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수업과 해외연수의 기회가 찾아오다.
대학 2학년이 되고 변화가 많이 생겼습니다.
일단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은 사람을 뽑아 별도로 교직이수를 시키고, 교원자격증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는 일단 진로에 대한 폭을 하나 더 넓힌다는 차원에서 수업 신청을 했습니다. 영어 전공에서 조금 더 심화하게 배우는 과목들이 생기고, 교육철학, 교육경영 등등 과목을 교육학과 쪽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1학년 때 선발된 영어 프로그램 수강자들 중에 중도 이탈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당시 수업시간이 길어서 그랬는지 프로그램이 안 맞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얼른 등록을 했습니다. 한 학기에 30만 원 정도로 하루 세 시간 매일 원어민 수업이라니 정말 놓칠 수 없지요. 근데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 아닌 2학년 때 원어민을 만나게 된 게 천만다행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1학년 때 조금씩 채워둔 저의 영어 컵에 인풋이 쌓였기 때문에 원어민의 말을 알아듣기도 어렵지 않았고, 또 나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족하지만 했고, 무엇보다도 1학년 때 외워놓은 실용영어 표현이나 시트콤 속의 표현들을 써먹어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어머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처음부터 원어민 수업이 능사는 아닙니다. 우리 아이가 영어를 충분히 듣고 눈에 익혀서 어느 정도 알아듣고 또 표현도 해서 의사소통이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은 될 때 그래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 원어민 수업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요.
지금 정부에서 내놓는 초등영어 정상화 과정 안 중에서 원어민 화상수업이 논의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급한 것은 1, 2학년 아이들의 영어의 컵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처럼 영어 한 방울 안나는 나라(영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국가 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무조건 원어민 수업 최고! 가 아니고요.
집중 프로그램을 하니 오전에 강의로 들었던 내용들을 수업이 끝나고 가서 원어민에게 활용할 수도 있고 점점 영어가 재미있어지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러던 중, 당시 S양회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회사에서 직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보내준다는 거예요. (당시 IMF 직전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이 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졌고요. 전 운이 대단히 좋았죠. 사실 저희 세대까지만 해도 대학때 그저 먹고 대학생들이었는데.. 참.. 요즘 대학생들의 치열함과 비교해 볼 때 '아 옛날이여' 네요.) 전국적으로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본사에 모여서 토익시험을 본다고 하더군요. 토익 하면 1학년 때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의고사를 사서 집중적으로 풀고 나름 대비를 했습니다. 시험 보는 당일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기는 죽었지만 예전보다 뭔 소린지 알아먹는 리스닝 파트에서 자신감과 또 한층 시험의 유형에 대해 알고 있는 요령이 합쳐져서 잘 보았고 ,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약주 한잔 드시면 그날 일을 말씀하십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기술자셨어요. ) 누가 김계장(직급이 없으시다 보니 그냥 부르는 호칭^^;;) 부르는 거야 달려가 보니 글쎄 그 집 딸내미가 연수 프로그램 합격했대 임원 직원들 자식들도 다 떨어졌는데 공부 잘하네~" 하셨다는 거예요. 부모들은 정말 자식이 1% 잘하면 1000% 잘했다 마음에 품는 분들이시잖아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를 말씀하시며 내가 딸 잘 키웠지 고맙다 하셔요. 저야말로 아버지에게 감사드리죠.
당시 아시아의 나라 싱가포르와 일본을 10여 일 동안 둘러보았고 이 때 해외연수의 기회는 제 눈을 넓혀주었습니다. 우선 비행기도 처음 타보고, 호텔에서 처음 자보고 조식도 처음 먹어보고, 면세점도 보고 이런 재미난 해외여행 경험이 그때 처음이었고요. 교재 안에서만 보고 외웠던 "two sunny side up eggs, please(계란 반숙 두 개 주세요)", "Excuse me, how can I get to~? (죄송하지만 ~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같은 표현들을 실제로 써보면서 내 말을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때 그 짜릿 찌릿한 기분, 저는 이때 영어 공부의 재미를 맛본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영어가 중국어와 함께 모국어처럼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입니다. 하지만 발음은 중국어와 섞여서 Singlish(싱가포르 +잉글리시)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학교 어학원에서는 딱 미국 악센트만 쓰는 원어민들과 이야기해봤던 터라 처음엔 안 들리기도 하고 '이 사람들 영어 잘하는 거 맞아?'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고 정말 다양한 발음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거죠. 암튼 아주 짧은 해외 경험이었지만, 이제 영어는 제게 더 이상 교실 안의 공부하는 과목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영어로 말을 하긴 했지만 실제 나의 생활에서 살아있는 영어를 하는 (영어로 물건을 사고, 길을 묻고, 감정을 표현하고..) 적은 처음이었어요.
저의 경험을 비추어 저는 해외연수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에요. 단 해외에서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넓히고 내가 그동안 배우고 쌓은 영어를 써보는 계기가 되는 차원에 서지 무조건 외국에 간다고 영어를 배워오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랍니다. 만일 주위에 1-2달 연수로 갑자기 영어실력이 늘고 발음이 좋아지고 영어공부에 대해 더 자신을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그 친구가 그전에 자신의 영어 컵을 찰랑찰랑 넘치도록 잘 채웠기 때문이고 그것이 딱 넘치는 시기가 해외연수와 맞물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친구를 부러워하며 당장 연수를 쫓아가기보다는 일정기간 나의 영어를 잘 채운 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세상을 경험해보는 것은 분명히 더 영어 공부에 동기부여가 되리라고 생각해요. 기간이나 프로그램의 질이나 가격이나 이런 거 다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올해 여름 아니면 조만간 연수를 갈 예정이라면 지금 더 열심히 영어를 듣고 읽고 자신의 컵을 잘 채워놓으세요. 비싼 돈 들여서 귀한 시간 들여서 나가는 건데 가성비 갑, 최대한의 효과를 보기 위한 팁입니다. 이후로 확실히 영어 공부를 더 의미 있게 했어요. 전공 수업도 열심히 듣고, 방과 후 집중 프로그램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그렇게 영어와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암튼 저의 영어 친구 되기 2탄은 원어민 수업과 해외연수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갔습니다.
오늘도 여기서 마칩니다. 최대한 빨리 다음 편을 쓸게요. 다음 편은 제 영어 학습의 하이라이트입니다.
- To be continued
오늘 이 글을 쓰며 예전 사진을 뒤지며 아버지가 많이 떠오릅니다.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결혼생활을 시작하신 아버지는 젊은 시절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해 해외근로자로 사우디, 리비아, 말레이시아 등등 낯선 나라에서 홀로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셨어요. 그때 말도 안 통하는 노동자로서 어려운 삶의 경험 때문인지 저에게 영문과를 가라고 강요(그 이전까지 그 이후로도 제 진로에 대해 어떤 관여도 안 하신 분입니다) 하셨죠. 아버지는 늘 제게 "아버지가 많이 못 배워서,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라고 하십니다. 제가 '아빠 덕에 영문과 가서 일 잘 하고 살아'해도 그러십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그 짐을 벗어드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표현해야 이렇게 키워주신 것 너무 감사한다는 것이 전해질까요? 가족을 위해 평생 험한 일터에서 희생 해온 당신. 이제는 온전히 당신 삶을 사셔야 하는데 너무 나이가 많이 드셨어요.
오늘은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겠네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