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독립을 이룬 곳, 프라하의 집 2
잎은 자라다가 시들었고 꽃은 피었다가 곧 졌다. 창 밖 하늘, 맑은 날이 있는가 하면 비가 갑자기 쏟아졌던 날도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날이 있었다면 또 다른 날은 편지를 쓰느라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향수를 다 썼을 때쯤 또 다른 친구로부터 온 소포가 도착하기도 했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가 내 집 다녀갔다. 들어오고 나간 자리에 나만 아는 증거들이 늘어갔다. 그렇게 프라하의 내 집에 시간이 쌓여갔다.
첫 인연의 화분, 활짝 핀 장미꽃이 시들 일만 남았을 때도 아껴주고 싶었다. 꽃잎이 바짝 마를 때까지 두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꺾어서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볼 때마다 다음 봄에도 꽃이 필 수 있을까, 나는 그때까지 프라하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었다.
하루는 여행하고 싶은 도시들을 적어봤다. 가까워서 당장 갈 수 있을 법한 도시와 꼭 한 번은 가고 싶었던 곳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었다. 그 도시에 다녀오게 될 때마다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다녀왔구나’라는 여행의 증거가 쌓여가고 있었다.
찬장에는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글귀를 적어뒀다. 그 구절은 가만히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나를 밖으로 밀쳐내곤 했다. 열심히 산책하게 했고 부지런히 장을 봐오게 했다. 그런 다음 마시는 맥주가 더욱더 맛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한 뒤에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용을 다한 물건과 함께 새롭게 온 물건이 함께 놓인다. 내 집에 다녀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마음들이 늘어간다. 스스로 했던 결심들도 잊지 않기 위해 붙여나간다. 그런 것들은 나 스스로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문득 집 안을 둘러볼 때 시간이 이 만큼 흘렀구나를 알게 해줬다. 더디지만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다고,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그렇게 되고 있다고 믿게 해줬다. 소중하다.
[내 첫 독립을 이룬 곳, 프라하의 집]
1. 독립된 공간에서 자립의 시간을 얻는다는 것
2. 소소한 발견, 소중한 발전이 있는 곳
3. 밖의 풍경까지 내 집인 이유
독립을 이룬 곳, 프라하의 집내 첫 독립을 이룬 곳, 프라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