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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Mar 27. 2022

성숙한 채식은 삶을 살찌운다.

채식을 넘어 삶의 변화를 느끼고 싶은 당신에게 

우리는 잘 먹고 산다. 

채식을 오래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입맛'이다. 여전히 나의 부모님은 '뭘 먹고 사니' 하며 걱정을 하시지만, 우린 정말 '잘' 먹고 산다. 많이 먹기보다는 다양하게 먹고, 적게 먹어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음식의 맛과 질의 측면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최고로 즐기고 있다고 믿는다. 가까운 로컬푸드점에서 늘 신선한 채소를 구입하고 유기농 마트에서 자연 그대로 자란 음식을 구해서 먹으니 식재료의 신선함을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양가도 풍부할 터, 먹을 때 느껴지는 채소의 맛과 풍미는 복합적이면서도 입맛을 돋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없던 식욕도 생길 정도. 


아내와 나는 종종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데, 마치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즐긴다. 좋은 와인일수록 복합적인 향을 담고 있다. 비빔밥도 마찬가지다. 비빔 양념을 너무 자극적으로 만들어 넣지만 않는다면 비빔밥에 넣은 다양한 생채소와 나물은 각 각의 개성 있는 향을 은은하게 코와 입안 구석구석에 전달한다. 정말 맛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주 먹는 상추뿐만 아니라 치커리, 적근대, 쑥갓, 겨자잎, 케일과 같은 나름의 독특한 향의 채소를 비빔밥에 넣으면 입안에서 '맛의 오로라'가 펼쳐진다. 마치 폭죽놀이를 하듯 입안 곳곳에서 향기가 터진다. 우리나라의 장과 궁합이 좋은 생채소들은 그 자체로 '미식가의 식재료'다. 


이 모든 결과는 사실 나의 바뀐 입맛에서 비롯된 것이다. 채식을 하기 전에도 신선한 채소를 먹었지만 이렇게 까지 즐길 수는 없었다. 이제는 채소를 단순히 먹는 수준이 아닌 즐기는 수준으로 될 정도로 입맛이 좋아졌다. 마치 '명품이냐 아니냐'는 어쩌면 작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지만 그 작은 가치는 흉내 낼 수 없듯이, 내 입맛이 그렇다. 어쩌면 예전과 아주 작은 차이일 수 있는 입맛 때문에 음식을 느끼는 깊이는 전보다 훨씬 더 세밀해지고 깊어졌다. 그래서 채소뿐만 모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만족감이 남다르다. 미식의 차이는 음식 자체에도 있겠지만 즐기는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크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나와도 그 음식의 특징과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냥 보통의 음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에 등장한 여우의 말에 사뭇 고개가 끄덕여진다.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음식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이런 음식을 길러준 자연의 소중함과 농부의 땀과 노력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음식은 당연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포장이 화려하지 않아도 설명이 장황하지 않아도 소박한 포장에 담겨 여린 빛을 발하는 채소의 빛깔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록 우리의 삶이 푸석해지고 생기를 잃는 것은 진짜 중요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감각함 때문이다.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서 조차도 그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채식은 내 입맛을 좋게도 해주었지만 삶의 의미도 찾게 해 주었다.


거꾸로 가는 밥상 

우리 집의 밥상은 채식으로 가벼워졌고 때론 소박해졌지만 식사의 즐거움은 배로 커졌다. 잘 익은 김치 한 조각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갓 지은 현미밥만으로 식사를 할 때도 있는데, 누가 보기에는 흔하디 흔한 보잘것없는 밥상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가장 맛있고 제일가는 밥상이다. 현미밥에서 느껴지는 구수함과 흰쌀밥에서 느낄 수 없는 알알이 터지는 식감이 좋고 제철 김장의 배추가 주는 시원한 청량감과 자연스러운 단맛과 아삭한 식감 거기에 태양초의 칼칼함과 매콤함이 더해져 자꾸만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감칠맛 나는 밥상이다. 이제는 맛의 구석구석이 다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소박한 밥상이라도 여느 밥상보다 그 음식이 지닌 가치의 무게와 맛의 깊이를 다르게 느낀다. 나에게 음식은 자연에 대한 감사의 대상이자 소중한 가치를 지닌 산물이며, 그 자체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의 노력과 성의 그리고 감사함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교육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채소로 만든 소소한 밥상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우리가 자칫 잊고 살 수 있는 삶의 소중한 것들을 깨우치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먹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왜냐면, 채식을 하기 전에는 '채소를 잘 먹어야 해' 또는 '가공식품 먹는 것을 줄여야 해'라고 하며 먹지 말거나 먹기를 줄여야 할 음식을 고르느라 신경 썼다면, 지금은 내가 먹는 음식 전부가 우리가 평소에 이야기하는 '가장 많이 먹고, 늘 곁에 두어야 할 음식'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여전히 우리의 건강에 가장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나는 건강에 중요한 음식을 늘 가까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느끼는 바와는 사뭇 다르다. 음식이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나의 역설적인 태도는 이제는 '채식을 삶,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먹고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채식은 내 삶을 바꿔 놓을 정도로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게 느끼기까지 최소 3년 이상이 걸렸다. 김치에 밥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식생활은 요즘의 식문화를 거슬러 거꾸로 가고 있지만 삶은 오히려 이전의 나를 거슬러 앞서 달려가고 있다. 나만 생각했던 삶에서 벗어나 지금은 주변에 관심을 갖고 둘러보며 내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단지 먹는 것일 뿐이지만 삶을 다시 곱씹게 하는 채식은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삶도 살을 찌우고 있다. 


살을 빠졌고 삶은 살쪘다.

채식을 먹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관점과 가치관을 갖는 것이 채식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채식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해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책 읽기'다. 영양에 관해 양심 있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채식을 하는 동안 나를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줬다. 채식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원칙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끊임없이 올바른 영양과 건강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고 깨닫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시중에 채식에 관련한 서적뿐만 아니라 건강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모으고 읽어 왔다. 나는 원래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가 채식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권했던 책 한 권 때문인데, 이 책 한 권이 책 읽기를 생활습관으로 만들어줬다. 어디서도 채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을 당시에 아내가 권해준 책 한 권에서 올바른 채식을 위한 기초가 되는 도움을 얻고 고마움을 느꼈다. 책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책을 쓰는 그 행위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지는 않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 한 권을 우리는 몇만 원에 사는 것이다. 나는 책을 사기 위해 고작 13000원 정도를 냈지만 내가 지불한 금액에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얻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이런 고마움이 미지했던 삶을 의미를 탐구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더욱더 삶을 탄탄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줬다. 먹는 것에서 시작한 책 읽기는 건강, 역사, 문학, 철학,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뻗어 나갔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먹는 것으로 시작한 책 읽기 덕분이다. 채식이 먹는 것의 본질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면 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본질에 가까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채식은 이렇게 내 삶에 들어와 책을 통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먹는 것으로만 끝나는 채식은 어쩌면 다이어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우리에게 깊숙이 들어온 채식이 세상과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 있게 바꾸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채식'이라고 생각한다. 먹는 것이 우리의 몸을 고치듯 그동안 삐그덕 거리기만 했던 우리의 삶의 가치를 다시 온전히 바로 세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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