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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Mar 19. 2021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면 물 빠졌을 때는?

같은 대상 달라진 상황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아이는 실망한 듯 보였다. 아이 기분 전환해 주려고 한 시간이나 걸려 대부도에 왔는데 아이가 실망하면 미션 실패다.  내가 난감해하는 사이 남편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만있어봐. 저기 삽하고 호미 같은 걸 파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런데 갯벌을 파서 뭐하지? 어차피 뭐가 나오든 가져갈 것도 아닌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이미 그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장화, 호미, 삽 등을 팔고 있었다. 갯벌 체험 세트장 같이 진귀한 것들이 많았다. 호미도 크기별로 다양했다. 간단한 몇 가지를 사서 다시 바닷가로 내려갔다.

사진에는 작은 아이. 큰아이는 출연을 거부해서^^


내려갈 때만 해도 시큰둥하던 작은 아이는 막상 서서 쓰윽 쓰윽 몇 번 뻘을 파보더니 결국에는 바짓단을 걷고 쭈그리고 앉았다.

작은 조개껍질을 찾고는 웃으며 뒤돌아 본다. 삽도 호미도 안 사겠다던 큰애까지 슬며시 뻘로 나간다.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뻘을 호미로 삽으로 팠다 덮었다 한다. 아이 둘이 찾아낸 조개마다 손톱만 한 조개라 고스란히 다시 묻어준다.


남편과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까만 해도 안개로 가려졌던 바다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 이럴 때 아니면 우리가 언제  바닷물을 다 걷어내고 볼 수 있겠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나 보다.

바닷물이 차올랐을 때는  넘실거리는 파도와 하얀 거품만 눈에 들어오더니                                            

바닷물이 물러나면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바닥 속을 파헤쳐 조개를 얻어낼 수도 있고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도 이참에 건질 수 있다.


내 인생에 차올라 넘실대던 물이 빠질 때는

떠나간 바닷물을 그리워만 말고

내 안에는 뭐가 있나 들여다보란 뜻인 듯하다.

의외로 끊임없이 무언가가 나오곤 한다.


코로나 19로 만남을 줄이는 요즘,

그럼에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람, 안 만나니 편안한 사람,  뜬금없이 생각나는 사람의 구분이 명확해진다.

바닷물로 덮여있어서 안보였던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이 상황에서도 꼭 보고 싶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상황이 더 나아지면 만나자'라고 미루게 되는 친구도 있다(아마 그 친구도 같은 감정일 게다).

상황은 마음에 따라 달리 읽게 된다.


흔히 물들여올 때 노 저으라 한다.

그런데 막상 물이 들어왔을 때는 목적지를 향해 노 젓느라 정신없었다.

여기저기 부르는 사람도 많아 이리저리 파도를 타고 너울거리곤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그저 가까울 뿐인 사람,  필요로 나를 만나는 사람이 뒤섞였다.

파도가 출렁이는 건지 내가 나아가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물이 차 올랐을 때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물이 빠지고 나니 하나둘 사라져 휑한 바닷가에 서있다.

바닷물이 빠져봐야

주변에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 볼 수 있다.


애써 서운함을 감출수록 갯벌은 더 질퍽해진다.

축축한 물기를 품은 눈동자가 어른거린다.

짠내를 머금은 채 질척거리며 신발 밑창을 잡고 늘어진다.


물들어 올 때는 바다를 보지만

물이 빠졌을 때는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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