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심퍼티쿠시 후기 포함
안녕하세요,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다녀왔어요.
현대미술 책에서만 봤던 데미안 허스트 회고전이 서울에서 열린다니 꿀잼 보장? 일요일 16시 인터넷 예약에 성공해서 도착하니 현장발권하려는 분들이 엄청 길게 줄 서 있었어요. 물론 일찍 마감되어 못 들어간 분들이 많으셨을 듯 ㅠㅠ 인터넷 예약 매진이긴 하지만 취소표가 나오니 줍줍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미술관에 도착한 아이는 '죽은 상어' 빨리 보고 싶다고 재촉입니다 ㅋㅋㅋㅋㅋ 미술관 가기 전에 보여준 상어 수조 사진이 인상깊었나 봐요.
그 유명한 포름알데히드 안에 전시된 상어 수조 작품입니다. 아이가 신기한지 한참을 구경했어요. 제가 어떻게 상어가 이렇게 떠 있을 수 있을까 물어보니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해줍니다 "아빠 상어한테 줄이 매달려 있어요" 자세히 보니 진짜로 낚싯줄 같은 줄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네요. 아이의 관찰력에 뜬금 놀람...
지금 여러분은 커다랗게 입을 벌린 상어의 앞에 서 있습니다. 다행히도, 단단한 유리벽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는데요, 포름알데히드 용액으로 가득 찬 이 유리 탱크의 무게는 무려 20톤이 넘습니다. 그 안에 길이 4미터가 넘는 거대한 상어가 박제된 채 매달려 있죠. 이 거대한 상어를 포획할 당시, 데이미언 허스트는 어부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합니다. ‘당신을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상어’를 잡아달라고 말이죠. 단순히 거대한 크기를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관객이 이 상어를 실제로 마주했을 때 본능적인 두려움과 위압감을 느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물리적인 실체를 통해 마주하게 하려는 의도였는데요, 사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죽음이 누구에게나 닥친다는 걸 알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결코 죽음이라는 상태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이런 역설을 담아내고 있죠. 1991년 데이미언 허스트는 이 도발적인 설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현대미술의 지형을 뒤바꿔놓게 됩니다.그런데 이 작품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상어는 1991년 발표 당시의 그 상어가 아닙니다. 초기의 보존처리에 문제가 생겨 부패가 시작된 것이죠. 마치 죽음을 영원히 유예하는 것은 현대과학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작품 스스로 고백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죠. 결국, 허스트는 기존의 상어를 2006년 새로운 상어로 교체했습니다. 한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작품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 13년 만에 관람객 앞에 다시 공개됐습니다.
MoMA 서울 웹페이지에서 퍼왔어요.
사람 안 나오게 찍기 어려운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을 보고 계십니다.
아빠, 이건 왜 쓰레기들을 잔뜩 붙여둔거야? 응, 쓰레기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될 수 있어. 그 후로도 몇 번의 왜? 왜? 가 추가되었으나 현대미술 문외한인 아빠가 대답하기 너무 어려운 미학적인 질문이 되어버립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아이가 지루해 하지 않고 신기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았죠.
뱅글뱅글 돌아가는 그림을 보면서도 한참을 신기하게 구경한 꼬맹쓰... 왼쪽 그림은 모터 달린 타이어가 원을 밀어주는게 보이는데 우측 그림은 그 타이어가 안 보여서 안쪽에 있다고 알려주었네요
1994년부터 시작된 스핀 페인팅 연작은 모터를 이용해 캔버스를 회전시키고 그 위에 물감을 흩뿌리는 작업입니다. 원심력에 의해서 색들이 마구 뒤섞이고 퍼져나가며, 우연 같은 장면들을 무작위로 만들어 내죠.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 물감의 농도는 어떤지, 무슨 색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끝없이 변주됩니다. 앞에서 보신 스팟 페인팅이 모든 것을 철저히 계산하고 통제했다면, 이 연작은 우연성과 즉각성, 통제 불가능성에 운명을 맡긴다는 점에서 그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에 담긴 메타포는 꽤 교묘하면서도 탁월합니다. 회전하는 동안 열려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역동하는 삶을 상징한다면, 회전이 멈추는 순간 박제되는 하나의 이미지는,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삶이 언제나 우리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예술 역시 작가의 철저한 의도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우연이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이 스핀 페인팅 연작의 제목들에 과장되고 감각적인 단어들의 조합을 사용한 것도 이런 무작위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알록달록한 작품들이 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까요?
