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작가 Apr 25. 2022

준비할 게 없는 게 '준비물'

꾸준한 달리기를 위해서 준비물은 오직 '몸' 뿐이다.

돈이 많이 드는 남자

내 아내가 가끔 내게 '자긴 돈이 많이 드는 남자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맞다. 늘 나는 뭔가를 필요 이상으로 준비해왔다.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준비를 조금 과하게 한다고 해야 할까.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해서 나중에 겪을 불편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어쩌면 나의 과소비에 대한 합리화일까. (사실 합리화 맞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집에 잠들어 있는 짐이 많다. 


이런 행동의 이유를 생각해 보건대, 아마도 어릴 때 사소한 것까지 챙겨줬던 엄마의 배려에 익숙해진 것 때문인 것 같다. 늘 갖추어진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없으면 생길 불편함에 대한 생각이 곧 불안으로 나타났고 곧 그 불안은 과소비로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미리 산다는 생각'을 과소비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한 합리화의 재료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나는 신발도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가 필요했고, 옷도 한 벌이 아닌 같은 스타일의 옷을 검은색과 흰색으로 꼭 두벌씩 샀다. 이유는 단 하나. 필요할까 봐. 있을 지도 없을지도 모를 일을 예측해 구매하는 것이다. 현재는 그런 나의 소비벽을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참 어리석었다. 왜냐하면 맥주잔도 여러 종류를 구매했지만 결국 사용하는 잔은 딱 한 두 가지 정도뿐이다.  


그냥, 지금 나가면 된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하다가 적절한 시기를 놓치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피로감을 느꼈다. 예전에 웃지 못할 사진을 하나 봤는데 한국인과 외국인의 자전거 타는 차림에 대한 사진이었다. 외국인들은 티셔츠에 반바지 정도의 가벼운 일상적인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는 반면 우리는 자전거 선수와 같은 차림이었다. 

좌: 뉴욕의 자전거 타는 스타일, 우: 한국의 자전거 타는 스타일 / 트레블바이크뉴스 인용


지금도 밖에 나가면 '자전거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정서가 그 배경에 있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덜 외롭고 죄책감이 덜어진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모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준비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 특히 꾸준한 달리기와 같은 운동 습관 만들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꾸준한 달리기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달리기의 습관을 만드는 것에 달리기 아이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달리기를 하러 나가기까지 준비하는 시간을 늘릴 뿐이고 달리고 싶은 욕구를 떨어뜨릴 뿐이다. 오직 몸만 있으면 된다. 아무 옷이나, 잘 안 신는 신발 등 집의 어딘가에 관심을 받지 못해 우울해하거나 잠자고 있는 것들을 꺼내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우리는 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1킬로 달리는데 고작 6-7분이면 된다.  하루 6-7분을 위해 몇십 만원씩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냥 지금 나가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딱 1킬로만 달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