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T채식

나는 지금부터 '채식인'이다.

by 홍작가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금연을 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금연을 실천할 때 대부분 들리는 이야기는 '담배를 줄이고 있다'이다. 매일 한 갑을 피던 사람이 하루에 10개피로 줄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엄밀히 말해서 '금연'이 아니다. 그냥 담배를 적게 피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금연'이라고 하면 안 된다. 담배를 줄였다고 해야 맞다. 정확한 금연방법은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금연'이다.


나는 그동안 유명한 채식 서적을 바탕으로 채식을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채식에 관심이 있거나 채식을 처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썼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한 방식으로 채식을 할 것을 권유했다. 예를 들어, 밥상에서 채소의 비율을 점차 높이라는 식으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어쩌면 담배보다 중독성이 강한 고기를 조금씩만 먹으라는 이야기와 같다. 담배를 피우는 횟수를 줄인다고 금연이 되지 않듯이, 고기도 조금만 먹는다고 언젠가는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고기를 끊어야 끊는 것이다. 동물성 음식을 완전히 먹지 않는 상태에서 출발해야 채식을 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고민과 갈등들을 해결하며 동물성 음식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나는 단 한순간에 채식주의자가 됐다. 아내가 고기를 먹지 말자고 내게 권유하고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그 순간에 나는 이미 완전채식주의자(비건)였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겉으론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결정을 내린 순간의 나는 결정을 내리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이걸 믿어야 한다. 이렇게 하고 나서 무엇을 먹을지 걱정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결정이 뒤에 있을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게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여차하면 채식을 그만두지, 뭐' 하는 생각을 하면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을지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채식을 하기로 결정하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잘 몰라서 책으로 채식을 공부했고, 책에서 답을 찾아 생활에 적용했다. 느슨하게 채식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아마 책도 건성으로 읽었을 테고, 제대로 된 정보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채식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떻게 먹어야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책에 매달렸다. 그래서 쌈채소와 구운 채소부터 밥상에 올려놓고 먹기 시작했다. 이미 채식주의자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정체성에 맞게 차려 놓은 '채소밥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약간의 허전함을 계속 느끼기는 했다. 뭔가 늘 빠져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이런 생각은 사라졌다.) 상추에 밥과 쌈장만 싸서 먹어도 삼겹살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먹어도 맛있네.'라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정말 채소만 있는 밥상을 즐겼다. 특히 새송이버섯을 구워 먹길 좋아했는데, 버섯을 조금 오래 구우면 물이 생기기 때문에 먹기 전에 살짝 익혀서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전기 그릴도 구매했다. 채소를 굽는 소리는 밥맛을 더욱 좋아지게 했고, 한동안 꽤 유용하게 사용했다.


인간의 창의성은 '결핍'과 '제한'으로부터 나온다.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처럼. 예술가들은 각자가 가진 도구가 본인의 '제한'이다. 연필, 캔버스, 물감 등이 모두 '제한'된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이 창조해내는 작품은 제한된 그들의 도구를 뛰어넘어 커다란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자신의 '제한'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창의성을 발휘해 단순한 도구의 '잠재력'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이 잠재력은 곧 '제한'을 인정한 작가에게서 나왔다. 채식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동물성 식품을 뺀 나머지의 제한된 재료들 만으로도 어떻게든 먹을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참고로 우리 집 냉장고는 늘 텅텅 비어있다. 장을 보지만 늘 비슷한 식재료를 구매한다. 그렇지만 나와 아내는 매일 다른 음식을 먹고 있다. 배달음식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이 부럽지 않을만큼 다양한 메뉴를 신선한 채소로 만든다. 때론 생채소에 된장만 놓고 먹기도 하고, 어제 먹다가 남겨둔 음식을 다시 요리하기도 하고, 감자탕과 같은 동물성 음식을 채소만으로 재연해서 먹어보기도 한다. 먹기 위해 요리하기보다는 재미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요리가 노동이 아니라 하나의 오락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재미와 맛, 포만감까지 1석 3조의 식생활이다. 채식을 2년 넘게 해 보니 채소만 가지고 요리를 해도 먹을 것은 넘쳐난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채식에 관한 레시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름의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의 요리를 재연해보거나 스스로 새로운 맛을 찾는 채식인들이 많이 있다. 자신의 레시피를 사진과 함께 자세히 공개하는데 그냥 따라하기만 하면 꽤 괜찮은 채식요리를 만들 수 있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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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감자와 버섯으로 만든 '감자탕', 오른쪽: 떡볶이 소스를 이용해 만든 '떡볶이 소스 덮밥'

이렇게 나름의 채식의 방식을 찾고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는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부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지식을 통한 마음의 변화와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먹는 것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채식인이 되기 힘들다. 그 시작이 동물의 생명권 보장이든 기후 변화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든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든 상관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정체성'이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바꿔야 채식을 하는 과정 가운데 많은 어려움들과 갈등의 상활을 잘 넘어갈 수 있고, 끝까지 채식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채식은 누구나 원하면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채식인'이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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