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할 때,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인내심
첫째 딸은 태어난 지 4개월 즈음됐을 때 상체와 하체의 시간차를 이용한 뒤집기를 성공했다. 상체 휙 착 그리고 바로 하체 휙 착. 여기에 유연함까지 더해지니 정교하고 스무스하게 움직이는 잘 다듬어진 최신형 기계 같았다. 아무튼 뒤집기가 빠른 만큼 되집기(원래 누웠던 자세로 돌아가는)는 더 빨랐다.
하지만 둘 째는 꽤 느긋했다. 5개월이 지나도 낑낑대기만 할 뿐 뒤집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워서 버둥댈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주 조금씩 내 마음 한구석에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금세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뒤집기를 안 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엔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우리 몸안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내 아이를 해치는 가짜 음식'의 저자의 아들은 아랫니 두 개가 성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젖니로 남아있다. 간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을 당한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적어도 그런 안타까운 상황은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 믿음을 가지려고 애썼고 또 그렇게 믿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마음속으로 굳게 믿어주는 일' 뿐이 아니던가.
괜찮아. 걱정하지 마. 모든 게 잘 될 거야
우리 아버지는 꽤 무뚝뚝하신 편인데 가끔씩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냥 딱 저 한 마디뿐이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 마음 한편에 묻어뒀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는 '다시 뭔가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는다. 아버지의 말씀은 부드럽지만 힘 있고 강력했다. 그 힘은 아마도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 믿음이 내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것 같다.
믿음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사랑이 먼저냐 신뢰가 먼저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답은 평범했지만 그 이유는 가슴 깊이 새길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하면 무엇이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랑의 힘이다. 비합리적인 것도 합리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그런 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그렇다. 사랑하는 것 자체 희망을 솟게 만드는 믿음이라는 것.
어쨌든 나는 그냥 바라봤다. 때가 되면 뒤집고 되짚고 기겠지. 그렇게 6개월 즈음되었을 때 둘 째는 힘겨운 뒤집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되집기. 어느새 배밀이를 시작하더니 양팔과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빠르게 기기 시작했다. 마치 빠르게 이어지는 영화 필름의 장면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앉기도 전에 잡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기는 시간보다 잡고 일어나 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아이에 대한 나의 믿음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나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의 조바심은 아이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지 사랑하고 믿고 바라보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한 마디로 내 키의 2/3가 넘는 뜀틀을 운동신경 0%인 내가 몇 번의 연습만으로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