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이 두려운 당신에게

다양한 관점을 통한 채식 동기부여

by 홍작가

비건이라는 말조차 낯설었을 때 (아마도 불과 4,5년 전이 아니었을까) 채식을 한다고 하면 솔직히 별종으로 느껴지거나 뭔가 나와는 굉장히 다른 낯섦이 느껴졌다. 채식은 절대 보통사람은 할 수 없는 엄청나게 별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케첩에 밥을 비벼먹는 것 과 같은 그런 일) 그런데 지금 채식이 주목을 받고 채식이 세상을 구원할 것 같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조금씩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학에서 채식을 하는 동아리가 생겼고 마트에는 채식 관련 음식을 파는 전문 가판대도 생겼다. (기업이 이렇게 손수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채식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채식은 미래의 큰 흐름 중에 하나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주변에는 채식을 한다는 사람을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채식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큰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내 건강을 먼저 살피는 듯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세요? 힘들진 않으세요?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웃으며 자연스럽게 가속 방지턱을 평지처럼 넘어가는 벤츠처럼 부드럽게 넘어 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채식을 한다는 게 그렇게 걱정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건강을 떠나서 먹는 게 유일한 낙인 것 같은 요즘 세상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고 나와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고도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거창해 보이거나 특별해 보이는 것도 조금만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채식, 사실 별거 아니다.



채식은 사실 '뉴트로'

채식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은(특히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관해) 이미 익숙한 식생활이지만 잊힌 음식문화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을 먼지 쌓인 보석함에서 꺼내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식생활을 60, 70년대 밥상 문화라고 정의하고 싶다. 쌀 주식의 식단에 제철 나물을 곁들인 소박한 밥상이다.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엄마의 손길'로 느껴지는 그리운 밥상이다. 그때 그 시절의 먹거리를 다시 우리의 식탁으로 가져오면 된다. '뉴트로'(new-tro)라는 말이 있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데 왜 음식은 돌고 돌지 않는 건지 나는 궁금하다. 나는 바란다. 우리의 밥상에도 '뉴트로'의 세찬 바람이 불기를.


제철채소달력_참고하여 맛있는 밥상을 차리자_from 최강의 야채스프/마에다 히로시


내 영혼에 숨결을 불어 넣자

밥 한 공기에 쌈채소와 함께 쌈장만 곁들이기만 해도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면서 세상 여느 음식 부럽지 않은 맛과 향을 자랑한다. 여전히 이런 밥상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여름을 겨냥해 나온 가공식품의 신제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것은 과연 트렌디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냥 우리는 마케팅에 사로잡혀 고객이 된 것뿐이다. 나는 채식을 주도적인 식습관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내 입맛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음식을 선택하니까. 내 주된 '직거래 상대'는 '자연'이다. 철마다 주어지는 수많은 제철과일과 제철채소가 나를 반긴다. 여기에는 마케팅이 없다. 음식 자체에 맛과 향에 취해 선택하는 것이다. 철저히 내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 비로소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를 소신껏 사용하는 것 같다.

세상이 좋아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네 영혼을 살아 있게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이다. 한 번이라도 내 의지대로 고민 없이 무엇인가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그 한 번의 경험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생각도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우리 영혼에 다시금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다. 단순히 음식을 바꿨지만 수동적인 인생이 주도적인 인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빛바랜 트렌디 식단

트렌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보자. 서구식 식습관은 우리의 식문화를 통째로 접수했다. 예전에는 경양식 돈가스 먹을 때는 큰 맘먹고 예약을 하고 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달로도 얼마든지 필요할 때마다 고민 없이 시킨다. 심지어는 마트에도 인스턴트 돈가스가 있어서 손쉽게 집에서도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 육식의 비중은 어느새 주식인 쌀 소비량을 앞질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공장식 축산업의 발달로 인한 축산업의 생산량의 증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공식품의 발달도 한몫했다.


소위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서구식 식단인 육식과 가공식품에는 이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미 195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주로 고기와 유제품에서 비롯되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소비 때문에 20세기 심장질환 발병률이 급속히 증가했다는 과학적 견해가 쌓여갔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의사와 의료 종사자들로 구성된 어느 대담한 그룹이 해외에 거주하면서 관찰한 결과, 세계 어디든 전통적인 식사 방식을 버리고 서구식 식사를 받아들인 곳에서는 곧 비만, 당뇨병, 심장혈관질환을 포함한 일련의 서구식 질환들이 발생했다. 그들은 이런 병을 "서구병 Western Disease"로 불렀다. 우리의 현재 트렌드인 서구식 식단은 이제 더 이상 트렌드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목숨을 담보로 유행을 좇을 수는 없지 않은 가.


서구식 식단이 빛을 잃어가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마이클 폴란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음식의 탈산업화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식 식단의 핵심에는 기업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든지 신선한 식품을 기업에 기대지 않고서도 직거래를 통해서 하루 만에 받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껍질째 먹을 수밖에 없는 '딸기'도 유기농으로 얼마든지 산지직송 서비스를 받아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편리한 운송시스템 덕택에 훨씬 다양하고 좋은 유기농 음식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또한 서울에서는 아직 그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로컬푸드'가 있다. 내가 사는 인근에서 기른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다. 유기농 식품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늘고 있다. 환경문제가 떠오르면서 몸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아주 오래전 물물교환을 하던 시장 거래 방식이 현대식으로 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소비자와 상인 사이에는 기업이 아닌 오직 '정직한 음식'과 '신뢰'만 있을 뿐이다.


채식 DNA

채식은 생각해보면 어렵다. 그러나 막상 실천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두려워한다. 채식도 그런 것이다. 해보지 않았을 뿐 우리에게는 이미 조상 대대로 내려온 채식에 대한 DNA가 있다. ***채소를 기반으로 하는 한식문화는 조선 후기에 완성되었는데, 조신시대 양반의 일상식은 쌀밥에 부식이 곁들여지는 형태였다고 한다. 부식으로는 국, 찌개, 김치와 나물 등이었다. 우리 흔해 빠졌다고 여기는 그 밥상이 사실은 양반집 밥상이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지 않은가. 어쨌든 바야흐로 여름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먹을 것이 많아서다. 특히 쌈채소와 물이 많은 채소들이 많이 난다. 요리도 필요 없다. 잘 씻어서 쌈장만 곁들이면 입안에 즐거운 훌륭한 요리가 된다.


여름, 채식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행복한 밥상_p.31, 19_마이클 폴란 저 발췌

***채소의 인문학_p.33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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