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지막 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초란 Jan 23. 2022

마지막 날까지 아플까?

언젠가 아프지 않은 날이 꼭 찾아올 거야.

엊그제부터 또 몸이 여기저기 말썽이다. 

5년 전 허리 디스크가 터지고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왔었다. 지금은 마비는 거의 없어졌지만 좀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허리부터 다리가 통증을 넘어서 져려오는데 요새는 목부터 팔 까지도 문제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허리는 계속 좋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지 않은 상태’가 있었던가. 기억조차 없다. 아마 갓난아기 때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지 않나 싶다.


같은 의미로 머릿속도 깨끗했던 적이 없다. 편두통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생각이 너무 많고 빨리 지나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머릿속에 방이 여럿 있는데 그 방에서 각기 동시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상태인 걸까. 

내 머리, 좀 쉬게 해 주고 싶다.


잠이라도 잘 자면 머리가 좀 쉬겠지만, 가위에 눌리거나 꿈을 워낙 많이 꾸고, 그 꿈도 대부분 꿈 상태인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상태이다.  당연히 깊은 잠은 못 자고 그로 인한 옅은 수면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인가, 침대 위에 있는 시간은 길다. 가늘고 긴 수면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 생각이 많아서 수면장애가 있는 것인지 수면장애가 있어서 생각이 멈추질 않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상태’가 기억이 안 나니,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보다 더 어렵다.(이 문제는 당연히 닭이 먼저이다.) 한술 더 떠서 계절성 성격장애(특정 계절에 찾아오는 우울증) 시즌이 오면 그냥 머리가 아프고 생각이 많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과 무기력까지 같이 온다.


사실, 허리 아픈 것보다 머리 아픈 것이 더 견디기 힘들다. 

나에겐 보이지 않는 아픔이 물리적인 아픔보다 취급이 더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아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해봤자 남들에겐 남의 일이고, 남의 아픈 소리 듣고 기분 좋을 것도 없으니 아픈 것도 민폐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내 일이기 때문에 끝이 안 보이는 이 괴로움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관련 책을 읽고 나의 객관적인 상태를 인지 한다던가 좋다고 하는 것을 먹는다던가, 운동을 한다던가. 그러다가 정 안될 땐 전문가를 찾아간다. 


상담 선생님이 앉아계신 의자 뒤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오후의 따뜻한 햇볕이 부드럽게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언젠가 아프지 않은 날이 꼭 찾아올 거야.”

매번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말씀해주신다. 지병이 있거나 지금 어딘가가 아픈 사람들에겐 이 말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하는 말이다. ‘언제가’는 기약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이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난 나의 마지막 날을 곧잘 상상하는데, 상상 속의 난 어디도 아프지 않은 모습이다. 어디도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의미 있는 삶이었어.’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 복잡했던 ‘나’는 영원히 쉴 것이다. 그때까지이다. 아픈 것도 그날이 올 때까지 만이다. 


난 이 상상 속의 마지막 날과 같은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도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후회 없이 긍지 높은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당신의 마지막 날도 그러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날에도 똑같은 마음이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