓여 만든 음료)는 텀블러에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 내 입맛에 찰떡같이 잘 맞았다. 엄마도 추운 날씨에 따뜻한 뱅쇼 한잔을 마시니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라고 했다.
결정장애 말기를 겪게 한 빵집
어느 빵집에 가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짧은 여정이었으나 빵을 정말 많이 사 먹었는데 어딜 가도 빵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고 그것이 어찌나 좋던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다만 우리처럼 내가 쟁반을 들고 집어가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쇼케이스에 있는 빵을 점원에게 말해서 계산하는 것이어서 점원 앞에 서기까지 빵을 미리 골라야 했다. 선택 장애가 극심한 나로서는 먹고 싶은 건 많고 배는 부를 것 같고 앞에 줄은 줄어만 들고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면서 이성이 마비가 오고, 결국 왕창 시켜버리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니 시키는 것도 느리고 계산하는 것도 느렸다. 한국에서는 그러면 뒷사람이 짜증내고 재촉하고 점원한테 계산대 하나 더 열라고 난리 치는 사람도 있어서 신속하게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나라도 외국인에게는 관대한 건지 내가 아무리 느적느적 거려도 아무런 내색 없이 기다려줬다.
동네 빵집은 정말 아침부터 현지인들이 빵을 사려고 많이 들어왔는데 거기에 뒤엉켜서 크로와상에 커피 한잔을 마시니 진짜 파리에서 아침을 만끽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이런 분위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투어를 가려고 새벽에 움직이다가 빵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저걸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야심 차게 새벽부터 빵집을 찾아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아몬드 크로와상을 먹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한동안 아몬드 크로와상을 찾아 먹을 만큼 맛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까눌레는 막상 본고장에 와서 먹으니 한국화 한 까눌레가 훨씬 맛있다는 걸 느꼈다. 여기 사람들도 한국에서 까눌레 먹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마카롱을 한국에서 일명 '뚱카롱'이라고 해서 필링을 두껍게 아주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 그것을 생각하면 까눌레, 너도 한국에서 재탄생할 희망이 있다.
엄마랑 음식 취향은 잘 맞았지만 한 가지 맞지 않았던 것이 바로 앉는 자리였다. 난 유럽의 노천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셔보는 것이 꼭 해보고 싶었는데 엄마는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지 않고, 밖으로 쫓겨나 먹는 기분이 든다고 야외 테이블에는 앉지 않으려 했다. 나에겐 [노천카페=여유]라는 공식이 있는데 엄마는 [노천카페=푸대접]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튈리르 공원에 엄청난 규모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서 저녁을 거기서 파는 음식들로 대체해서 먹고 싶었지만 엄마는 바깥에 서서 음식을 먹는 건 싫다고 했다. 구경은 재밌게 했지만 먹는 건 식당에 가서 먹자고 했다. 테이블 어디에 앉을지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러나 엄마 의견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추우니 따뜻한 식당 안에서 몸도 녹이고 차분히 먹고 싶은 마음이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켓은 크리스마스 때나 볼 수 있는 거라 현지인, 관광객 할 것 없이 모여 시끌벅적했고 엄마는 그렇게 정신없는데서 뭔가를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런 사소한 의견 취향 차이는 서로가 충분히 얘기하면서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로 싫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앉고 싶은 곳에 못 앉아서 서운해했을 거고, 엄마는 계속 앉기 싫은데 앉자고 해서 짜증이 났을 거다. 그래도 엄마가 먼저 왜 안에 앉고 싶은지와 조금 조용한 곳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밖에서 먹어보자라고 해줘서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사소한 것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얘기하지 않았다면 서로 마음 상할 수 있었던 부분이라 먼저 말해준 엄마가 정말 고마웠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