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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Mar 27. 2022

최선을 다한 채식이 완벽한 채식

채식을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가 스트레스 받는 당신을 위해 

비건의 외출법

한국만큼 채식하기 어려운 나라가 있을까. 길거리를 다녀봐도 온통 육류를 주된 메뉴로 하는 식당들 뿐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채식 옵션'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 없는 외식환경이다. 채식을 하고 나서 가족과 함께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메 봤지만 오직 '채식'으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찾을 수 있었던 것이 김밥인데, 계란지단과 햄, 게맛살을 빼고 나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김밥을 돈 주고 사 먹는 것도 사실은 돈이 아까웠다. 내가 아는 어떤 채식하는 가족은 외식을 하러 나가면 일식집의 가락국수를 사 먹는다고 했다. 그나마 채식에 가장 가깝다면서. 이런 상황을 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채식의 현실'이다. 우리 가족조차도 외식을 할 때 최대한 동물성 음식을 피해보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서 아예 식사를 하고 나가거나 집에서 간식을 싸가지고 나간다. 또한, 나가기 전에는 어느 정도 이동 경로와 식사 시간을 예측하고 나간다. 그러면 미리 채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알아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간식만 가지고 나가서 다음 식사 전에 돌아올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런 외출 계획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뭔가 바리바리 싸서 다니는 것이 왠지 거추장스러웠고 나가는 시간이 자꾸만 지체되어서 늘 외출 준비가 부담스러웠다. 찐 감자와 고구마, 과일 등을 통에 담아서 다니는 일은 지금은 수월하지만, 처음엔 무엇을 싸가지고 외출을 해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지금은 그런 준비가 익숙해졌고 그렇게 싸서 다닐 수 있는 음식이 집에 늘 있기 때문에 서슴없이 빨리 준비할 수 있다. 외식을 하면 동물성 음식을 피하기는 정말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금은 융통성이 필요하다. 만약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조차 마음에 꺼려진다면 아래 제시한 음식들을 참고해서 외출을 준비하면 좋겠다. 


외출할 때 가지고 다니면 좋은 음식
구운 감자나 고구마, 바나나, 감귤류, 사과, 뻥튀기, 식사빵(깐빠뉴, 치아바타 등) 같이 가지고 다니기 편하면서 먹기 편한 음식
채식 옵션이 없어도 외식이 가능한 식당 
한식 식당(두부 마을, 한정식집, 백반집, 메밀 국숫집, 죽집, 비빔밥 등), 일식집(가락국수, 메밀 종류의 메뉴), 중국집(채식 짜장이나 채식 짬뽕이 있는 경우가 있음), 분식(유부 김밥, 샐러드김밥, 쫄면, 비빔국수 등)

이동을 고려하다 보니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음식에는 늘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어차피 한 끼 아닌가. 가볍게 생각하자. 이런 것 없이 나가서 출출할 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간단한 먹을거리라도 싸가지고 나가는 편이 훨씬 낫다. 또한, 채식 옵션이 없는 한국의 식당 현실에서는 동물성 식재료를 피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동물성 식재료가 쓰이는 것을 감안하되 내가 동물성 식재료를 골라낼 수 있거나 원래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고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까지 불편한 세상이라고?!

음식뿐만 아니라 음료, 옷, 도구 등에 이르는 많은 상품에 동물의 뼈나 가죽 혹은 털 심지어는 물고기의 부레까지 모두 사용된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우리가 따져보지 않아서 그렇지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와인병의 코르크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우유 성분의 접착제가 쓰이는 경우가 있고, 흑맥주로 유명한 기네스는 256년간 양조과정에서 부레풀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2016년에 기네스는 부레풀 사용을 공식적으로 중단한다고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쓰이는 포터 필터의 바스켓을 청소하는 브러시도 멧돼지의 강모로 만들어진다.  


부레풀: 물고기 특히 민어(民魚)의 공기주머니인 부레를 말려 두었다가 물에 넣어 끓여서 만든 접착제.


이런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져 알게 되면 비건을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할 수밖에 없다. 아직 밝혀지진 않았어도 여전히 많은 제품과 음식에서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불편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온라인 사이트가 있다. 바로 '한국 비건인증원'과 해외사이트인  '바니 보어' (barnivore)다. 한국비건인증원은 식품 및 화장품의 비건 여부를 심사하고 인증하는 국내 최초의 비건 인증기관이다. 이곳에서는 검색으로 비건 인증을 받은 업소 및 제품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바니보어스는 주류 관한 비건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사이트로 주류의 이름을 넣어 검색할 수 있다. 비건일 경우에는 'vegan friendly' 그렇지 않으면 'not vegan friendly'라고 나온다.   


좌: 한국비건인증원 http://vegan-korea.com, 우: 바니보어 https://www.barnivore.com


이렇게 비건에 대한 사회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건을 실천하는 일은 사회의 어떤 영역이나 위치에서든 곤란하기도 하고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은 마음에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식을 실천할 때는 누군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좋다. 나는 아내와 함께 비건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나의 경험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 공유하기도 하고 또 채식을 하면서 생기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늘 안정적인 상태로 꿋꿋하게 비건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처럼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혼자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오직 자력으로만 채식을 실천하려고 한다면 생각보다 많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SNS (Social Media Service)다. 블로그 또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에서 자신의 채식 경험담 혹은 채식 레시피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모두 채식을 할 때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채식을 하기 어렵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라도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어보자. 작은 발걸음이지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채식에 관한 영양서, 어떻게 읽고 실천해야 할까?

나는 채식을 책으로 배웠다. 대부분의 채식책은 대부분 학자의 입장에서 실험의 결과를 토대로 쓰였기 때문에 영양에 대한 명과 암이 분명하게 나뉜다. 또한 채식에 관한 영양서는 대부분 서양 학자가 서양의 식문화를 배경으로 쓴 것이다. 그래서 채식 영양서에 관한 내용을 그대로 우리의 식문화에 적용하는 것은 어쩌면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른다. 또한 같은 채식 분야라고 하더라도 학자의 관점과 실험의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산 음식, 죽은 음식'의 저자는 과일이 최고의 음식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곡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의 저자, 맥두걸 박사는 곡물을 비롯한 모든 비정제 탄수화물 음식의 섭취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주장을 따라야 할까. 나는 서로 배치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참고만 하되 우리나라의 식문화과 개인의 여건에 맞춰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과일이 제일 좋은 음식이고, 과일만 먹어도 괜찮다.'는 주장은 맞지만 그렇게만 먹고 살기에는 과일을 자주 사야 하는 '경제적인 면'과 칼로리 소모가 빠른 과일을 자주 먹어야 하는 '효율적인 면'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식 관련 서적에서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우리가 혼란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채식에 관한 주장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채식이 우리 몸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과 '건강을 지키는 음식으로서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좋다. 너무 과하지 않게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균형을 잘 잡아서 개인의 여건에 맞춰 실천하면 좋겠다.      

 

비건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일은 어쩌면 맨손으로 물을 움켜잡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아무리 완벽하게 하려고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대로 비건을 실천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런 상황에 불만과 불평을 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채식을 넘어서 비건을 더욱더 즐겁고 만족스럽게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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