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한 그릇

가난한 미식가: Natural Epicure

by 홍작가

밥솥에 추가 칙칙 소리를 내며 울린다. 아이들의 눈이 슬며시 떠진다.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과 갓 지은 밥,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아침의 얼굴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 한 숟가락에 잘 익은 김치 한 조각과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미역국은 세상 모든 진미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하다. 모두 갓 지은 것들이다. 간소하지만 깊은 맛을 지닌 음식 하나하나가 마음에 평온함을 준다.

현미밥과 쑥갓을 곁들인 토마토 순두부찌개

나는 이런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몸과 마음이 쉼과 생명력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마지막에 전통 집된장을 풀어 풍미를 더한 된장국, 무농약 표고버섯으로 깊은 맛을 낸 콩나물국, 유기농 미역과 청정지역의 좋은 소금 그리고 부모님이 길러 짜주신 참기름으로 맛을 낸 미역국은 평범해 보이지만 모두 자연의 힘으로 기른 식재료로 만들었다.


음식을 즐겨하다 보면 처음엔 갖은양념으로 다양한 요리를 해본다. 그렇지만 결국엔 양념을 모두 빼고 가장 오래 사랑받고 자주 먹으며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을 다시 즐겨 만들기 시작한다. 또한 조리가 간단하기 때문에 자연이 맛을 낸 식재료의 풍미를 살릴 수 있다. 그런 음식은 매일, 매 끼니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다양하고 복잡한 풍미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늘 새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 때 책과 인터넷 그리고 나름의 창의력을 더해 채식요리를 했지만,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자연이 위대한 요리사'이자 '미식가'라는 것. 어느 한 영화배우의 시상식 소감처럼 '이미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 이것이 내가 배운 자연의 식사법이다.


음식의 맛은
좋은 식재료의 맛을 넘을 수 없다.


자연이 가르쳐준 대로 나는 음식을 볼 때 만드는 과정과 식재료에 더 관심을 둔다. 오직 땅의 힘과 농부의 땀으로 길러진 식재료를 단순한 조리법으로 맛을 이끌어낸 음식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만족을 이끌어내며 자연의 고마움까지 느끼게 한다. 테이블에 놓인 한 그릇의 감동이 빚어내는 속 깊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부모로부터 전해지다가 어느새부터인가 전설이 되어 버린 우리 밥상의 속 깊은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제철마다 저마다의 빛깔을 자아내는 채소와 과일, 곡식들의 오리지널 감성보다 마케팅으로 탄생한 선명한 프린팅의 포장지가 더 익숙한 오늘이다. 편리함으로 채워지는 요즘의 밥그릇엔 제철의 속 깊은 자연의 맛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허탈함과 허무로 가득 찬 세상에 오직 감각만을 자극하는 음식에 기대려는 우리의 마음은 어지럽기만 한 것 같다. 음식을 보상의 목적으로 도구화하는 음식 마케팅의 전략이 진짜 음식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다.


그런 우리는 모두 가난한 미식가가 되어야만 한다. 화려한 음식의 겉모습과 다양함을 쫓기보다는 '진짜 음식'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깨닫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우리가 음식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은 양과 다양성이 아닌 그 음식 자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 때문이다. 식재료 산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농부의 손에서 길러졌고, 유통이 되었는지가 음식의 영혼이다. 사람은 약간의 솜씨와 정성을 더해 음식에 막음직스러운 옷을 입힌다. 여기에 가공식품과 멀어져 우리의 감각기관이 자연의 섭리대로 예민해졌다면 우리는 아주 소박한 차려진 한 두 가지 음식에도 충분히 만족하게 될 것이다.


추운 날 저녁으로 끓여준
엄마의 따뜻한 콩나물 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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