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휴직을 했다. 간호사를 하면서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3년 반정도 하고 나니 남편이 대전으로 발령이 났다. 남편의 직장은 전국구라 어디든 발령이 날 수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해서 휴직하던 서울대학교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세종으로 거처를 정하고 이사했다. 한국의 중간이니 모든 곳에서 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세종에 이사 오면서 아이가 혁신학교에 다니기를 바랐다. 체험이 더 많고, 교사들도 타 업무보다 학업에 집중할 수 있고, 토론을 통해 아이들이 결정을 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사실은 혁신학교보다 대안학교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할 때 선택하면 되기에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혁신학교를 선택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에 부합하지 않는 공교육이지만 혁신학교에서는 일반학교보다는 더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사 갈 집을 정할 때 세종의 혁신학교를 확인한 후 그 주변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혁신초등학교 학군이 아니다.
네이버 부동산 앱의 지도를 펴고 집을 정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원했던 곳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혁신학교로 지정이 되어있는 소담동의 학교였다. 하지만 대전과 가깝다는 이유로 엄청 비쌌다. 그다음으로 확인한 곳은 고운동에 있는 혁신초등학교였다. 바로 앞에 위치한 아파트를 알아보았지만, 호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아무도 집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가기로 했던 곳도 집주인이 팔지 않겠다고 매물을 거둬들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차선책으로 옆단지의 집으로 가기로 했지만 그곳은 너무 고층이라 걱정이 되었다.
계약을 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와 네이버 부동산의 집들을 둘러보다 지금 우리 집을 만났다. 3층인데 필로티라 뛰어도 괜찮고 사생활도 보호받으며 일조량도 챙길 수 있고 옆에 산이 있으며 조금만 걸으면 천변도 있어 산책도 하기 좋은 데다가 도서관이 근처에 있는 집이 바로 우리 집이다. 서울에서 살 때 아이와 함께 근처 산에 자주 갔었다. 하지만 걸어서 15~20분 정도 거리였기 때문에 산까지 가는데 체력을 다 쓰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음집은 꼭 산이 근처라 원하면 언제든 바로 갈 수 있는 곳으로 이사 가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도서관도 멀어서 책 빌리러 가는 건 혼자서는 무리라 남편과 함께 가야만 했다. 우리 집이 산과 도서관이 가까운 곳, 이 두 가지를 충족해서 맘에 들었다. 하지만 이 집으로 정하면 원하던 혁신초등학교에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이유가 있다.
서울에 살 때 층간소음으로 인해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말을 많이 했다. 아이가 어려 말을 듣지는 않았다. 뛰고 싶은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고역이다. 하지만 필로티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혁신학교에서 하는 교육을 다 해줄 수 없지만 가정에서 비슷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마음껏 놀 수 있는 기회말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사를 하고 나니, 전원형 혁신학교가 있었다.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고 한 학급이 12명 정도이고 전체 학교 인원수가 70명 정도인 작은 시골학교다. 이 학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모든 아이들이 수업이 끝난 후 4시까지 같이 운동장에서 뛰어논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놀이터에 친구도 없어 학원에서 친구를 만나서 놀아야 하는데, 통학버스가 있는 이 학교는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놀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같은 학년 아이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년이 섞여서 논다고 했다. 애들은 놀면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 학교는 정말 맞춤이었다. 게다가 통학버스도 집 앞을 지나가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이 학교는 사는 곳으로 배정받을 뿐만 아니라 이미 다니고 있는 형제자매를 먼저 뽑은 뒤 동단위 지역에서 보내길 원하는 부모들의 추첨으로 가는 곳이다. 앞에 축사가 있다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미 다니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의 만족감을 생각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원래 가려고 했던 학교 앞의 집으로 이사하지 못한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더 좋은 게 찾아오려고 했나 보다 생각했다. 2020년에 이사하고 3년 정도의 기다림을 거쳐 2022년 12월 드디어 학교 추첨을 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눈앞에서 좌절되었다. 3년 동안 기다리면서 이미 그 학교 학부모였던 나였다. 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남들이 입학이 로또라고 해도 우리 아이는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올해 동단위 지역에서 입학을 원하는 사람은 18명이고 3명의 학생을 뽑는다고 했다. 강당에서 탁구공을 통해 추첨을 하는데, 강당에 입실하면서 번호를 뽑고 그 번호 순서로 추첨을 했다. 나는 17번을 뽑았다. 운이 좋게 나까지도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나는 당연히 합격을 뽑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은 두 개의 탁구공 중 내 손에 들어온 건 불합격의 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