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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Mar 02. 2022

괜찮아! 치팅도 채식의 과정이야.

오늘도 치팅으로 죄책감을 느낀 당신에게 

뼛속까지 익숙해진 동물성 음식 

처음에 채식을 하면서 제일 먼저 체감했던 점은 밥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었다. 소고기, 삼겹살, 소시지 등이 빠진 밥상이 어딘가 모르게 허전해 보였던 것. 그동안 삼겹살이나 스테이크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융숭하게 대접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느낌을 가질 수가 없어서 한 동안 채소 밥상에서 어색함을 느껴야 했다. 분명 맛있게 식사를 하고 식사 자체에 대한 만족감도 컸지만 이런 어색한 시선은 채식 밥상에 대한 맛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채식은 단순히 음식만 바꾸면 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간단히 막국수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도 '탕수육 정도는 시켜야 하지 않느냐'며 중국집에 전화를 하신다. 이렇게 마치 조건반사처럼 행사나 때에 맞춰 육류를 찾고 습관처럼 먹어온 일상이 우리의 일반적인 식문화다. 여기에는 음식이 가진 마케팅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피자나 치킨, 콜라는 '파티'라는 이미지가, 고기는 '캠핑이나 고급'의 이미지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고급스러운 식사 분위기를 낼 때는 랍스터나 스테이크를 장면에 내세운다. 그런 마케팅에 끊임없이 노출되어온 우리는 자연스레 동물성 음식을 찾게 된다. 마치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우리에게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입맛뿐만 아니라 나의 정서도 '동물성 음식을 갈망하는 욕망'으로 물든 것이 아닐까. 채식을 하는 가운데 동물성음식이 떠오르거나 먹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죄책감은 내려놓자.


마치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금단현상을 겪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채식을 한 이후에도 내 입맛과 의식과는 다르게 채식을 하기 전에 즐겼던 음식들이 지속적으로 떠올랐고 그 음식들을 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럴 때마다 핸드폰의 배달앱을 켜고 떠오른 음식을 걸신들린 듯 찾아 보기도 했다. 내 경우에는 특히 피자나 오징어 튀김 등이 떠올랐다. 처음 채식을 할 때, 나는 자연식물식 식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시중에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도 멀리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포장마차의 떡볶이를 보는 일은 인내심의 한계를 쉽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는 곳은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다. 주말이면 치즈피자에 대한 욕망이 내 안에 가득했다. 그래서 피자 주문 사이트에 들어가 내가 즐겨먹었던 피자의 이미지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가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마치 무엇엔가 중독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비건이 되어가는 과정'은 '채식의 효과' 만큼이나 감탄스럽지도 극적이지도 않았다. 


떡볶이와 피자에 대한 욕망을 며칠이고 억누르던 나는 아내에게 일주일에 1번 '치팅'을 하자고 했다. 그 날 만큼은 피자나 떡볶이 중 하나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아무래도 채식을 하기로 다짐한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시장에 나가서 점심으로 떡볶이를 사 먹었다. 정말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정말로 맛있게 떡볶이를 즐겼다. 그렇게 즐기고 나면 어느샌가 떡볶이에 대한 욕망을 가라앉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제는 그렇게 한 번 한 번 먹는 동물성 음식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는 것. 처음 떡볶이와 피자를 먹을 때는 사실 불편한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다. 지금껏 자연식물식을 실천하면서 몸을 깨끗하게 만들고 나름 이런 식생활이 옳다고 스스로 자부했었는데, 그걸 스스로 깨버렸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느꼈고 떡볶이를 먹는 내 모습이 위선적이라고 느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맛을 들인 치팅은 (물론 떡볶이와 피자에 한정적이기는 했지만) 집에서 뭔가 해 먹기 귀찮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식사 메뉴가 되었고 금요일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원하면 아내와의 합의하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치팅은 처음이 어렵지만, 그 다음은 쉽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다. 치팅을 하면 할수록 나와 아내는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불편함을 치팅하는 음식에서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화학조미료에서 느껴지는 자극적인 맛과 향, 먹고 난 이후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거북함, 음식 자체에서 느껴지는 부자연스러운 식감 등이 그것이었다. 예를 들어 피자 치즈에서 느껴지는 우유 지방의 느끼함, 퍽퍽한 도우의 질감, 기름 쩌든 듯한 맛이 느껴졌고, 떡볶이에서는 매우 자극적인 단맛과 화학조미료(MSG)의 독특한 맛과 향이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치팅을 하며 즐겼던 음식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 경우에는) 피부의 발진 또는 가려움도 치팅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겼다. 평소에 자연식물식을 끼니로 먹을 때는 괜찮았던 몸이 갑자기 치팅을 하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고 점차 치팅에서 멀어지게 됐다. 우리는 자연식물식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가운데 우리의 욕망과 타협하여 원칙하에 치팅을 했다. 만약 자연식물식을 제대로 철저히 하지 않으면서 치팅을 했다면 치팅하는 음식으로부터 느껴지는 불편함이나 몸의 이상 증상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채식'을 철저하게 하면 '치팅'은 곧 멀어진다.


