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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샘 Nick Sam Feb 18. 2019

만들기의 공간들, 우리 집이랑 뭐가 다르지?

아이와 다녀온 메이커 스페이스 - 만들기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

1. 다시 만난 만들기, 그리고 메이커 스페이스


우리 집 아이들은 만들기를 좋아한다. 색종이와 레고, 점토, 슬라임.. 등등. 요즘은 다양한 만들기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집에서도 언제든지 만들기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특별한 재능이나 실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즐거워한다.


3D pen을 가지고 노는 우리 집 아이들

아빠가 되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아이들의 활동에 따라 아빠도 계속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에 나도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빠가 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아빠를 만들기로 끌어들였다. "아빠 도와줘!"


그렇게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메이커 스페이스 maker space'에도 흥미가 생겼다. 만들기를 위한 공간? 처음에는 재료만 주어지면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어떤 재료,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어떻게 아이들을 도와줄지 고민들이 생겨났다. 메이커 스페이스에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만들기를 할까? 집에서 하는 만들기와는 무엇이 다를까?


책과 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직접 가보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 있으랴. 아이 초등학교의 첫 방학이 시작되고는 지인들께 추천받은 메이커 스페이스를 찾아 나섰다. 지난해 두 번의 방학 기간 동안 아이와 함께 다녀온 서울의 메이커 스페이스 4곳. 동대문구 이문동 DD238,  송파구 위례 엘리웨이 키즈스쿨, 성동구 용답동 서울새활용플라자, 영등포구 당산 꿈이룸학교.


이렇게 다녀온 메이커 스페이스에서의 만들기는 '집에서 만들기'와 무엇이 달랐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번 글은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만들기 공간 두 곳, 이문동 DD238위례 엘리웨이 키즈스쿨에 대한 이야기다.  



2. 만들기를 '가르치지' 않는 만들기 공간들


이문동 DD238위례 엘리웨이 키즈스쿨 메이커 스페이스라는 ‘아이들의 공작실'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공간들이다.


아이들은 준비되어 있는 다양한 재료와 만들기 도구들을 마음껏 쓸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에 큰 장비나 위험한 공구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기본 도구들 위주로 준비되어 있다. 가장 위험한 공구는 전동드릴이나 글루건 정도. 위험한 공구는 공간을 운영하시는 선생님들의 안전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두 공간에서 가장 인상 깊다고 느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DD238 아이들의 작업실은 No Adult Zone이다.

우선, 첫 번째로 가보았던 이문동 DD238. 'DD'는 Different Doors의 약자이다. 이 곳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이들의 작업실과 어른들의 카페. 두 공간은 유리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아이들의 작업실은 'No Adult Zone'이라고 한다. 즉, 부모가 들어가서 함께 작업할 수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만들 것을 정하고 스스로 재료와 도구를 챙겨야 한다. 당연히 만들기도 혼자서 한다.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들기에 대한 선택권은 아이들에게 있다.



작업실을 운영하는 선생님은 세 분이 계셨다. 모든 것을 아이들 마음대로 하는 공간에서 선생님들은 어떤 역할을 할까. DD238 안내 자료에 쓰여있는 '아이들을 대하는 세 가지 원칙'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1. 질문합니다 2. 보여줍니다 3. 기다립니다
 

카페 공간에 앉아 건너편 작업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그렇게 한다. 선생님들은 무엇을 만들지 물어봐주고, 필요한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의 만들기를 기다린다. 선생님 만들기에 개입(?)하는 순간은 아이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때, 위험한 도구를 사용해야 할 때이다. 아이들은 각자 또는 함께 만들기를 즐겼다.


이곳은 마치 놀이터인 것처럼 동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위례 엘리웨이 키즈스쿨, 아이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위례 엘리웨이 키즈스쿨은 이문동 DD238과 유사한 공간이라고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엘리웨이 키즈스쿨은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클래스룸과 만들기 공간인 '워크룸 work room'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에 해당하는 워크룸을 이용해보았다.


DD238과 비교하자면 조금 더 높은 연령의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용할 수 있는 공구가 좀 더 다양하고 다른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앉아 있을 카페와 같은 공간은 아예 없었다. 보호자의 입장료도 내면 함께 만들기 작업은 가능하다.


그런데 워크룸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워크룸은 어린이들의 작고 소소한 생각들을 응원하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흥미로운 생각을 발견하고 스스로 도전하도록 믿고 기다려주세요.


