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우울증과 세균 강박으로 죽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지금의 나를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자기 계발을 통해 우울을 극복했다. 이 글은 나처럼 끝도 없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썼다. '저 사람은 저렇게 심했는데 지금은 이만큼이나 괜찮아졌구나, 나도 해봐야겠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엄청나게 준비하여 갖은 첫 아이였다. 게다가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이를 낳았기에 후유증도 없었다. 분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출산을 이뤄냈다는 성취감은 많은 엄마들이 겪는 산후 우울증도 찾아오지 않게 해 주었다.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도 육아 우울증을 찾아오지 못하게는 하지 못했다.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은 어떻게 보면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르다. 산후 우울증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우울증 전단계인 산후 우울감은 출산 후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의 호르몬이 갑작스럽게 변화되어 출산 직후 한 달 안에 오고 50~70%의 여성들이 경험한다. 대부분은 2주 정도 정도 지나면 좋아지고, 엄마만 앓는다. 육아 우울증은 호르몬이 아닌 온전히 육아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 및 좌절감 때문에 오고, 아빠도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학교병원의 간호사였다. 대학생 시절에는 휴학 한번 한 적이 없다. 졸업 전에 이미 취직이 결정되었지만 1년 정도 입사 대기 기간을 가졌고 언제 회사로 부를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었다. 보통은 취직 전 마지막 휴식이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다니거나 푹 쉬었다. 하지만 나는 상반기가 아닌 하반기 입사라 상반기에는 들어가지 않아, 그 기간 동안 마트 판촉 아르바이트를 6개월간 했다. 당연히 3교대 간호사를 하면서 장기 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불가능했다. 내가 가장 길게 다녀온 휴가는 신혼여행 9박 10일이었다. 그런데 임신을 알게 되고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임신휴직을 하며 처음으로 내 시간을 가지면서 태교를 하고 그렇게 바라던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내 삶이 없었다.
간호사를 하면 기본적으로 바쁘다. 일하면서 밥은 먹은 적보다 못 먹은 적이 더 많았고, 어쩔 때는 물도 못 마시고 일할 때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엄청나게 만나며 쉴 새 없이 많은 말을 한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해야 할 말도 많아서 저 사람이 알아들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할 말을 속사포 랩으로 쏟아냈다. 고상하게 앉아있을 시간도 없다. 아픈 환자들을 간호하고 나의 근무 중 일을 마치고 칼퇴할 수 있도록(사실 칼퇴는 꿈이고 거의 하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앉지도 못하고 뛰어다닌다. 그러니 자동으로 운동이 된다.
하지만 신생아를 둔 엄마의 삶은 어떤가. 아이 밥은 잘 챙기지만 내 밥은 잘 챙겨 먹지 못한다. 남편과 아이 말고 만나는 사람도 없다. 남편 말고는 대화할 사람이 없다. 근데 그 남편도 저녁에 온다. 그러니 저녁까지 말도 안 통하는 아이랑 있는다. 아이에게 혼잣말을 계속하는 것도 처음에나 몇 번 하지 계속은 못한다. 신생아 때는 면역력이 약해서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나가지 않으니 걷지도 않고 집에만 있는다. 그러니 운동은 전혀 하지 못한다. 아기 수유하고 똥 기저귀 가느라 잠도 잘 못 잔다.
밥 잘 챙겨 먹지 못하는 것 빼고 간호사생활과 완전히 다르다. 임신 휴직 시간 말고 한 번도 오래 쉬어본 적이 없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만 보는 생활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게다가 다른 산후 우울증과 다르게 나는 다른 병도 있었다. 강박이라는 마음의 병이었다. 환자의 목숨과 연관되기에 멸균과 위생이 가장 중요한 병원에서 근무를 하니 세균을 피하겠다는 집착이 강했다. 게다가 나는 사실 더러웠다. 잘 씻지도 않았고, 나갔다가 씻지 않고 그냥 잠드는 일도 많았다. 신규시절에 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다.
어느 날 후배와 밤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을 하면서 '아, 피곤하니까 바로 자야겠다'라고 말하니 후배는 정색을 하며 '선배, 선배는 씻지도 않고 잔다고요? 더러워요'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나는 더럽지만 더러운 내가 되기 싫어 나를 깨끗이 가꿨다. 더러운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내 몸만 깨끗이 씻고 또 씻었다. 집안은 깨끗한 무균지대처럼 만들기 위해 밖에 나갔다 오면 더러움과 세균을 없애기 위해 무조건 씻었다. 외출을 10번 하면 10번 씻었다. 손은 수시로 씻어 항상 피가 났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여러 번 씻기만 하면 되니까 힘들긴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사정은 달라졌다. 아이가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있으니 밖에 나갔다 들어와도 씻을 수 없었다. 아이를 혼자 씻기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육아로 힘든데 괜히 밖에 나가서 힘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밖은 세균 덩어리였고, 아이는 깨끗함 그 자체였다. 늘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창밖만 보다가 '이번에야말로 나가볼까'하다가 결국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가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를 한심하다고 자책했다.
외부와의 생활을 단절한 채 만나는 사람은 남편과 자식 둘 밖에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내 마음속은 곪아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만든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갇혔다. 이렇게 고통 속에 사느니, 차라리 삶을 끝내는 것이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과도 자주 싸웠다. 남편이 회식으로 자리를 비우고 혼자 있던 밤,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싸웠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었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남편과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아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냥 죽고만 싶었다.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