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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샘 Nick Sam Sep 15. 2020

공주 원도심에는 특별한 일상이 있다

2020.09.15 커뮤니티 디자이너의 일상 #2

‘소도시 원도심의 코워킹스페이스에 아기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할까? 상상할 수나 있을까? 나에겐 오늘의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인증샷을 남겨본다.

공주 원도심 코워킹스페이스 ‘업스테어스’, 그리고 아기

그리고 1시간 후 코워킹스페이스 길 건너 카페에서, 유모차 두 대의 모습을 신기한 듯이 사진을 찍었다. 유모차 사진을 찍는 나의 모습을 또 내 동료가 사진 찍는다. 사진들을 SNS에 올리자 지인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준다.


원도심 마을 작은 카페 ‘반죽동247’을 채운 두 대의 유모차


#원도심 #코워킹스페이스 #아기 #유모차 #SNS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키워드들이 묘하게 일상을 이루고 있는 곳. 이곳은 어디일까?


작은 카페에 앉아있으니 같이 일할 동료가 찾아온다. 같이 진행할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 서울의 북클럽에서 만났고, 전국 지역혁신가 네트워킹 행사에서 만났던 옆 도시의 부동산 회사 대표님이 가족과 함께 지나간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더니 가족 나들이를 왔다고 한다. 커피, 휴식, 일, 만남, 나들이가 어우러진 마을.


이곳은 공주 원도심이다.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스스로를 커뮤니티 디자이너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일하고 있다. 서울에나 있을 법한 북클럽과 영화모임, 워크샵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코워킹스페이스(공유사무실)과 코러닝스페이스( co-learning space, 공유배움터)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러, 어떻게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배우러 찾아주시기도 한다. 가끔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마을의 모습을 촬영하고 취재하러 오시기도 한다.

‘와플학당’ 코러닝스페이스에서 방송 촬영 중. 통편집 되기도 한다ㅋ


어떻게 이런 일들이 생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스스로 신기하기도 하다. 나의 동료들이 이 마을에서 살고 일한 지는 2년 정도, 내가 일한 지는 고작 10개월 정도이다. 나는 이 마을에서 3개의 북클럽을 운영하고, 동료들이 운영하는 북클럽까지 합치면 마을의 북클럽이 7개 정도가 된다. 우리와 아직 인연이 닿지 않은 분들이 운영하시는 독서모임들도 있고, 다양한 주제와 취미의 소모임들도 많다. 대부분이 아니 거의 다가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티들이다.


이 정도면 북클럽 마을, 혹은 커뮤니티 마을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청년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계속 줄어들고 있는 소도시. 하지만 마을의 북클럽들에는 지역과 인근 지역에서도 온 청년들 8~10명으로 북적북적하다. 점점 연결점이 늘어나는 지역의 청년, 지역 대학교의 학생들과의 인연으로 새로운 일과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유명 소도시 마을의 사례나 도시재생 분야의 책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아주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그리고 조용히 작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특징과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주 원도심 ‘가가책방’의 고전읽기 모임. 청년들이 다 어디서 오셨지?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이전에, 우선 참 감사한 일이다. 지난 몇 년 간 북클럽을 운영하고 새로운 커뮤니티 모델에 대해 공부해온 것들을 새로운 직업으로 그리고 창업으로 연결하여 마음껏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커뮤니티를 함께 운영해온 동료들이 지역에서 함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지역의 주민들, 어르신들, 청년들에게 응원받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더 잘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가기 위한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사한 마을의 일상을 나름 이렇게 설명해본다.


먼저 대화.

현재 우리의 일과 우리의 모습,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동료들과 토론한다. 갑론을박을 논하는 토론이라기보다는 동네 카페에 앉아서 새로운 일을 같이 구상하고 기획하는 대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신나게 대화하고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찾는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커피 한잔으로 포스트잇 한 장으로 깊은 생각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는 대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

오랫동안 수평적인 관계로 북클럽과 프로젝트를 함께 해온 동료들이 지역에 함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실험할 지역의 주민분들이 계시다. 우리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함께 할 동료를 찾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계속해서 커뮤니티를 만들어간다. 아주 익숙하고도 즐거운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공간.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공간을 스스로 찾고 만들고 운영한다. 숙박, 책방, 사무실, 교육장.. 각자가 각자의 일에 맞는 공간을 하나 이상씩 운영하고 있다. 거기에 기존에 지역의 주민과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는 사랑방 같은 곳들, 갤러리나 화실, 공방 같은 곳들, 커뮤니티가 있고 콘텐츠가 있는 공간들이 무수하다.


이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일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 일상의 대화는 놀이와 회의와 잡담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이룬다.


다시 오늘 일상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본다.


동료 부부가 귀여운 갓난아기를 데리고 코워킹스페이스로 와서 함께 일을 한다. 힘이 들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한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다른 동료도, 다른 지역에서 찾아주신 손님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이야기가 깊어지면 다시 코워킹스페이스로 옮겨 회의를 한다. 기획한 행사와 교육을 교육장에서 운영한다. 저녁에는 책방의 북클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 늘 새로운 만남과 대화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것이 내가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일상이다. 동시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유다.


하루가 저물고 코워킹스페이스에 앉아 일을 마무리한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을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일상을 남긴다. 글쓰기 연습도 할 겸.


내일은 또 어떤 일상을 기록할 수 있을까?


2020.09.15 by 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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