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직도 중학생 때와 같은 마음인데…
코로나 때문에 계속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기에 국가 간의 이동은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되었고, 현실적인 이유로는 해외 귀국자는 2주 격리가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쉬는 것은 9일이 최대치였고, 2주 격리가 있는 한 귀국은 무리였다.
그런던 해외 거주인들에게 빛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질 무렵, 작년 8월부터 2차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서 격리 면제서를 신청해 발급받으면 한국에 들어갈 때 반드시 해야 하는 2주 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0월부터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에 해당이 되어 2년 만에 잠시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11월부터 다들 알다시피 오미크론으로 다시 전 세계가 코로나로 요동치기 시작해서, 작년 10월에 급하게 왔다 간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년 만에 본 가족들은 크게 변함없었다. 언제나와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즐겁게 대화하고, 같이 드라마를 보고, 웃고, 떠들고.
심적인 면에선 말이다.
물리적인 면은 다들 상당히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특별히 편찮으신 곳은 없지만 그냥 계속 어딘가가 불편하고, 실제로도 쇠약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할아버지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우리 엄마 아빠도 체력 저하가 많이 느껴졌다. 아빠는 저번엔 직장에서 쓰러졌다고도 하고 산책도 힘들어서 길게 못 한다고 한다. 아직 50대인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다가 아빠가 불쑥,
“나는 내가 아직도 중학생 때와 같은 마음인데… 이게 정상인가?”
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다들 이런 건지, 본인이 좀 이상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그래. 초딩때랑 별 다른 게 없는 것 같아. 다들 그렇지 않을까?”
나의 대답에 아빠는 “다들 그렇지?” 하고 안심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현실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나였고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유치원 때의 나도 초등학생 때의 나도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인. 나이를 먹어도, 경험을 쌓아도, 책을 읽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그 무엇이 바뀌어도 나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아빠가 ‘마음’이라고 표현해서 그대로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자아’가 더 가까운 의미라고 생각한다.)
밤늦게까지 안 잔다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침대 속에서 몰래 태백산맥을 읽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방과 후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게임하던 나의 마음도, 남동생과 길거리 매운 음식 순례하던 그때의 마음이 생생하다.
물론 앞으로 살아가면서 경험에 의해 생각이 깊어진다던가 사회적 역할의 변화에 따른 적응을 하기 위한 변함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변해왔다. 그러나 생각은 변할지언정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빠는 본인이 궁금해서 나한테 물었겠지만 반대로 저 질문으로 나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 엄마가 젊었을 때보다 체력이 약해진 지금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쇠해진 지금도, 각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때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쩌면 자아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대의 축복이자 최대의 형벌이 아닌가 싶었다. 과거의 물리적/사회적 자신과 지금의 물리적/사회적 자신은 전혀 다른데, 변하지 않는 자아와의 간극을 어떻게 해야 메꿀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최대 문제는 마지막 날에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신도 무심하시다. 언젠가 모두에게 찾아오는 마지막 날이라면, 그에 맞게 마음도 점차 변화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았잖아... 아닌가? 인간이 변화되지 않는 것뿐인가?
수많은 과거를 쌓아 지금이 되어있을 터인데 인간의 마음은 무엇으로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일까.
요즘도 가끔 기분 좋은 생각을 한다. 시험기간 마지막 날, 밤새고 시험 보고 집에 돌아와 내방 책상에서 가채점을 하면서 오후 1시의 햇볕에 꾸벅꾸벅 조는 느낌. 친구와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중학교 시절. 햇살이 너무 포근해 마루에 이불 끌고 와서 자던 어렸을 때. 누군가에게 보호받던 그 시절.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나의 마음은 달라진 것도 뭣도 아닌데 나는 달라져있고, 달라졌어야만 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인생은 나에게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해 올 것이다.
이 잔혹한 간극이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고 나를 나답게 해 준다.
...우선 일본에서 리모트로 어떻게든 아빠에게 운동을 시키는 것부터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