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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든 떡볶이가 싫은 이유

자유분방한 입맛을 위하여

by 홍작가

생떼 부리는 초딩입맛

어릴 때, 엄마에게 떼를 쓴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를 집에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그런 생떼에 못 이겨 엄마는 떡볶이를 해줬지만 길거리 포장마차의 매력적인 떡볶이 맛을 흉내 낼 수 없었다. 도대체 길거리 떡볶이에는 무엇이 들어가 있길래 요리의 달인이라고 믿는 우리 엄마조차도 그 맛을 따라 할 수 없을까. 어린 나는 고민했고 궁금했다.


100원에 떡 10개를 주는 떡볶이에는 뻘건 국물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짭조름하면서 달큼한 국물은 처음이었다. 나는 얇은 국자로 두 번 정도 퍼서 잔잔히 담아주는 뻘건 국물을 늘 남김없이 해치웠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혀를 내밀어 싹싹 핥았다. 그것이 바로 '초딩입맛'의 시작이었다. 초딩입맛은 다른 게 아니다. 달고 짠맛만을 좋아하는 입맛이다.


요즘 포장마차를 가면 여전히 떡볶이에는 별다른 식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떡볶이를 처음 맛본 지 30년이 넘게 지났어도 포장마차의 떡볶이는 어린 시절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나는 그 짭조름하고 달큼한 떡볶이 국물 맛의 비결을 알았고, 이제는 더 이상 길거리 떡볶이의 맛을 흉내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맛있는 논란: L-글루탐산나트륨

길거리 떡볶이의 '맛있는 비결'은 바로 우리가 'MSG(monosodium Glutamate)'라고 알고 있는 첨가물이다. 지금도 유튜브를 찾아보면 옛날 떡볶이를 재연한다면서 MSG와 미원을 넣는 레시피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웰빙 바람이 불면서 MSG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생겼지만 여전히 외식을 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MSG다. 2013년 기준으로 서울지역 식당 자영업자 500명 중 93%가 MSG를 사용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중국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양은 한식당의 2배가 넘었다.(외식업체 조미료 사용 및 인식조사보고서, 서울 환경연합, 서울시 2007년) 심지어 한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청와대 조리사 출신이라고 밝힌 셰프가 대통령이 맛있게 드셨다던 라면을 조리하며 마지막 조리순서에 MSG를 넣었다. 이쯤 되면 MSG는 거의 '국민 화학조미료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현재 MSG는 매우 안전한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물질이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글루탐산나트륨이 뇌세포를 죽이는 독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글루탐산나트륨은 뇌의 신경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이지만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면 신경세포가 광분해서 죽게 된다. 인공 조미료에 들어있는 글루탐산나트륨도 그런 역할을 한다.(내 아이를 해치는 가짜 음식 270.p)


MSG는 요리에 대한 수고를 많이 덜어줬다. 조금만 넣어도 음식의 맛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더불어 누구든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적은 수고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대가도 있었다. 우리의 입맛은 MSG의 맛에 길들여졌다. 모든 사람의 입맛이 다 비슷해졌다. 왜냐하면 음식의 종류에 관계없이 MSG를 한 번 맛보면 모든 음식에서 그 맛을 찾게 되기 때문인데, 인스턴트식품, 즉 라면과 과자의 첨가물과 국물을 내는 조미료에 들어가는 첨가물의 구조식이 같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해치는 가짜 음식 236.p) 요즘 옛날 떡볶이가 유행하는 이유도 어린 시절의 맛을 다시 불러일으킬 만큼 길들여진 MSG의 맛에 대한 우리의 향수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떡볶이를 만들 때, 다시마 국물을 내고 거기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설탕을 넣었다. 그리고 항상 다진 마늘과 양파 등 채소를 함께 넣어 맛을 냈다. 난 그런 떡볶이가 싫었다. 채소가 들어가면 국물 맛에서 풋내가 나고 결정적으로는 내가 아는 길거리 포장마차 떡볶이에는 채소가 안 들어가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맛본 떡볶이의 짭조름하면서 달달한 맛이 어린 내 입에는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각종 채소가 어우러져 내는 떡볶이 국물의 풍부한 맛은 입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맛이 없다고 느껴졌다. 길거리 떡볶이를 즐겨먹으며 MSG에 의해 길들여진 미각은 오직 한 가지의 맛만을 기억하고 나머지 맛에 대한 감각은 마비가 된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MSG는 음식에 들어가면 음식의 짠맛과 그 음식의 특징적인 맛을 강조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의 다양한 풍미는 그저 내 미각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입맛뿐만이 아니었다.

MSG는 입맛을 길들여 의존하게 만드는 동시에 요리를 하며 얻을 수 있는 작은 성취감과 즐거움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한 노하우의 습득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미료만 있으면 단번에 맛있는 음식이 탄생하는데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음식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요리는 내 입맛을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여러 맛을 경험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짜면 물을 붓고 싱거우면 다시 소금을 넣는다. 신맛이 많이 날 때 설탕을 조금 넣으면 신만이 순화되어 먹을 만해진다. 이것이 바로 요리의 노하우와 맛에 대한 감각이 쌓여가는 순간이다. 맛은 주관적이라서 오직 내 입맛에만 맞으면 된다. 완전히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즐거운 세상이다. 하지만 MSG를 넣으면 감칠맛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재미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맛을 하나의 실패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MSG는 실패를 모르는 완벽한 맛의 해결사다. 음식이 맛이 없을 때 라면수프를 넣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요리가 두려워졌고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졌다.


MSG를 멀리하자 '진짜' 맛이 보였다.

MSG(성분표기:L-글루탐산나트륨) 대부분 들어가 있는 가공식품을 완전히 멀리하고 나서부터는 입맛이 자유로워졌다. 즉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데 두려움이 없고, 어떤 음식을 맛보든지 그 음식만의 고유한 맛을 잘 느끼게 됐다. 그래서 맛이 없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요즘처럼 다양한 봄나물이 나오는 시기에는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잎채소를 사다 무쳐먹는 재미가 생겼다. 모든 맛을 평등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맛이 있고 없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미각으로 맛을 보는 게 아니다. 내 입맛에 조금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음식의 익숙함에 대한 정도의 차이지 절대 맛이 없는 게 아니다. 모든 음식은 진짜 '맛' 있다. 이제 내 떡볶이에도 엄마의 떡볶이처럼 다양한 채소가 들어간다. 채소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이 떡볶이를 고급 요리처럼 국물 맛을 한층 더 풍부하고 깊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과연 길거리에 파는 떡볶이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모르셨을까. 알면서도 모른척하신 것은 아닐까. 내 아이들에게 만은 간식이라고 할지라도 자연의 향기가 듬뿍 담긴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실패한 떡볶이는 실패가 아닌 음식다운 완벽한 떡볶이가 아니었을까.




TIP.

MSG는 1908년 키쿠나에 이케다 일본 도쿄대 물리화학과 교수가 다시마에서 분리한 글루탐산이 감칠맛이 있음을 알게 되어, 이후 화학적으로 글루탐산의 나트륨염을 합성했고 '맛의 정수'라는 뜻의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면서부터 널리 판매되기 시작했다. 원래 다시마, 치즈, 김 등에도 존재하는 천연 성분이었지만 화학적 합성 이후 '화학조미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식품첨가물 완전정복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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