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채식을 시작해서 실패한 당신에게
와인은 '지식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한다. 나는 채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채식, 지식으로 먹는 음식이다.
채식을 시작하려면 공부해야 한다.
비건도 아닌 자연식물식이라니, 원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법.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그냥 단순히 '나는 먹는 것에 이제 관심이 없고, 안 먹어도 그만이야.' 하는 자신감이 문제였다. 언뜻 듣기에 '가공식품도 안 먹고 육류 및 유제품도 안 먹고 심지어 오일까지 안 먹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뭘 먹는 걸까' 궁금해하며 아내가 권해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영양에 대한 공부를 했고 채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음식을 먹는데 이제는 공부까지 해야 되나?' 하는 피로 섞인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영양에 관한 진실을 통해 다이어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잘못된 식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채식 공부는 다이어트에 구속된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는 힘이다.
채식, 이유 있는 반항: 당신은 영양에 관해 잘못 알고 있다.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은 누구라도 읽기 쉽게 쓰여있었다. 어려운 과학적인 용어보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의 이름과 중고등학교 때 한 두 번은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영양소 이름이 등장했다. 이 책은 다이어트를 중점으로 쓰인 책인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음식과 영양소에 관한 정보 등을 바로 잡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매 챕터 마다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 펼쳐졌다. 나는 영양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속고만 살았다.
당시에 나는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맥두걸 박사는 '탄수화물은 인간에게 가장 많이 요구되는 영양소이며 지방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가공된 정제탄수화물이 아닌 채소와 과일 그리고 통곡물처럼 식이섬유와 수분, 천연 탄수화물이 가득한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살이 빠진다.'라고 주장했다. 영양에 대해서는 TV나 주변의 누군가에게 들어본 이야기가 전부였던 나에게 이런 그의 주장이 충격적이었고, 특히 굳이 우유를 먹지 않아도 '모든 채소에서 칼슘을 얻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오직 우유만이 칼슘의 중요한 원천'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게 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원래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이었는데 특별히 건강검진에서 골다공증에 대한 어떠한 소견도 들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내는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우유도 끊었는데 시간이 지나 현재는 아주 심했던 생리통이 많이 완화가 되었다. (지금은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된다. 당시 아내는 라테 마니아였다.)
이런 주장들은 과학적인 증거와 맥두걸 박사의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나의 식생활과 삶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내가 순수하게 믿고 따르던 사람이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돌변하는 순간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채식을 하면서 한동안 아내와 나는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수많은 영양에 대한 정보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분노했다. 또한, 그런 잘못된 정보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다이어트의 챗바퀴에서 혹사시키며 수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왔다는 사실에 속상해했다.
맥두걸 박사의 책을 읽으며 나와 아내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 결과, 우리의 몸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내 몸은 역대급으로 날씬해졌고 턱선이 살아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졌다.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주로 산책을 했다. 생에 처음으로 운동을 하지 않고도 요요현상 없이 10킬로그램 이상의 체중감량을 했다. (3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그 체중을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체력은 더 할나위 없이 좋았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오히려 활력이 생겼다.
지식과 경험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제는 자연식물식이 식생활의 신념처럼 여겨졌고 더욱더 확신을 가지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자연식물식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살이 많이 빠지고 건강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먹을 때마다 살이 찌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식물식의 최대 장점은 식사량에 구애받지 않고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양이 많지 않다. 채소와 통곡물을 통해 식이섬유를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포만감이 금방 느껴져서 금새 수저를 쉽게 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음껏 먹어라!" 그래도 괜찮다.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나와 아내는 마음껏 먹었다. 세상은 살이 찔까 봐 적게 먹으라고 하지만 자연식물식은 많이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한동안 마음껏 먹었다. 그래도 소화는 잘됐고 편안했다. 다만, 조금 불편한 점은 있었다. 채소는 수분이 많기 때문에 나와 아내는 꼭 1-2번씩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야만했다. 소변이 너무 마려웠기 때문. 또한, 충분한 수분 섭취 덕에 우리는 정수기도 치웠다. 하루의 수분 섭취는 채소와 과일이 전부였지만 갈증나지 않았다. 채소와 과일이 우리집의 정수기였다. 지금은 요리를 하기 때문에 간혹 좀 짜게 먹었을 때만 물을 조금 마신다. 그 외에는 물을 마시는 경우가 없다. 그럼에도 나의 배변활동은 왕성하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죄책감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과식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맥두걸 박사가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이유는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식물성 음식들이 우리의 몸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절대로 과식을 추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이어트의 스트레스로 인해 억압받고 억눌려있는 우리의 본성인 식욕을 해방시켜서 상처받은 우리의 생각과 몸을 위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하고 우리는 배가 고플 때마다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인간은 원래 살이 찌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살이 찌는 것은 절대로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조금 더 강조하여 말하자면,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살이 빠지고 건강해질 때, 우리는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무엇이 좋은 음식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러면 우리의 식문화의 건강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자연식물식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영양에 대한 정보와 음식 앞에 억압된 우리의 태도를 모두 바로잡았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음식이 틀린 것이다.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살이 다시 찌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음식이 당신의 몸을 자연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인위적인 음식들은 우리의 몸을 인위적으로 만든다. 많은 다이어트 광고가 우리의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준다고 하지만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음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날씬해질 수 있다.
