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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Mar 07. 2021

돌고 도는 수호천사

같은 사람 달라진 역할

이 글의 장면들은 각기 다른 날 바라본 광경을 한 번에 편집한 것입니다.


# 1

커피 원두를 사려고 나갔다 왔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골목 끝에 위치한 학교에서 초등 아이들이 줄지어 나온다.  저기  맞은편에서 초등학생 아이와 엄마가 같이 걸어 나온다. 아이는 엄마손을 잡고 있지만  몸은 자꾸 엄마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고 있다. 장난꾸러기인가? 싶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엇? 그러고 보니 아이 어깨에 가방이 없다. 재빨리 눈으로 훑어본다. 옆에 있는 엄마 어깨에서 아이 가방을 찾아냈다. 체크무늬 파란 가방의 끈이 짧은 탓에 엄마 어깨 위에 생뚱맞게 얹어있다.

나도 걷고 마주 걸어오는 아이와 엄마도 걷다 보니 금세 가까워졌다.  멀리서 보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다시 보는 건 늘 흥미롭다. 아이는 발로 무언가를 차고 싶은가 보다. 매끈한 도로에 작은 돌멩이 하나 없는 게 아쉬운지 자꾸 헛발질을 한다. 엄마는 그런 아이 손을 점점 잡아당긴다. 아이하고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나마 함박웃음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아이가 날 보지 않는다. 아쉽게 스쳐 지나간다.



#2

버스 정류장에 대여섯 명의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있다. 주변에 혼자 서있는 아저씨, 학생들과 달리 젊은 연인 커플이 있는 곳만 환한 느낌 이디. 여자는 가로수에 등을 기대섰고 남자는 아예 큰길을 등지고 여자를 마주 보고 서 있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서로의 반응만 기다리며 주고받는다. 어쩌면 수차례 버스를 놓치고도 아쉬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보는 눈빛이 이미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으로 향하는 것 같다. 여자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며  마냥 웃는다. 남자는 여자를 웃기는 사명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계속 말을 한다. 내가 들으면 분명히 하나도 재미없을 이야기일 게 분명하다. 이런 삐딱한 시선으로 보다 보니 여자한테 가방이 없다. 가만 보니 남자가 등 뒤에 백팩을 메고 오른쪽 어깨엔 여자 가방을 둘러메고 있다. 이런.

전에 엄마가 가방을 대신 들어줬던 초등 남학생이 훌쩍 크면 여자 친구의 가방까지 들어주게 되는 걸까? 그런 걸까? 뭐 가방을 들어주는 게 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 친구를 보고 있는 것보다 마음이 더 가벼울 수는 있다. 자기 자신이 좋으면 그만이다.  마음이 무거운 것보다 더 무거운 건 없으니... 게다가 저 여학생이 저렇게 상큼하게 웃어주는 데 어깨의 통증을 느낄 수나 있을까?


#3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본 광경이 생각난다. 약국에 비상약 사러 이른 저녁 나갔을 때 일이다. 나간 김에 동네 마트를 한 바퀴 도는데 양손에 장 본 물건을 잔뜩 들고  가는 중년 여성이 있다. 종량제 봉투 가득 자리를 차지한 물건들, 언뜻 보기에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다. 얼굴 근육까지 동원된 걸 보면 꽤 힘이 드는 게 확실하다. 배달도 시키지 않고 서둘러 들고 가는 걸 보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준비할 찬거리인 가보다.  배고프다며 식탁에 둘러앉을 가족을 생각해서인지 번쩍 들고 황급히 멀어진다.

작은 가방도 남자 친구가 들어줬던 가냘펐던 여성의 모습과 대조된다. 어느새 여성에서 엄마로, 한 집안 가족의 건강 책임사로 어깨가 무거운 그녀에겐  정작 장바구니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4

어스름한 저녁, 내 앞에 터덜 터덜 걸어가는 아저씨가 있다. 홀쭉한 서류가방 하나 들었을 뿐인데 어깨는 축 꺼져있다. 가족들 생계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쳐진 걸까. 여자 친구 가방까지 거뜬히 들던 청년 모습이 세월이란 옷을 켜켜이 입으면서 이렇게 변하나 보다. 오늘도 회사에서 이상한 말에 치여도 이상한걸 이상하다 말도 못 하고 꾹 삼키며 돌아오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속은 더부룩한 채 식욕부진을 일으킨다.  가장의 눌린 어깨엔 어떤 가방보다 무거운 무게가 얹어 있다. 아저씨가 집에 도착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식사가 마련돼 있었으면 좋겠다.


#5

할아버지 한분이 전동휠체어를 혼자 타고  인도를 죽 나아가는 걸 본 적 있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간 할아버지 휠체어는 언뜻 보기엔 휠체어인데 전동으로 움직인다. 보통 휠체어 뒤에 있는 보호자 손잡이가 필요 없어져서인지 퇴화돼 소멸됐다. 서둘러 가시더니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고 기다리신다.  옆에 가서 쳐다보기엔 결례일 것 같아 45도 비스듬히 왼쪽 뒤에 섰다. 앗 앞 바구니도 있다.  할아버지의 스포츠 가방으로 보이는 고리 달린 가방이 앞 바구니에 누워있다. 할아버지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전동 휠체어. (할아버지의 수호천사인 걸까?) 가방을 들어줄 필요도 없이 뒤에서 밀어줄 필요도 없이 나아가는 할아버지시다.  젊은 날 가장의 무게를 다 벗어버리고 이제 홀홀히 다니신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할아버지께서 출발하기 전 왼쪽 도로에서 차가 오는지 확인하느라 고개를 돌리신다. 언뜻 본 옆모습 속 눈빛은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이제 좋은 날은 다 가고 남은 것은 없구나 하며 눈빛에 텅 빈 허무가 녹아있을 거라고... 주제넘게 생각했었다. 쓸쓸함, 적적함이 가득 차 있을 거란 내 편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할아버지 눈빛은 충만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단지 다리에만 힘을 잃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그 눈빛은 지난날이 소비가 아닌 축적이라고 말해 주는 듯 보였다. 나이 듦이란 젊음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삶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집에 돌아와 서재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노년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읽을 책에서 읽은 책의 비중이 늘어가듯이 경험이 낯섦을 점차 점령하는 것, 그렇게 내 안에 쌓여가는 경험으로 충만해질 수도 있나 보다. 

오늘의 한 페이지에 적어놓는다. '쓸쓸한' 노년이 아닌 '충만한' 노년. 이로써 또 하나의 편견을 지워버렸다

(올해 내 목표 중 하나는 내 안의 편견 지우기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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