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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마지막 퍼즐: 소식(小食)

채식을 해도 건강하지 않은 당신에게

by 홍작가

채식해도 뚱뚱해진다.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식을 언급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채식을 하면서 소식도 하는 '소식주의자'다. 사실 채식을 시작하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점 중에 하나는 일반식을 할 때는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서도 늘 살이 찌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먹는 이 음식을 덜 먹을까를 고민하면서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이 모든 모순의 순간들을 뒤집었다.


배고픈 것을 오히려 당연한 인간의 생리적 현상이라고 바라본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은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으라고 주장했으니 당황스러웠지만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 자연식물식 식단을 따를 때는 동물성 식품은 물론이고 가공식품과 심지어 오일까지도 지양하면서 매 끼니마다 마음껏 먹었다. 그러고도 체중이 현저하게 줄어서 즐거웠다. 더 이상 체중조절에 대한 아무런 염려가 없었다. 음식 앞에서 나는 진정 자유로웠다. 자연식물식을 통해 내 몸이 음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깨어난 미각과 후각 덕에 다양하고 풍미가 좋은 요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문제는 비건도 살이 찔 수 있다는 점. 어느 순간부터 몸이 찌뿌둥하고 어딘가 모르게 둔한 느낌이 들었다. 살이 찌고 있었다. 채식을 하면 채소만 먹으니까 살이 찌지 않을 거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이지 동물성 식품(육류, 가금류, 해산물, 유제품 등)이 아니면 다 먹을 수 있다. 우유나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빵, 잼, 식물성 버터 등등 채소 말고도 가공식품으로 즐길 수 있는 식물성 음식도 즐길 수 있다. 아보카도, 올리브 오일, 견과류 등도 포함된다. 통곡물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들로만 구성된 자연식물식 식단은 정말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지만 그 외에 음식들은 어떻게든 체중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원인은 먹어도 너무 많이 먹는다는 것.



식이섬유와 수분이 풍부한 음식은 살이 찌지 않게 한다. 오히려 빠진다. 섭취하는 대부분의 칼로리는 활동을 통해 모두 소모된다. 심지어 체내의 열 발산을 통해서도 칼로리는 소모된다. 그러나 정제된 모든 식품의 많은 부분은 체내에 지방으로 빨리 축적된다. 그리고 지방이 많은 음식은 식물성이라고 할지라도 지방으로 체내에 쌓인다. 더욱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정제된 식품은 과식을 유발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반문할 사람들이 없을 것 같다. 쌈채소는 먹다 보면 더 이상 배가 불러서 먹을 수가 없다. 포만감의 질이 양적으로나 영양적으로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제된 음식들, 예를 들어 빵 같은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의도적으로 자제하지 않는 한 계속 먹을 수 있다. '쌈채소 돌이'는 없어도 '빵돌이'나 '빵순이'는 있지 않은가.


채식의 마지막 퍼즐조각을 찾다.

해결책은 있었다. '소식'을 통한 절제된 식습관이 중요했다. 소식을 하고 난 뒤에는 다시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갔다. 소화도 편했고 오히려 먹는 즐거움은 커졌다. 적게 먹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지금 아니면 즐길 수 없다.'가 아니라 '언제든지 즐길 수 있으니 더 먹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도 생겼다. 정제된 다양한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그 때문에 체중이 더 이상 늘지도 않았다.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집에서 시간을 쪼개어 조금씩 지속적으로 운동했다. 사실, 육아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활동이었다. 그렇지만 운동은 육아로 고갈되는 체력을 기르고 동시에 면역력을 키워 더욱더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했는데 역시 체중관리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채식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할 것 같다. 왜냐하면 몸에 좋으니까. 그렇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정말 자연식물식처럼 늘 먹는다면 모를까, 종류에 특별히 관계없이 식물성 식품을 많이 먹으면 역시 속이 더부룩하다. 그리고 소화시키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피곤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추측이기는 하지만 채소와 과일이 황산화물질을 많이 내포하여 세포의 노화를 많이 억제한다고 하지만 100% 채소와 과일만 먹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식물성 음식을 많이 먹으면 세포가 과한 영양분으로 너무 많은 활성산소를 만들어내서 노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채식이라도 과식은 과식이다.


과식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과식은 채식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위험하다. 특히 대장암이나 유방암, 식도암, 신장암 같은 몇몇 암의 경우에는 특정 발암물질이나 유전, 감염보다 '많이 먹는 것'이 더 큰 위험인자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육류, 동물성 지방을 과다 섭취하는 경우에는 대장암의 위험이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소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식이섬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변이 장내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대장이 발암물질에 노출될 기회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붉은 육류의 경우 그 자체가 대장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여성암 중 가장 발생빈도가 높은 유방암은 고지방, 고칼로리 식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비만으로 인한 체내 중성지방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증가시켜 유방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발췌) 사실 이런 과식과 같은 잘못된 식습관이 원인이 되어 장수로 유명한 일본의 한 마을이 몰락하기도 했다.


장수마을 '블루존', 오키나와

인간의 삶은 기구하다. 사는 동시에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

인간의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이 더욱더 간절해지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장수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그중 일부만이 장수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런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을 우리는 '블루존 Blue Zone'이라고 한다.