이 공간을 운영하는 선생님의 호칭은 '코치님'이다.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만들기를 기다려주는 DD238의 선생님들과 비슷했다. 조금 다른 점은 코치님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물론 직접 만들기를 가르쳐주거나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아이들이 만든 샘플 sample을 보여주고 질문을 던지며 아이들의 생각을 돕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들기를 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코치님 본인의 만들기를 한다.


이를테면 이곳은 멘토와 함께 하는 작업실이었다.



3. 가르치지 않는 이유, '팅커링 Tinkering'


아이와 두 곳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방문해 있는 시간은 아빠의 휴식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가르침' 없이 아이의 만들기는 괜찮은 것일까. 각 공간에 두세 번씩 방문할 때마다 아이는 매번 스스로 새로운 것들 만들어 냈다. 만들기가 끝나면 나는 신기하고 기특한 생각에 이렇게 묻곤 했다. "정말 네가 혼자 했어?" 그러면 아이는 늘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DD238과 엘리웨이 키즈스쿨의 선생님들은 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최소한의 도움만 주는 것일까. 수업이 아닌 스스로 만드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준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만들었는지 스스로 종이에 적고 있다. (DD238에서)
다른 작품을 보고 더 복잡한 만들기를 한다. (엘리웨이에서)


두 공간이 이이들에게 주었던 자유로운 만들기 시간의 의미는 '팅커링 tinker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팅커링’의 사전적인 뜻은 ‘서투르게 만지작 거리는 것’ 정도이다. 교육분야에서 팅커링 활동은 메이커 교육 maker education의 첫 단계로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 놀이처럼 만들고 분해하고 꾸미고 조립하는 자유로운 활동들을 이야기한다.  


'팅커링 활동 과정', 강인애 외 2인 <메이커 교육>, 31p

이렇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작업하며 배우는 개념은 보통의 강의식 수업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팅커링 활동은 재료와 도구의 사용을 익히며 만들기의 흥미를 일으키는 메이커교육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만들기를 재미있고 자연스러운 놀이로 받아들이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재료와 도구의 선택부터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진행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과 주도적인 실행에 도움이 되는 것을 당연한 일인 듯하다.


DD238과 엘리웨이 키즈스쿨에서 선생님과 코치님들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활동을 보며 팅커링 활동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또한 아이들의 팅커링 활동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간을 운영하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발견했다.


두 곳에서 발견한 메이커 스페이스에서의 어른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상냥하고 친절하며,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으로 만들기의 공간에는 부드럽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둘째,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적절한 격려와 자극, 도움을 주는 어른들 덕분에 아이들은 만들기의 재미와 자신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만들기가 끝날 때까지 스스로 만드는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 주었기에 만들기의 시간은 온전히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4. 그렇다면, 메이커 스페이스는 언제 갈까?


집에서도 아이들의 만들기를 위한 부모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부모가 적절한 재료와 도구를 주고 안전한 사용을 돕는다면, 그리고 아이의 만들기에 덜 개입하고 기다려주면 되지 않을까. 두 곳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다녀온 후로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메이커 스페이스는 갈 필요가 있을까. 집에서 만들기를 충분히 즐기는 경우 메이커 스페이스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겠지만 나와 아이가 함께 만든 답은 이렇다. '가고 싶을 때 간다.' 


집에서 부모가 제공하는 재료와 도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너무 지루해하거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가끔씩 가면 좋을 것 같다. 가서 새로운 재료나 다른 아이들이 만든 것을 본다면 즐거운 자극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주 방문하기에 부담이 없는 거리에 있다면 정기적으로 가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함께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어느 경우라도 갈지 말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이가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꼭 가보고 싶은 메이커스페이스가 하나 있다. 바로 마포구에 위치한 '릴리쿰'이라는 공간이다.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진짜 만들기를 즐기는 어른 메이커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릴리쿰의 이야기를 담은 책 <손의 모험>에는 만들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른이든 아이든 자연스러움을 찾는 일. 그것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공간에서든 즐거운 만들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 위례 엘리웨이 키즈스쿨은 2019년 1월 31일부로 운영을 마치고, 수원 광교에서 새로운 공간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참고해주세요.

* 방문했던 나머지 두 곳의 메이커 스페이스 '새활용플라자'와 '꿈이룸학교' 방문기는 이후의 글로 소개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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