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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Oct 30. 2022

재미

THE LAST CODE_013

나는 일기를 못쓴다. 일기를 쓰면 내 글 솜씨가 너무 빤히 보이는 것 같아 창피하다. 여기저기 맞지 않는 맞춤법, 과한 단어의 사용 등이 눈에 거슬린다. 뭔가 의미 있는 말들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온통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문장과 단어들이 난무한다. 한 마디로 난장판이다. 이 모든 게 자기 계발서의 부작용이다. 자기 계발서는 세상 모든 것들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게 만든다. 일기도 그런 수단 중에 하나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면 된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는 일기를 쓰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럴까. 아마 일기조차도 부담이 돼서 잠깐 쓰다가 멈출 가능성이 크다. 


왜 모든 것이 성공을 위한 또는 직업을 위한 도구가 돼야 하는 걸까. 그냥 재미로 즐길 수는 없을까. 내 딸은 발레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딸이 발레리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발레를 너무 좋아해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들리는 선율에 따라 발레를 즐기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발레를 즐기는 아이의 표정에서 행복이 느껴진다. 춤을 추는 아이도 행복하지만 그 몸짓을 바라보는 나와 아내도 행복하다. 


내게도 아이와 같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있다. 요리다. 채식을 하면 요리를 할 수밖에 없다. 본래도 요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채식을 하면서 알게 된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 그리고 레시피 덕분에 요리를 더 즐거워하게 됐다. 음식만큼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요리를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오일과 향신료가 서로 뒤범벅되어 풍미가 생기고 채소가 들어가 맛을 낸다. 갖은양념이 들어가 섞이면서 향이 배가되고 마침내 요리가 탄생한다. 늘 음식을 만든 뒤에 아쉬운 점은 남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일 또 하면 되니까. 생각대로 될 때도 있고 생각만큼 안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또 하면 되니까. 그렇게 재미로 하다 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도 여러 번 있고 의외로 잘 되는 때도 생긴다. 그리고 배우는 것이 있다. 바로 노하우다. 수십 번 수만 번에 걸친 시행착오에서 노하우가 축적된다. 그러면 요리가 더 재미있어진다. 나는 요리를 배운 적도 없고 양념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감각적으로 맛을 낸다. 날 것 같은 기술이지만, 혼자서 충분히 즐길 만하고 기성 요리와의 차별점이 생겨서 좋다. 그냥 이뿐이다. 


나는 삶을 이렇게 살기 원한다.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평가는 상관없이 오직 재미로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요리를 통해 배운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이다. 우리가 요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잘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잘해야 하는 일은 없다.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잘해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책에서 성공하려면 ‘바닥부터 기어갈 생각을 하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은 스스로 처음부터 무엇인가를 터득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려면 즐겨야 한다. 평가는 뒤로 밀어 두고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내가 하는 음식 중에는 맛있는 것도 있지만 생각 외로 맛이 없는 음식도 있다. 그럴 땐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웃고 넘긴다.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공은 행복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행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어떤 일을 열정에 따라 즐기다 보면 스스로 몰입하게 되고 나름의 성과가 생긴다. 그리고 그 일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이 터득한 노하우가 생긴다. 다른 사람들은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감각으로만 만들어진 노하우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게 하는 독특한 개성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냥 편하게 즐기는 것이다. 여기에 참 행복이 있다. 그리고 성공도 있다. 실패는 없다. 늘 배우는 것만 있을 뿐이다. 내가 채식을 하며 요리를 통해 배운 성공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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