심지어 스팟 페인팅은 조수들을 시켜서 그린 그림인데 작가 유명세 덕에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는걸 아이에게 차마 말해주진 못했습니다 ㅋㅋㅋㅋ
약병들을 전시한 Pharmacy 작품들을 아이가 신기해 하면서 이것도 관심 있게 보더라구요.
가까이서 보면 두터운 붓터치로 가득한 벚꽃 그림.
상어 수조, 잘린 소머리, 그리고 해골들... 어떻게 보면 무서울 수 있고 당황스러울 수 있는 작품들인데 만5세가 다 되어가는 형님반 어린이는 다행히 재밌게 보더라구요.
약들이 가지런히 빼곡하게 진열된 작품도 신기방기.
예전부터 실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을 영접하였습니다. 어른 눈높이에 있는 작품이라 아이 번쩍 안아서 그만 볼래~ 할 때까지 보여주느라 허리가 아팠습니다 ㅋㅋ
이 작품은 2007년 처음 공개된 이래, 허스트의 대표작이자 21세기 시각문화의 강력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백금 두개골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이죠. 이 작품의 바탕이 된 두개골은 모형이 아니라 18세기에 살았던 실제 사람의 것인데요, 허스트는 이 해골의 틀을 백금으로 주조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치아를 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세척한 뒤 주조된 틀에 다시 이식했죠. 이 치아는 화려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표면 아래, 실제 존재했던 인간의 유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데요, 과거의 화가들이 해골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했다면, 허스트는 반대로 죽음을 찬란하고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특히 눈구멍의 안쪽과 턱뼈의 내부까지 다이아몬드로 뒤덮어서 어느 각도에서도 죽음의 그림자 대신 보석의 광채를 볼 수 있도록 설계했죠. 해골의 이마 중앙에는 제3의 눈을 뜻하는 거대한 분홍색 다이아몬드를 배치해서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적인 깨달음을 표현했습니다.
죽음과 해부에 집착했던 작가 답게 조각도 흥미로운 작품이 있더군요 ㅎㅎ
나비들을 실제로 붙여서 만든 작품도 시선를 사로잡았죠.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중세식 성당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어떨까요? 이 화려한 패턴을 구성하는 건, 물감이 아니라 수천 마리의 나비에서 떼어낸 날개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죽음을 전제로 한 아름다움이라는 잔혹한 역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나비는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인간의 영혼과 부활을 상징해 왔는데요, 허스트도 초기부터 작업의 소재로 나비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2001년부터는 나비의 날개를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배열해 마치 만화경처럼 화려하고 대칭적인 문양으로 만들었죠. 이 만화경 연작에는 리폴린이라고 불리는 고광택 페인트가 사용되는데요, 수천 개의 나비 날개를 하나하나 붙이면, 나비의 미세한 질감이 페인트의 두터운 층과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입체감을 나타냅니다. 마치 살아있는 나비가 캔버스 위로 날아와 그대로 멈춘 것처럼 보일 정도죠.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빛나는 나비를 통해, 허스트는 인간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지는 미적, 정신적 가치를 탐구해 나갑니다.
지하 1층의 전시실을 보고 나와서 2층에 있는 별도의 스튜디오로 가면 데미안 허스트의 런던 작업실을 가져와 재현한 전시도 있었어요. 요새 앙리 마티즈에 빠져서 앵무새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리신다고.
아이와 전시 잘 보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맞은편 트윈타워의 심퍼티쿠시 광화문점을 들렀습니다.
채광도 좋고 인테리어도 좋고 직원 분들도 친절했네요. 아이랑 둘이 저녁 먹으러 온 아빠를 측은지심에서 더 친절하게 대우해주신 느낌? ㅠㅠ ㅋㅋㅋㅋㅋ 자리도 창가를 주셔서 아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영상도 안 보고 잘 먹었습니다.
제가 시킨 숯불 닭목살 곤드레 리조또! 닭 목살 부위도 쫄깃하게 맛있고 리조또 라이스도 식감이 좋고 간이 맞아서 잘 먹었어요. 아이도 덜어서 나눠 줄만큼 자극적이지 않고 맛있었습니다.
아이 주려고 시킨 8천원 짜리 키즈 파스타인데 폭립도 2개나 들어가고 파스타 양도 적당하고 아주 좋았어요.
미술관 전시도 잘 보고 저녁 식사도 만족 스럽게 해서 알찬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상업화와 영리를 추구하고 지금은 물 빠진 작가라고 비판도 많이 받는 데미안 허스트이지만 현대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부분은 사실이죠. 실제로 논란의 작품을 '눈으로' 보니 재밌었습니다.
아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흥미롭게 본 전시라 더 의미 있었네요. 방문을 추천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