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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Mar 15. 2022

채식은 평생의 숙제입니다.

 채식을 실패했다고 좌절한 당신에게

채식을 시작하고 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대부분의 동물성 음식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일 큰 이유는 채소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둘 째는 동물성 음식이 집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눈에서 멀어지면 입에서도 멀어진다는 말로 바뀌어 가슴에 와닿는다.


오히려 동물성 음식에 대한 탐닉보다는 라면과 같은 간접적인 동물성 식품에 대한 탐닉이 더 큰 골칫거리였다. 얼큰하면서도 자극적인 풍미가 주는 쾌감은 일반적인 조리법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신기한 맛이었기 때문에 그에 비할 만한 채식음식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정말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사실 고백하건대) 먹어보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정말 일 년에 몇 안되었고 채식을 하면서 심지어 대부분의 가공식품을 먹지 않기도 했지만, 5분 안에 라면봉지 안의 보잘것없는 내용물만으로 만족스러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라면은 나처럼 집에서 삼시 세끼를 모두 만들어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주부 아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심지어 어느 때는 갑자기 라면 생각이 간절 해저 안절부절못하다가 새벽에 편의점에 라면을 사러 간 적도 있었다. 욕망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비건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나는 실망하기보다는 당장의 식욕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에 허겁지겁 라면의 봉지를 뜯은 적도 있었다. 그렇다. 나는 비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욕망에 비틀린 사람이다. 누군가 이야기할 수도 있다. '비건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깐다고.' 나는 비건이 되는 것을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건의 식생활이 자연에게나 인간에게 모두 이로운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인 동물성 음식의 식습관을 답습해온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 오를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서서히 바꿔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비건 태도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비건의 일상을 고백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에서 단순히 먹는 것에만 한정 지어 보더라도 '비건을 실천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아주 오래전부터 답습했던 동물성 음식 섭취의 식습관이 우리의 정서, 욕구, 상황 등과 얽힌 채로 평소에 잠들어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동물성 음식에 대한 욕구는 채식을 오래 했든 짧게 했든 상관없이 똑같이 우리를 괴롭힌다. 또한, 비건임에도 몰래 쇠고기 베이스의 라면을 몰래 먹는 일은 아주 단순하고 개인적인 일이지만 비건인 자신의 정체성을 육식의 욕망 앞에 무릎 꿇리는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고민스럽고 괴로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힘들었고 괴로웠다. 고작 1300원짜리 라면에 흔들리는 인생이라니.


그래서 음식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삶을 통째로 바꾸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왜냐면, 먹는 것을 바꾸려면 음식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그 생각이 곧 내가 살아온 방식이기 때문에 음식을 바꾼다는 것은 곧 내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음식이 내가 걸어온 길이고 내 삶이다. 그런 인생의 커다란 변화의 과정 가운데 동물성 음식에 대한 욕구는 아주 커다란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음식을 바라보는 비건의 삶의 태도' 그리고 '비건으로서의 식생활에 있어 자신만의 원칙들', 이것들이 변하지 않으면 된다. 되도록이면 철저히 지키면 좋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과거가 육식에 너무 나도 많이 얽혀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한 때 고기를 즐겼던 사람임을. 그렇기 때문에 현재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탓해서도 안된다. 쇠고기는 안 먹지만 신라면은 먹고 싶은 자신을 똑같이 탓해서도 안된다. 우리를 탓하는 순간 채식 식생활은 참 괴로운 일이 된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라면과 같은 동물성 가공식품에 대한 욕구도 점차 사라진다. 철저히 매 끼니마다 간식마다 채식을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다면 그런 가공식품이 우리의 입맛에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안 먹는다.'에서 '못 먹는다.'의 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채식은 평생의 숙제 같은 것이라고. 늘 현재 진행형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위선적인 동물성 음식에 대한 욕구를 인정하고 극복해나가는 것. 식사와 간식 등에 대한 철저한 원칙을 세워 실천하는 가운데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치팅을 인정하고 그 음식에 대한 불편함을 느껴보는 것이 어쩌면 온전한 채식 생활에 이르는 통과의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치팅'한 당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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