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적으로 생겨나지 않는 모성애에 대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아이가 태어났다. 임신을 빨리 하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결혼이 하고 싶었을 정도로 임신을 기다렸던 나는 임신과 출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에 하나는 자연주의 출산이다. 자연주의 출산은 회음부 절개, 관장, 제모 등 3대 굴욕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의료적 개입 없이 산모가 주도적이 되어 아이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출산 방법을 말한다. 자연주의 출산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외에도 크나큰 단점이 있다. 바로 임신기간 중 엄청나게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 출산을 했기에 아이가 산도를 지나가면서 회음부가 찢어지는 열상도 막고, 출산과정 동안 무통주사를 포함해서 어떤 진통제도 투여하지 않기에 원활한 출산을 돕기 위해 아이가 평균 체중이상으로 많이 자라지 않도록,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평소에 1시간 이상 집 근처 천변을 걸어 다니고, 혹여나 미세먼지등이 나빠서 걷지 못할 때는 20층 계단을 두 번 정도 올랐다. 집에서도 틈틈이 스쿼트도 하고, 회음부 근육의 이완을 돕기 위해 양팔과 양다리를 모았다가 위아래로 힘차게 움직이는 합장합족 운동도 꾸준히 했다. 혹여나 정말 의심할까 봐 하는 말이지만, 진짜 나는 운동을 안 했다.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연주의 출산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음식도 가려서 먹었다. 먹어도 된다는 무알콜 맥주조차도 마시지 않았다. 좋은 것만 먹고 책도 많이 읽었다.
임신과 출산과정 동안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성애라는 감정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감정은 아니었는지,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이게 모성애구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성애가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더 커지지는 않았다. 물론 아이는 무척 사랑스럽고 예쁘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먹고 재우고 씻기는 일들은 당연히 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헌신적인 엄마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모성애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사회에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여자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주고 있다. 마치 엄마란 아이가 세상에 잘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인생 및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뒷바라지를 해야 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자신을 챙긴다고 해도 나중에 고마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이 아닌 엄마의 대리 인생을 살았다고 반항하면 모를까. 국민 연금에서 유족 연금을 담당했던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고 엄마가 원하는 꿈인 하버드 합격이나, 의대 합격 등을 이룬 아이들은 엄마의 꿈을 이루는 순간 자살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유서로 "엄마, 이제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행복해?"라고 유서를 남긴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이처럼 엄마의 희생이 그냥 순수한 희생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는 희생이기에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대리만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투영해도 아이는 받아들이지만, 아이가 자라서 생각이 커지면 더 이상 부모의 아바타로 살길 거부한다. 그렇게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다. 아이에게는 아이도 자신의 삶을 잘 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다.
아이 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쓴 이적의 어머니 여성학자 박혜란 박사도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처음으로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아니 어머니가 언제 우리들을 키우셨어요, 우리가 컸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고3이 코앞인 막내아들을 '버려두고' 중국으로 일하러 나가기까지 했다. 막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해에 둘째 아들 이적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이적은 막내에게 "야, 너 괜히 어머니를 믿었다가는 큰일 난다. 대학에 들어가고 싶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너 혼자 알아서 해야 해. 어머니는 너 대학 못 들어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실 거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렇듯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았더니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스스로 잘 자랐다. 아이들은 스스로 클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가 할 일은 그 씨앗을 다른 씨앗으로 깎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래서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 내 모든 삶을 포기하고 희생할 마음이 없다는 거니까 말이다.
아이의 삶만큼 내 삶도 소중하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모성애도 없는 이기적인 엄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이기적인 엄마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기적인 이 '기적'인 엄마다. 빛나는 육아를 하며 빛나는 인생을 만들어내는 기적의 엄마다. 육아도 내 인생도 잘 꾸려나가는 멋진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