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매거진은 작가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짤막한 글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나가는 여정을 담습니다.
날씨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플레이 리스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신나는 디스코의 둠칫 둠칫 터지는 비트를 따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도 같이 터져주면 좋으련만
날씨는 더욱 더워질 줄만 알지
한동안을 시원해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안다.
청각적으로나마 더위를 날리고 싶은 마음에 시원한 음악을 찾는다.
저의 일상생활 속에서 음악은 절대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출·퇴근길은 물론이고 일을 하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듣고 있어야만 합니다.
사고력을 요구할 때 듣는 리스트,
단순한 업무를 할 때 듣는 리스트,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듣는 리스트,
클라이언트에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요청받은 후 듣는 리스트 등.
상황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각각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항상 음악을 듣습니다.
저만의 플레이 리스트는 계절의 영향도 받습니다.
봄에는 '봄바람 휘날리며~'로 시작해서 김윤아의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봄내음이 풍부한 리스트를 꺼냅니다.
가을엔 발라드로 시작해 8090 감성을 따라 그때 그 시절 음악들을 불러옵니다.
그중 음악의 마법이 가장 필요한 계절은 여름입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땀을 흘리며 도시를 걷고,
옆 사람의 땀 냄새를 버텨야 하며,
귓가에서 알짱거리는 모기와 싸워야 합니다.
에어컨, 선풍기, 수박과 얼음, 아이스크림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더위를 날려주겠다고 달려온 지원군들이 지독한 여름 더위 앞에선 힘을 못 씁니다.
지금이 바로, 음악의 힘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여름의 플레이리스트는 우선 쿨의 음악입니다.
이름부터 시원한 그들은 한때 대한민국 여름을 대표하는 그룹이었죠.
차 안의 시원한 공기와 차 밖으로 지나가는 파릇한 풍경들,
쿨의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던 그 모든 날들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들이었습니다.
작은 자동차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과 함께 신나는 분위기 한 큰 술,
차장 밖 정신없이 지나가는 풍경과 함께 상쾌한 기분도 한 큰 술,
오랜만에 다시 듣는 쿨의 음악을 따라 떠오르는 어린 시절 추억은 한 꼬집.
요 근래에는 Luis Fonsi의 'Despacito'를 들으며 뜨거운 남미를 달리는 상상도 더합니다.
올여름엔 "신인그룹" 싹스리의 노래도 한몫하네요. 코로나로 미루어야 할 올해의 휴가는 시원한 여름 노래들로 잘~ 때웠습니다.
올 7월은 그래도 예년보단 덜 더웠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미친 장마의 시간들이 대신했죠.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하루 사이에도 날씨가 오락가락 정신이 없고,
한 번씩 쏟아내는 폭우에 수시로 재난영화 찍어야 했습니다.
부산엔 이제 장마가 끝나고 진짜 더위가 찾아온 듯합니다.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 거죠.
'지금이 바로 겨울이야.
창밖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어.'
스스로를 최면 걸고,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제 나름의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더운 8월 한 달간 저는 캐롤을 듣습니다.
음악은 생각보다 힘이 강해서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기억을 마음껏 꺼내옵니다.
캐롤에는 지난겨울 추위에 벌벌 떨던 기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외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캐롤을 듣고 있으면 뇌가 버벅거리기 시작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8월의 더위와 귀로 들려오는 12월의 추위가 한데 뒤섞여
'내가 지금 더운 것인지, 아니면 추운 것인지, 그냥 더위를 먹어 미친것인지'
알 수 없는 세계로 빠져들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진짜 한여름에 눈을 맞는듯한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진짜 더위에 미쳐 버린 걸 지도 모르죠.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저는 '사실은 말도 안 되는 방법'을 고안하여 나름의 더위를 준비합니다.
장마의 끝과 함께 시작되는 무더위, 당신에게도 시원한 캐롤 음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