Everybody is born to be a vegetarian. : 우리는 누구나 베지테리언의 피가 흐른다.
내게는 비건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나와 아내는 자연식물식을 너무나도 즐기고 좋아했다. 한 끼 한 끼가 너무 맛있어서 매번 음식에 대해 서로 칭찬을 하며 맛을 음미하고 감탄했다. 가공식품을 끊은 것이 분명 내 입맛이 좋아지는데 도움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의 후각과 미각은 점점 더 민감해졌고 채소의 복합적인 풍미가 풍부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채소를 보통 쓴맛 때문에 싫어하지만, 채소에는 짠맛, 단맛도 있다. 그리고 각 각의 채소는 그 채소만의 독특한 향도 있다. 여기에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까지 더해져서 먹을수록 입맛이 당긴다. 채소 하나하나가 완벽한 풍미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기분도 좋아졌다. 개운한 입맛과 먹고 나서고 가벼운 몸 상태가 좋았다. 좋아진 입맛은 소박한 식사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나는 간장에서도 단맛을 느꼈다. (간장에는 원래 과당이 들어가지 않지만 시중에서 파는 우리나라의 간장에는 과당을 넣는 경우가 많다. 내가 먹는 간장은 과당이 들어가지 않은 간장이다.) 그래서 밥에 간장만 비벼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입맛이 좋아지면 음식의 어디에서든 설탕을 넣지 않고도 단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단맛은 감칠맛이 있기 때문에 음식을 맛있게 먹는데 도움이 된다.
시장이 반찬
자연식물식을 하고 나서는 간식도 구운 감자나 고구마 또는 과일로 바꿨다. 식사를 중심으로 먹는 식습관을 바꾸니 오히려 간식을 먹는 시간이 정해졌다. 보통 오후 3시 정도인데 이때 과일 한 개 정도 먹으면 저녁 6-7시쯤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프면 식사를 맛있게 충분히 할 수 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은 진리다. 결국 되돌아보면 채소로 차려진 식탁이라도 충분히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배고픔' 때문이 아닌가 하고 깨닫게 된다. 매 끼니 충분한 영양섭취를 통해서 다른 음식에 대한 갈망을 멈추게 하고 빠르게 소화가 되는 채소나 과일로 긴 공복의 시간을 잠시 버텨 다시 배가 고파지는 시점에 식사를 다시 하게 되는 과정이 매 끼니의 식사가 즐거워지는 비결이다. 또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통곡물 음식은 위에 머무는 시간이 동물성 식품보다 비교적 짧기 때문에 각 끼니의 음식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쉽게 배고플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비결이다.
제철채소를 고르자. 무조건 맛있다.
우리는 누구나 채소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정기적인 식사를 중심으로 신선한 채소로 이루어진 음식 그리고 과일로 하루의 영양을 보충하면 금방 채소의 맛에 익숙해지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시간의 문제고 입맛이 길들여지는 문제다. 하나를 먹더라도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사자. 좋은 식재료는 풍미가 남다르다. 입에 들어가기 전부터 색깔과 향이 식욕을 돋운다. 나는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는 제철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한살림이나 로컬푸드에 가면 제철에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있다. 매 계절마다 맛있는 음식이 다르다. 내가 매번 고르지 않아도 자연은 알아서 우리에게 그 계절에 가장 맛있는 음식을 추천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철 음식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생산량이 많고 양에 비해 값이 저렴한 음식이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시금치 한 단에 2000원이 안된다. 겨울 시금치는 맛이 굉장히 달고 부드럽다. 생으로 샐러드를 해먹을 수도 있고, 무침으로 먹어도 된다. 심지어 오일 파스타의 재료로도 쓸 수 있다. 시금치는 요즘 우리 집의 단골 식재료다.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이 이미 준비해 놓았다.
자연은 푸드 큐레이터
채소 입맛으로 바꾸는 잠재력
우리는 입맛을 '채소 입맛'으로 바꿀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꾸준히 전 세계에 비해 채소를 소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김치' 때문이었다. 김치문화가 쓰러져가는 우리의 식문화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공식품과 동물성 음식이 우리의 식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도 김치는 꼭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채소로 담그는 김치는 누구에나 익숙하다. 그래서 다양한 김치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여러 가지 채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우리에게 이미 꽤 친숙한 쌈문화도 우리의 입맛을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는 채소의 피가 흐른다.
연애는 책으로 배울 수 없다. 하지만 채식은 책으로 배울 수 있다. 인종을 불문하고 인간의 몸은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채소의 영양도 지역과 나라를 불문하고 비슷하다. 모든 인간의 몸이 채소에 반응하는 방식 역시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책으로 채식을 공부해도 된다. 양심 있는 학자들과 기관들이 자본주의 달콤한 손길을 뿌리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그런 진심이 담긴 사실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채식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나는 채식에 대한 '지식'을 필수로 꼽는다. 채식에 관한 지식이 채식을 오래 유지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공부하자.
이것이 나를 건강하게 바로 세우는 첫 번째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