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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초란 Apr 07. 2022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일탈

#페이크 에세이

꿈은 무의식을 나타낸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잠에서 깨면 다 잊죠. 자신이 꿈을 꿨는지 안 꿨는지 조차 잊어버리는 겁니다. 깊게 잘 자는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았다고 느낀다고 해요. 그 정도로 깊게 수면에 빠지는 것이지요.


저는 저번에도 말했듯, 수면이 원활하지 못해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꿈을 꾼 적도 있고 엉엉 울면서 잠에서 깬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악몽에서 눈을 떴는데 눈 감으니까 아까 도중에 깨서 멈췄던 그 악몽이 다시 이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만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눈만 감으면 꼭 가위에 눌렸던 시기도 있어요.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조는데도 가위에 눌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꿈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져 지금이 꿈 속이라 가위에 눌리고 있는 것인지 현실이라 가위에 눌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꿈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기 시작했어요.

“아, 이건 꿈이야.”

깨닫는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의 모순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현실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형태의 물건, 사람, 풍경이라 누가 봐도 꿈속이에요. 꿈이라고 깨달기 전까지 이 모든 것을 생생한 현실이라고 느꼈는데 신기할 따름입니다. 사물들이 입체적인 것 같은데 세세한 곳은 신경 써서 안 만들어서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거나, 콜라주같이 여러 사물들이 뭉텅이로 합쳐져 있기도 합니다. 몇 번이나 이 현상을 마주했지만 매번 놀랍습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공간이 꿈이라는 것을 인식한 다음부터는 모든 것을 내 멋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같이 남의 꿈에 들어가는 것은 할 수 없을지라도 자신의 꿈을 설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뭐, 제가 영화같이 꿈 설계를 훈련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얼마나 정교한 꿈을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엔 꿈이란 것을 안 순간 잠에서 깨버리더라고요. 뭔가 뇌에 그런 명령어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꿈속에 자아를 가진 “나”는 있으면 안된다 같은?

그것도 몇 번을 하고 나니 꿈속에서 오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1. 우선은 꿈속의 스토리를 따라간다.

“내가”꿈속인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뇌에 알리면 깨버리게 설정되어있으므로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내 뇌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입니다. 꿈이다! 하늘을 날고! 그다음은 먹고 싶은 거 잔뜩 먹고! 흥분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만들어내다 보면 금방 들키고 깨어 버립니다.

우선은 침착하게, 들키지 않도록 지금의 꿈속의 내용(스토리)을 따라갑니다.


2. 꿈속에서 무엇을 할지 평소에 생각해 둔다.

갑작스레 뭘 할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뇌에서 내가 꿈속에서 깨어버린 것을 감지합니다. 꿈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평소에 생각해 두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 꿈속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하나둘씩 자신이 원하는 등장인물, 사물,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꺼냅니다.


이 두 가지만 알면 꿈속에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꿈속에서 이게 꿈인지 자각하는 것이 먼저이긴 하지만요.


이렇게 저는 인생의 3분의 1을 꿈속에 꿈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별별 것을 다 해 봤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 세계에선 하지도 못하는 수영으로 대륙 횡단, 평소 허리가 약한데 아픈 것 없이 트럼폴린도 맘 껏 해 보고, 모두의 로망? 시험공부도 해 봤습니다.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하면서 잠들고 꿈속에서 놀고. 지겹게 놀다 놀다 결국엔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요 10년간 항상 같은 꿈을 설계하고 꿉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되돌아가고 싶은 때가 언제인가요?

다시 한번 돌아간다면 대학 때로 돌아가서 좀 더 스펙을 쌓고 싶은 마음도 있고, 사실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물론 꿈 속이라면 이런저런 것 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꿈은 현실이 아니잖아요? 그냥 꿈일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과거를 통해 자신의 지금을 바꾸고 싶은 욕망의 IF꿈은 의미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할 수 없어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진짜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때는 언제일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전 망설임도 없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그날이 떠올랐습니다.


막 시작한 신학기가 어느 정도 안정된 5월.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그날은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날은 어째서인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언젠가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때다! 하고 한 겁니다. 나름 진짜 큰맘 먹고 한 일탈이었습니다.


무려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이불을 끌고 거실로 온 겁니다. 거실 베란다 가까이에 이불을 깔고 몸을 돌돌 말았습니다. 같은 이불인데 왜 침대에서 쓸 때 보다 더 뽀송뽀송하게 느껴졌을까요. 조금 더 따뜻하고, 그러면서 이상하게 시원하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조금 신나기도 하고, 몽글몽글. 조금만 이러고 있다가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원상복귀 하는 완전 범죄를 꿈꿨는데. 어느샌가 꾸벅꾸벅 졸면서 엄마가 장보고 돌아와 저녁을 만드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탕탕탕탕…”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납니다. 생선도 튀기고 있는 것 같아요.

반쯤 졸린 정신을 붙잡고 이불을 침대로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 몸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을까요?

지금은 혼자 사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가끔 현실에서도 해보는데 그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물론 이불도, 은은한 햇살도, 기분은 좋습니다. 그런데  가 다릅니다.

뭐가 그렇게 다른 것일까요?

지금과는 다른 몸 사이즈? 어릴 때 쓰던 것과는 다른 이불? 당시의 엄마? 저녁 메뉴?

인생 최초의 일탈이었지만 따뜻하고 안심되는 기억입니다. (실제로 당시, 이불 끌고 왔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혼나지도 않았고요. )


오늘도 전 꿈속에서 작은 몸으로 이불을 끌고,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그때 그 거실로 향할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일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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