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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Oct 15. 2020

공감이 '절대적' 의무는 아니에요

나의 이상향은 행운목도 봉숭아도 아닌  아가베 아테누아타



"아무리 그래도 그 말씀은 좀 아니지 않아?"

"............."

"그래? 안 그래?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이를 낳아?"
"그냥 넘겨. 왜 그렇게 일일이 반응해? 그럴 때는 그냥 넘기는 거야."


명절에 큰집에 다녀오는 차 안, 어김없이 싸한 분위기가 감돈다. 나만 보면 잔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친척 어르신은 그날도 어김없이 잔소리를 했고 난 또 그날도 그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무 말도 못 했기 때문에 그 화는 점점 팽창해 차 안에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런 소모전을 꽤나 이어가던 나날. 남편에게 '공감'을 '강요'하던 나는 필요한 공감을 보충받지 못해 갈증을 일으키며  '공감전'이라는 2차전을 치르곤 했다.




행운목이란 식물을 집에서 키운 적이 있다. 작은 아이는 유리 단지 안,  찰랑찰랑 담긴 물속에 들어가 서있는 행운목 모습에  흥미를 느꼈는지 보고 나서 대번에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집에 데리고 와서 흥미를 잃고 방치해서 결국엔 내 차지가 됐다. 흙속애 심는 게 아니라 작은 받침대에 물을 담아 키우는 행운목은 생각보다 키우기 번거로웠다. 꽃가게 사장님이 물을 너무 많이 잠기게 하지 말고 오목한 접시에 담아 주라고 했다. (신선한 물을 주라는 설명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 설명이 너무 과했다) 집에 오목한 접시에 물을 담고 행운목을 담가놔도 이틀 지나면 물이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청소하다가 한 번씩 본  행운목은 언제나 물을 다 빨아들여 갈증 나 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물을 흡수해 바닥에 물이 말라있었다.

" 아 참 번거롭네. 차라리 흙속에 사는 식물이 낫네. 왜 물에 담겨 자라지? 차라리 연꽃처럼 물에 퐁당 빠져있든지. 날마다 너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고.. 너 은근 관심종자니? "


물을 깔고 자라는 행운목. 그 물을 사람 눈에 흐르는 눈물로 이어봤다면 너무 억지일까?

수시로 살펴보며 (눈) 물을 추가해줘야 하는 행운목의  지속적인 공감 요구는 공감을 하고 싶던 의욕마저 오히려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행운목에 대한 관심은 줄고 오히려 번거롭단 생각이 커졌다.




인터넷에는 여기저기 지역맘 카페가 있다. 아이 둘 키우면서 외식 장소, 놀이문화 등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데는 지인 찬스보다 좀 더 광범위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그런 맘 카페가 시끄러운 때는 국내 주요 인사의  도덕적 사회문제가 불거졌을 때다. 자신이 지지하는 주요 인물의 문제를 전폭 감싸려는 이와 그런 감싸기에 혐오를 느끼는 이들로 극명하게 갈린다.


발단은 인터넷 카페 내 한 회원이 '문제시되는 인물'에 대해 강한 주장을 담은 글을 올리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글에 공감하지 않는 회원은 그 글에 '이 의견에 공감할 수 없다'며 원글자 의견의 모순을 댓글로 주장한다. 원글자는 다시 반론을 제기한 댓글의 비합리성을 끌어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라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개된 댓글과 그 댓글이 열몇 개에 이르면 갑자기 흥분을 넘은 결례의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고 급기야 위기상황에 이른다. 


이를 지켜보던 카페 내 지나가던 사람 1부터 100은 각자의 편에 있는 원글자와 댓글자를 보호하는 댓글을 달면서 사태는 확대된다. 게시글 하나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며 그동안 교양 있던 모습들을 잠시 벗고 혈전을 벌이기도 한다. 급기야는 두 파로 나뉘어  다른 둥지를 찾아 새 카페를 열기도 한다. 하나이던 맘 카페가 둘로 나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을 몇 차례 지켜보면서 그 양갈래의 의견이 하나로 매듭지어지리란 기대는 일치감치 접게 됐다.