치팅에서 벗어나기 

아내와 나는 음식을 먹으며 음식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는데, 이것이 채식의 효과를 강화하고 동물성 음식과 가공식품을 멀리하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즉, 좋은 면은 더 좋게, 나쁜 면은 더 나쁘게 느껴지게 하는 강조, 대비 효과와 상대방의 음식에 대한 피드백이 내 피드백과 맞아떨어질 때 스스로 채식을 하는 동기가 강화되는 효과도 있었다. 나는 이런 작업을 '피드백'이라고 하는데 의외로 채식을 하는데 효과가 좋다. 채식 피드백은 혼자서 속으로 느껴도 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도 좋다. 음식의 맛과 질감,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 등 까지 세밀하게 이야기하는데, 마치 미식가가 된 기분이다. 음식의 맛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면 어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순히 '맛있다.' 혹은 '신선하다.' 정도 같은 단순한 감탄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다. 음식을 먹을 때 '피드백'이 익숙해지면 조금씩 의미를 더해서 발전시키면 된다. 


맛에 대해 이야기하면 채식이 더 즐거워진다!


채식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면 '치팅하는 음식'과 '채소로 된 음식'을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통해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치팅하는 음식'에 대한 나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에는 버터의 향이 고소한 풍미로 느껴졌다면, 점차 버터는 느끼하고 비릿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기하지만 이것이 가능해지는 이유 세 가지다. 첫째, 채식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내 입맛이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렇게 바뀐 입맛이 내 입맛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음식의 맛을 말로서 평가하기 때문에 나의 바뀐 입맛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치팅에 대한 나의 입맛이 변했음을 인식하는 것이 채식의 효과를 확실히 체감하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을 근거가 된다. 결국 채식에 대한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게 된다. 


채식은 '결과'가 아닌 '과정'

채식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해도 동물성 음식의 유혹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나는 우연히 맛본 치즈 치아바타에 한 동안 빠진 적이 있다. 당시에 채식에 대해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소한 치즈맛에 빠져있었다. 물론 농축된 우유의 비린맛이 점차 너무 불편하게 느껴져서 얼마 되지 않아 먹지 않게 됐지만, 언제든 채식을 하면서도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채식을 하는 과정 가운데 동물성 음식을 먹게 되는 '시행착오'를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이것에 대해 스스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우리는 굉장히 오랫동안 동물성 음식을 먹어왔고 즐겨왔으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채식 한 두 번으로 우리의 생각과 몸이 완전히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마케팅을 통한 수많은 유혹이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채식을 매일 실천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을 쌓고 채식의 효과를 검증하며 지속해 나가는 일이다. 다만,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동물성 음식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고 다시는 동물성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만의 신념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채소가 좋아야 비로소 '채식'이다.

채식이 비로소 편하게 느껴진다고 한 시점이 채식을 시작하고 거의 4년이 다 되던 때였다. 육류, 유제품에 대한 갈망에서 대부분 벗어났고 그런 음식의 유혹이 있다고 해서 힘들어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먹지 않는 음식'이라는 생각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음식에 대한 반감도 생겼다. 육류나 유제품을 먹지 않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그런 음식 맛과 향이 낯설어졌고 불편해졌다. 나는 고기 굽는 냄새가 불편하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고기 굽는 냄새만 맡아도 아내에게 '우리 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을까?' 이야기했겠지만, 지금은 고기가 음식이라는 생각보다는 '동물의 살'을 '불에 익힌다.'는 원초적인 생각이 든다. 또한, 내 동생 식구가 본가에 놀러 오면 부모님은 내 동생 식구에게 고기를 구워주신다. 나는 고기를 굽는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어지럽다. 이렇게 동물성 음식에 대해 나의 생각과 느낌이 완전히 변한 것은 그동안 끼니를 통해 채식을 철저하게 실천했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 '채소음식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비건이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애써 노력한 결과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라고 보는 게 좋겠다. 채식을 하면서 채소가 가진 맛과 향을 즐겼고 채소만으로 만든 음식의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Atomic Habit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갈등과 고민 속에서 억지로 비건이 되려고 했다면 아마도 꽤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채소를 좋아하고 즐겼기 때문에 동물성 음식에 대한 갈등이 있더라도 한 번도 채식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눈엔 고기보다 다양한 채소의 종류와 다양한 맛과 풍미의 과일이 풍성하게 느껴졌다. 이런 식생활은 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얼마 전, 마술쇼에 데려간 첫 째딸은 '어떤 음식을 좋아해'라는 마술사의 물음에  '딸기나 토마토, 사과요.' 답했다. 아이가 '피자나 치킨, 과자'라고 대답해야 다음 마술이 진행이 되는데, 쉽게 그 말이 나오지 않아서 마술사가 적잖이 당황했었다. 순진한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라면 우리 집에 채식을 어떻게 하는지 그 정도가 감에 잡힐 것이다. 맞다. 우리 가족은 채소와 과일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매 달마다 어떤 과일이 나오는지 나와 아내는 머릿속에 꾀고 있다. 사과와 귤을 시작으로 2-3월에는 대저토마토 4-5월에는 딸기, 6-8월 수박, 앵두, 복숭아, 청사과 9월엔 감, 10월부터는 홍로를 시작으로 각종 사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귤도 나온다. 우리는 나오는 과일의 종류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귤의 알맹이가 말라 귤껍질과 과육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하면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그렇게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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