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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가 맛있어진다.

채소만 먹고 사는 것이 두려운 당신에게

by 홍작가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자연식물식을 권했다.

어느 날 아내는 내게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이라는 책을 건넸다. 잘 익은 감귤껍질 색깔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책 표지의 색이 너무나 선명해서 잊혀지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아내는 내게 자연식물을 함께 해보자고 권했다. 이전에도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던 아내가 자연식물식을 실천해보고 효과를 본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귀가 솔깃 했던 모양이다.


아내의 권유에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할 것을 약속했다. 심지어 채식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자연식물식을 하자는 이야기였는데, 그땐 참 나도 겁이 없었다. '자연식물식'을 쉽게 설명하자면, '비건 + 가공식품 및 오일류를 제외한 식단'을 말한다. 모든 것은 타이밍일까. 간헐적 단식을 통해 음식물의 섭취를 줄이면서 체중이 감소하고 몸상태가 좋아지는 경험을 하고 난 뒤였기 때문에 아내의 제안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여전히 고기와 같은 육류를 좋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헐적 단식의 효과는 음식에 대한 나의 태도를 많이 바꿔놓았다.


Vegetarian diet is not built in a day: 채식은 마라톤, 꾸준히 하는 것이 답이다.

그렇게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단번에 모든 것을 끊을 수는 없었다. 30년 넘도록 습관처럼 익숙해진 식습관을 단번에 바꾸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다만, 나는 음식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조금 여유 있는 태도와 열린 마음을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 동물성 음식을 먹지 못해 괴로워하는 먼 미래의 나를 미리 상상하지도 않았다. 채식으로 변한 식단은 당장 눈앞에 닥친 코 앞의 현실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우리가 정한 대로 먹어볼 십상이었다. 딱 그뿐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한 식생활이 3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현실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채식도 천천히 꾸준히 해야 한다. 한두 번의 치팅 또는 동물성 식품 대한 욕구를 당장 해결했다고 해서 동물성 식품(육류, 유제품 등)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 그런 음식을 다시 갈망할 수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그럴 때마다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자.)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겁낼 필요는 없다.


채식을 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 한 끼가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채식을 할 때, 무엇부터 먼저 끊을까.

나는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공식품을 먼저 끊으라고 하고 싶다. 첫 번째 이유는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첨가물(화학적이든 천연이든 상관없이) 때문이고 둘 째는 이것이 곧 우리의 예민한 감각기관을 둔감하게 만들어서 천연 식재료에 대한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과 다이어트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채식을 시작하면 조금 가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연식물식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렇게 채식을 시작하면 채소와 과일맛에 쉽게 적응할 수 있고 입맛이 좋아져서 채식으로 하는 식사 자체가 너무나 즐거워진다. 우리는 편하다는 이유로 '진짜 음식'에 대한 '맛의 즐거움'을 가공식품에게 빼앗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가공식품을 삶의 여유를 가져다주는 하나의 혜택으로 보고 이제는 식생활의 필수적인 존재로서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지고 있다. 우리의 건강이 나빠지는 책임을 온전히 가공식품에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비만, 당뇨 등 생활습관병이라고 하는 '성인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뿐만 아니라 인강의 정신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 폐해에 대한 증거는 우리가 검색으로도 실험자료로도 방송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공식품을 아예 끊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바게트나 파스타면 등도 모두 가공식품이기 때문이고, 식생활이 늘 우리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먹지 말아야 할 가공식품은 포장 뒷면의 성분 표시란에 '우리가 읽어도 모르는 첨가물'이 들어있는 음식들이다. 우리의 입맛과 건강에 영향을 주는 가공식품을 식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빠른 채식 적응을 위한 필수 단계이다.


채소가 맛이 없다고? No! 입맛은 변한다.

당시에 나와 아내는 매 주말마다 고기를 구입하여 먹곤 했다. 하지만 목적이 달랐다. 나는 고기를 좋아해서 먹었고 아내는 단백질이 부족할까 봐 두려워 영양상의 목적으로 먹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고기를 구울 때마다 또는 먹을 때 느껴지는 육류의 비릿한 군내를 늘 불편해했고 싱싱한 고기의 선명한 선홍색의 핏빛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아내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장모님은 끼니마다 주로 나물반찬을 해주셨고 가공식품을 이용한 반찬은 거의 해주시지 않으셨다. 장모님은 채식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셨다. 그런 식성을 아내도 자연스럽게 따랐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어릴 때 익숙하지 않았던 음식은 모두 성인이 되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채식을 통해 우리의 입맛은 학습된다는 것과 익숙함을 통해 형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실제로 내 아이들을 봐도 그렇다. 아이들 역시 아주 어렸을 때 이유식을 하며 먹었던 음식은 시간이 지나도 잘 먹었다. 물론 나와 아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먹게 되는 가공식품 때문에 채소에 대한 아이들의 입맛이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특히 첫째(7살) 아이는 그 나이 때 아이들에 비해 채소를 꽤 잘 먹는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우엉, 연근, 버섯, 심지어 쑥갓 같은 어른들에게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채소까지 모두 먹는다. 많은 과학실험 결과를 통해 많은 학자들은 'Flavor Window'라고 하는 '맛의 창'이 생후 4-18개월 사이에 열리는데 이때 먹은 음식들은 나중에도 좋아하게 되고 그때 먹지 않은 다른 새로운 음식도 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실 이때가 아니더라도 특정 음식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최소 15회 이상)은 언제든 입맛에 영향을 주고 입맛이 바뀌도록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이미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 또는 편견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좌: 딸 아이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감자포타주 / 우: 우리 가족의 최애 김밥 '왕오이김밥'
좌: 저녁식사 식단, 자연식물식도 하나의 채식식단이다. / 우: 낫토 시금치 김밥, 채식을 하며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고 있다.


입맛은 분명히 바뀐다.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나도 그랬다. 채식을 하면 아마도 입에 맞지 않는 채소를 계속 먹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채식을 하기 전에 과일은 거의 먹지 않았고 채소는 입안을 개운하게 헹구는(?) 정도로만 먹었다. 채소를 즐기기는 커녕 어쩔 수 없이 맛의 균형을 위해 조금 집어 먹었을 뿐이다. (고기만 먹으면 텁텁하기 때문에) 그랬던 나도 지금은 채소를 꽤 잘 먹고 즐긴다. 다양한 채소의 여러 풍미를 즐길 줄 알고 채소를 먹었을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아삭한 식감을 좋아한다. 언제든 식탁에 채소가 올라와있어야 음식을 즐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기가 올라와야 밥 먹는 것 같다는 생각과 완전히 반대 아닌가.) 어쨌든 채식을 시작하는 분들은 채소만 먹고도 즐거운 식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겠지만 분명 입맛은 바뀐다. 걱정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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