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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자 Sep 28. 2020

가을 냄새

은행이 길거리에 뒹군다.

코끝을 후려치는 찌릿한 냄새.

또다시 가을이다.


후각 정보는 시각, 미각, 청각에 비해 저장 기간이 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계절과 함께 찾아온 은행 냄새에 지나간 기억들이 허락도 없이 어질러진다.

유독 후각에 예민한 나는 계절이 변하는 시점이면

정처 없이 길을 걸으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1년 전, 코로나 대신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마스크를 쓰던 시절에

오랜만에 날이 화창하다며 점심을 먹고 산책하던 길에서 맞던 텁텁한 가을 특유의 냄새를 기억한다.


5년 전쯤, 지금은 남이 된 누군가와 오솔길 위로 쌓여있는 낙엽 잎을 밟으며

누군가는 쓸쓸하다는 가을에 '사랑하기 참 좋은 계절' 같다며 나누던 달콤한 냄새를 기억한다.


10년 전, 어른들이 풋풋하다며 부러워하던 젊은 연인의 모습으로

폭신하게 깔린 노오란 은행잎 길 위를 손잡고 걸어가던 파릇한 청춘의 냄새도 기억한다.


20년 더 전에 낭만을 알던 꼬맹이가 강원도의 시골 마을 강가에 서서

강물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맡았던 바람에 코스모스의 냄새도 기억한다.


언제나처럼 가을은 냄새와 함께 온다.

가을은 외로운 계절이라 그랬던가?

유독 가을만 되면 마음이 동이 나는데,

밖으로 나 돌아다닐 수 없는 2020년의 가을은 유독 쓴 냄새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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