세계 여러 블루존 지역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바로 일본 '오키나와'이다. 일본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장수마을의 명성을 누려온 곳이다. 인구 10만 명당 백세 이상의 장수노인의 비율이 47명에 이른다. 또한 이곳의 노인들은 단지 오래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3대 질환으로 꼽히는 심장병, 뇌졸중, 암의 발병률도 세계에서 가장 낮아 그야말로 건강한 장수를 자랑해 왔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발췌)


오키나와 장수마을의 몰락

그런데 이러한 명성도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이후로 일본 내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오키나와 남성의 평균수명은 1990년부터 5위, 4위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일본 45개 현 가운데 26위로 떨어졌다고 한다. 2005년 오키나와 남성의 평균수명은 78.64세로 일본 남성 전국 평균인 78.79세 보다 낮다고 한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다름이 아닌 40-50대 중장년층의 사망률을 지적한다. 2005년 당시 오키나와 남성의 비만율은 47% 였고 일본 전국 평균인 35%를 크게 웃돌았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오키나와의 '장수의 질'은 2000년 통계에서 남성은 47개 도도부현 중 꼴찌인 47위, 여성은 46위였다. 2015년 기준 65세 미만의 사망률을 남녀 모두에서 일본 전국 1위다.


장수의 질: 평균수명 가운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는 기간


서구화된 음식과 과식으로 고통 받는 나라

왜 이렇게 된 걸까. 오키나와의 식문화와 관련이 깊다. 전후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의 의한 서구식 식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서구식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는 전후의 6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였다. 서구식 식문화는 모든 것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고 특히 음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키나와는 거의 미국 아닌 미국이 됐다


미군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_ 왼쪽: 타코라이스 / 오른쪽: 오키나와 소바 / 사진=위키커먼스


타코라이스와 오키나와 소바는 모두 미군의 영향을 받았다. 타코라이스는 토르티야 대신 쌀밥 위에 기름진 타코를 올려 먹는 음식이고, 오키나와 소바는 소바이기는 하지만 일본 본토 소바처럼 메밀가루가 아닌 밀가루로 만들었다. 이렇게 길들여진 입맛은 곧바로 과식과 비만으로 이어졌다. 오키나와는 이제 더 이상 견고한 장수의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이 아니다. (머니투데이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오키나와' 인용)


스팸으로 속을 채운 오키나와의 오니기리 / 본토의 오니기리와는 차이가 있다. 오키나와인들의 포크(스팸·런천미트 등 통조림 햄) 사랑이 담겨있다. 큼직한 스팸과 달걀이 들어간다.


미디어가 한몫하면서 우리에게 스팸은 정말 맛있는 음식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스팸을 비롯한 육류 가공식품이 전통음식의 자리를 꿰찼고 장수마을의 사람들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블루존의 식단에 가려진 '진짜' 장수의 비밀

한 때 장수마을이 인기를 끌면서 그들의 식단이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런 식단의 유행에 가려져 오키나와를 장수마을로 이끈 어쩌면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된 이유는 주목받지 못했다. 바로 '소식' 전통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위장의 8할(80%)만을 채운다.'라는 철칙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그래서 식물이 식단의 95%를 차지하지만 돼지고기도 즐겨 먹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장수할 수 있었다. 그만큼 소식은 채식을 뛰어넘어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유익한 식습관이다.



'소식'법

소식은 어렵지 않다. 평소 자기가 먹는 양의 30%만 줄여도 된다. 혹시 '헉!'하면서 놀라는 것 같다. 왜냐면 소식이라고 하면 아주 적게 먹을 거라 으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얼마나 먹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칼로리 섭취를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칼로리의 30%를 줄이는 것이다.


필요 칼로리 계산법
자신의 몸무게 X 30Kcal = 필요한 칼로리의 양
예: 70kg X 30Kcal = 2100 칼로리

소식 칼로리 계산법
예: 70kg X 30Kcal X 0.7 = 1470 칼로리


그런데 이렇게 계산을 하면서 음식을 먹기에는 너무 부담이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본 정보는 위와 같지만 계산하지 않고도 소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배고픈 단계를 10이라고 하고, 배가 불러서 아프다고 하는 것을 10으로 잡는다. 그리고 밥을 먹을 때 6-7 정도로 위가 찼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 먹는 것이다. 조금 더 확실한 느낌은 식사 후, '조금 더 먹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 식사를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밥을 먹은 후 서로 물어본다. "몇 프로?"라고 물어보면 아내는 "70% 딱 좋아!"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면 조금 더 자신의 느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스스로 물어보라. 더 먹을 수 있는지.


'소식' 법 정리

1. 식단의 70% 이상을 채소로 채우자.
(육류나 가공식품은 농축된 지방이기 때문에 소식 자체가 어렵다.)
2. 더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식사를 멈추자.
3. 이야기를 하면서 먹으면 식사 시간을 늦출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길어진 식사 시간으로 포만감이 잘 느껴져서 식사량은 자연스럽게 줄어 든다.)


소식은 건강뿐만 아니라 삶도 바꿔놓는다.

나는 소식을 단순히 건강에 대한 식습관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와도 중요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욕구는 어쩌면 다 참을 수 있어도 '식욕'은 참기 어려워한다. 역설적으로 식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바꿔 놓을 만큼의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운명을 만드는 절제의 성공학'의 저자인 미즈노 남보쿠는 식사에 대한 절제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즈노 남보쿠: 일본 조정에서 대일본이라는 파격적인 칭호까지 받았던 운명학자이자 사상가


자신이 성공할 것인가를 알고 싶다면 먼저 식사를 절제하고
이를 매일 엄격히 실행해보면 됩니다. 만약 이것이 쉽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평생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식사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음식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몸은 여전히 허기지고 마음은 허전하다.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치고 힘들다. 음식은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지만 굳이 소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우리에게 늘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먹으라고 현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음식이 개인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음식에 대한 과욕과 탐욕이 지구를 병들게 만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먹기를 조금은 자제하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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