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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Mar 18. 2022

채식과 사람,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채식 때문에 인간관계가 불편한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먹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 자체가 소속감을 주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밥은 먹었냐는 안부 인사도,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것도 모두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음식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식은 인간에게 생존 이상의 가치가 있다. 


결혼 전 나는 30년 넘게 부모님과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관계를 쌓아왔다. 심지어 지금도 내 가족과 부모님이 같은 음식을 먹는다. 어머니가 종종 직접 만드신 채소 반찬들을 가져다주시기 때문이다. 다만, 먹는 것이 같은 만큼 '음식에 대한 생각과 마음도 나와 비슷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부모님과 내 가족은 같은 음식을 먹어도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채식을 너무 심하게 해서... 


아내와 한의원에 같이 간 어머니가 한의사에게 한 이야기다. 출산 이후 몸이 약해진 아내를 위해 어머니가 한약을 지어주신다며 좋은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한의원에 가셨다. 그런데 아내가 한의사와 상담을 하는 도중에 '불쑥' 튀어나온 어머니의 '마음의 소리'는 씁쓸했다. 어머니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와 아내는 매년 건강검진에서 '모든 면에서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어왔다. 이를 증명해주는 다양한 측정 수치들과 함께. 채식은 아내의 건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시는 어머니가 아내의 몸이 약해진 이유를 '채식을 너무 심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은 채식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단편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평소에는 웃는 모습으로 다양한 채소반찬을 만들어 주시면서도 속으로는 채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깝다. 


채식, 그 의미 있는 외침

채식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없을까. 심지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한 번쯤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없을까.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채식을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개인에게는 '큰 일'이다. 채식으로 먹는 것을 바꾸며 겪게 되는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개인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존중받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세상을 보다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비건이 되는 일은 어찌 됐든 인생이 걸려있다. 또한 '채식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을 위해 실천하는 하나의 상징 같은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외침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가치 있는 일의 의미를 따져보기도 전에 '옳다 혹은 그르다'식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개인의 신념을 평가받아야 하는 현실이 속상할 뿐이다. 


미운 오리 새끼, 비건

특히 한 가족 안에서 '채식은 무조건 잘못됐어.'라는 식의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어떤 관계에서보다 채식을 하기가 더욱 힘들고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란 '우리는 서로 닮았다.'라고 하는 하나의 '핏줄 의식'을 토대로 형성된 공동체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로서의 개인은 한 사람의 인간 자체로 먼저 존중받기보다는 언제든 힘이 있는 사람이 (주로 부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쉽게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다른 생각과 의견은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쉽게 무시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분명 관심과 걱정을 바탕에 두고 하는 말들 인 듯한데, 실제로 말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집단행동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가족 문화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아버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불편한 기색 드러내며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 무엇을? 채식을. 사실 채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바른 식습관 교육'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조금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부모가 꼭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채소를 맛없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채소를 잘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채소를 맛있는 음식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굳이 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건강을 위해, 그리도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 아버지는 다만 우리 집 아이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사실이 불편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가공식품을 마음껏 쥐어 주며 손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할아버지의 의도가 실패하는 것 같아 속상하실 뿐이다. 채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내 아버지에게는 없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이런 감정을 툭툭 표현하신다. 나는 채식이 가족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또한 이런 문제가 한국의 가족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쓸쓸하기만 하다.


커밍아웃, 채식

물론 채식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내 부모님의 사이가 서로 말하지 않고 살 정도로 심각해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드러나는 채식에 대한 부모님의 못마땅한 심기가 때론 너무나 불편하다. 3년 전, 부모님께 채식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오랫동안 금기시해왔던 규칙을 깨고 고백하는 느낌이었다. '채식을 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부담되었고, 나는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겠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우리 세상에는 수많은 소수자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도 어렵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했을 때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도 나는 아내와 함께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의 외로움과 고독함에는 비할바가 못되지만, 막상 이런 일을 겪어보니 내가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이상한 죄책감 같은 감정마저 느껴졌다.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굉장히 낯설고 어색하다. 논 비건이 먹는 음식을 비건이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와 나의 정체성이 완전히 구별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비건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은 소수라는 인식 때문에 더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채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나마 이런 감정들을 느꼈다. 


'비건이냐, 논 비건이냐'를 넘어선 진정한 인간관계 

한 가족 안에서 아내는 비건, 남편은 논 비건으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다. 아내는 남편의 생일을 맞아 육류로 된 음식을 해줬다. 모든 비건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비건을 지속하다 보니 육류에 대한 불편함이 많이 생겼는데 (붉은 고기를 보는 것조차 불편하다.), 같이 사는 남편을 위해 비건인 아내가 고기 음식을 해주다니. 겉으로 보기엔 다소 기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사회의 축소판인 가정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사회적으로 우리는 과연 '먹는 것을 가지고 서로 나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비건 아내의 남편은 일주일에 몇 번은 아내와 함께 채식을 한다. 놀랍지 않은가. 고기를 좋아하는 논 비건의 입장에서는 채소만으로 차려진 밥상이 불만족스러울 수 있고, 채소의 맛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 뜨는 것이 영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채소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논 비건인 남편이 아내의 채식 밥상에 손을 내민 것만으로도 나는 '진정한 관계의 힘'을 보았고, '채식이라는 부분이 나와 관계를 맺는 상대방이라는 존재 전체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비건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논 비건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먹는 것이 아닌 인간관계 그 자체의 가치와 소중함을 중요하게 여기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늘 관계해서 추구해왔듯이) 이는 논 비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기에 모두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계'와 '비건'이라는 정체성을 모두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논 비건이든 그렇지 않든 서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다. 논 비건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삶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굳이 직접적으로 설득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빛날 것이다. 내가 옳다는 식으로 채식을 앞세워 관계를 시작하거나 평가하면 세상은 양분되고 발전할 수 없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신념을 지키며, 자신의 삶에서 채식의 의미를 찾는 것 만이 비건으로서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건이다. 내 부모님은 비건인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지만, 우리의 식생활에 대해 때로는 못마땅해하는 면이 있다. 채식을 한다고 말한 지 4년이 된 지금도 '고기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부모님을 보면 가끔 황당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다.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헛수고이듯, 채식을 한다고 소중한 관계까지 져버리면 채식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 중에 누군가 채식을 한다면 먼저 손 내밀고 채식을 하지 않는 가족의 손도 맞잡자.


서로 사랑하고 채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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