사람들은 이미 내 안의 답을 정해놓고 그에 맞는 합당한 근거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문제시되는 인물의 생김새 중 '입모양'이 파장의 시작이라면,  한편에서는 그 인물의 '뒷모습'을 보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같은 해당 인물의 '앞모습'을 보고 그 이야기를 되받아친다. 

전자는 뒷모습을 제시해야 내 생각을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고, 후자는 앞모습을 보여줘야 그들의 생각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앞모습만 들춘다. 토론의 대상은 같은 인물이지만 시각은 다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화제의 대상(앞모습 <->뒷모습)도 달라진다.


이 지난한 싸움은 어차피 끝이 없다  이도 저도 아니게 멀뚱멀뚱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어설프게 두 카페의 초대를 받고 양쪽 회원이 되기도 한다. 그냥 양쪽 회원이 돼서 왔다 갔다 하다 그마저도 흥미를 잃었다.


이런 모습을 오랜 기간 지켜보면서 '내 의견에 공감해주길 바란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공감능력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진 요즘, 가족이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이해의 의무'를 저버린 배신자로까지 취급하고, 나아가서 상대방을 '공감 무능력자'로 비난하곤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의견에 다 공감하며 살 수는 없다. 공감능력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좋은 감정이고 약자를 이해함으로써 가해행위를 막아주는 방패막이되지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모든 곳에 광범위하게 쓰일 수는 없다.



타인의 과제는 타인의 과제로 넘길 것



내 감정에 공감을 받지 못한다고 분노하거나, 상대방에게 공감을 하도록 설득하는 행위는 정당할까?

엄밀히 말하자면 나에게 공감할지 안 할지는 타인의 과제다. 살면서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구별함으로써 낭비를 줄인 에너지 양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내 감정에 공감받지 못한다고 분노하는 것은 공감이 안된다는 상대방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 행위다.


내가 남편한테 내 감정을 공감하라고 강요한 것은 또 다른 지배 욕구에 불가했다.  감정적 지배행위.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해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는 것. 이것은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정신적 지배행위인데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손톱을 물들이는 봉숭아꽃잎처럼. 그렇게 내 색상을 타인에게 물들이려고 했다.

이 지배행위는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늘 갈등을 빚었다. 공감받기를 타인의 과제로 넘겼다면 편했을 텐데.


공감능력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수돗물이 아니다.

가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눈물이다.

억지로 강요할 수도, 강요한다고 샘솟지도 않는다.





그즈음 여행 가기 전 물을 넉넉히 보충하지 못해 물을 좋아하는 행운목을 결국 말려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 집 거실 귀퉁이에 수년째 서 있는 아가베 아테누아타>

그 뒤에 꽃시장에 가서는 "사장님 키우기 수월한 식물은 뭔가요?"라는 말을 꼭 덧붙이게 됐다. 

그때 사장님의 권유로 눈에 들어온 화분이 아가베 아테누아타이다.

2-3주에 한 번만 (흙 상태를 보고) 물을 주면 되는 식물이다. 자체 잎과 줄기에 수분을 저장한다고 한다.  꼭 햇볕에 잘 드는 곳에 놓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이보다 기르기 편할 수 있는가?


물과 햇볕에서 자유로운 아가베 아테누아타를 보고 있으면 '독립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아가베 아테누에타를 보며 난 생각한다. 

내 안의 공감능력은 키우되 타인에게 공감을 강요하지 않기로.

아가베 아테누아타처럼  2-3주에  한 번만 물을 줘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독립'을 하려고 한다.

상대방에게 공감해달라고 쓰는 에너지를 모아,  

내 언행의 설득력을 세우는데 쓰려고 한다.




* 이 글은 이상적인 관계에서의 '공감'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받기'에 실패하신 분, '공감전'으로 관계가 더 소원해진 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봉숭아 사진제공 : 픽사 베이 >


이 글은 21. 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에 일부 수정돼 실려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출간 이야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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