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닠끼 Nicky Feb 01. 2023

무음과 방음에서 해방된 세상

소리의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

내 핸드폰은 언제부터 진동이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이어폰을 꼈을까. 아마 핸드폰을 처음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 그리고 '마이마이(휴대용 카세트)'를 처음 샀을 때부터일 테니 20년은 훨씬 지났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내 핸드폰은 대부분 진동이나 무음이었다. 유행하는 16화음 벨소리를 다운받는 데에 혈안이 되었던 시절 빼고는. 마이마이와 MP3는 이어폰이 필수였고, 대부분 학교 자습시간이나 독서실, 길거리, 대중교통 등에서 그리고 내 방에서도 이용했다. 나중에 핸드폰에도 이어폰을 연결할 수 있게 되면서 이어폰 사용은 더욱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나에게 '무음'과 '방음'은 익숙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지만,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무음'과 '방음'은 계속되었다. 학교나 회사에서 귀가할 때마다 설정을 바꾸는 건 귀찮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방학도 있었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전 1-2개월 쉬었던 기간도 있었다. 심지어 6개월 정도 갭먼스를 가진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에도 '무음'과 '방음'은 유지되었다. 딱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지내왔다. 익숙한 상황을 바꾸는 것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사실 좋고 싫음을 떠올릴 정도로 의식적으로 다가오는 사안이 전혀 아니었다.  


Image by rawpixel.com on Freepik




최근 퇴사를 했다. 지금 당장은 어딘가에 고정적으로 적을 둘 계획이 없는 퇴사. 갭먼스일 수도 갭이어일 수도 혹은 갭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는 그런 쉼표. 첫 갭먼스 때에는 당연히 재취직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그저 편안하게만 쉬지는 못하고 불안감이 공존했었다. 하지만 재취직에 대한 의무감이 없는 퇴사를 해서일까 아니면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이 조금은 더 생겨서일까.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이번엔 조금은 다른 감정을 느꼈다. 예전엔 답답한 목장 안에만 있다가 드넓은 풀밭으로 나가 풀을 먹게 된 소와 같은 기분이었다면, 이젠 그 풀밭에서 함께 풀을 먹는 무리들과 목장 주인, 그리고 풀밭을 넓게 감싸고 있는 울타리까지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나는 갑자기 '무음'과 '방음'에 대해 의식하게 되었고, 여기에서조차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핸드폰에서 진동을 해제했고, 이어폰 대신 스피커를 연결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냈다. 핸드폰 진동을 해제한 채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마트나 몰도 갔고, 길거리도 다녔다. 대중교통에서는 잠깐 진동으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나오면 곧바로 해제했다. 밖에서 이어폰은 끼지 않았다. 핸드폰에 직접 얼굴을 대고 통화했고, 음악을 듣지 않았다. 밖에선 바깥 삶의 소리들을 온전히 즐겼다. 


벨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느끼는 해방감은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무음'과 '방음'에서 벗어난 것인데, 왜 나를 속박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난 느낌일까.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난 20년 넘는 기간 동안 매여있던 것은 단순히 나의 시간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30대 중반, 소리의 자유가 있는 삶을 알게 된 기록.

매거진의 이전글 일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