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첫 단계
설거지는 밤에 해야 제맛인 걸까. 켜켜이 쌓인 그릇들을 닦아 넣어두고 싱크대와 조리대 위를 깔끔하게 치우며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좋다. 하지만 웬걸. 그런 기분을 둘째도 느끼고 싶은지 '앵' 소리를 낸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제 생후 10개월이 된 둘 째는 요즘 '급성장 앓이' 중이다.
이런 기간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는데, 신기한 것은 이때만 되면 아기는 신체와 정신에 급격한 변화를 겪고 그 결과로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 능력이 때론 겉으로 드러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데, 요즘 내가 느끼기에 생겨난 특별한 능력은 '엄마, 아빠를 분명하게 찾는다는 점'이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친밀감이 더 상승해서 어느 때 든지 늘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우는 소리에 들어가 보니 맹한 눈빛으로 침대의 난간을 잡고 서있다.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으나 깊이 잠에 들었다가 깬 터라 안 봐도 알 수 있다. 짜증 섞인 음성이 옹알이에 섞여 들린다. 아이를 눕히고 나도 그 옆에 함께 누웠다. 딸아이는 조그마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내가 있는 자리까지 와서 몸을 붙인다. 혹시나 자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침대의 반대편으로 몸을 움직여 보지만 몸에 센서가 있는지 데굴데굴 굴러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다리 하나를 내 배 위에 올린다. 그렇게 여러 번 뒤척이면서 내 몸에 자신의 발이나 팔을 올리거나 붙인다. 조그마한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몸의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이 아이의 아빠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낯설기도 하지만 애틋한 기분이다.
우리 첫 째딸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게 너무 좋아서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매일의 선물'이다. 함께 있기만 하면 그 시간은 더없이 행복해 진다. 세상의 아무리 좋은 선물을 한다고 해도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 특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육아책을 보면 대부분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많이 언급한다. 아이들의 성격에서부터 먼 훗날의 학업에까지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정서적 안정을 아이들이 갖도록 돕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보여주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 표현과 동시에 쌓여가는 친밀함이 후에 아이들이 성장하여 겪게 되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힘, 바로 '정서적 안정의 힘'이 된다.
그래서 잠재의식 속에 삶의 틀을 세우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어른들에게는 때론 힘든 시간이 되는 경우도 많다. 신경질도 나고 때론 욱하는 심정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늘 우리가 부모로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시간은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것. 반드시 이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부모를 보며 하염없이 짓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늘 부모의 사랑을 고파하는 애교 어린 모습을 보며 견딜 수밖에. 졸려서 짜증을 부리다가 졸음에 못 이겨 짜증이 한 꺼풀 꺾이고 조용히 잠든 딸아이의 미소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