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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Oct 27. 2023

[리뷰] 너무나 많은 여름이 - 김연수

소설로 이야기하는 우리의 삶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단편소설 때문이다. (물론 장편도 좋아하지만) 그래서 그의 단편소설집은 '무조건'읽는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그동안 내가 접했던 그의 여느 소설과는 조금 결이 다른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일단 책의 두께에 비해 수록되어 있는 소설의 편 수가 무척 많았다.

'이렇게 압축된 짧은 이야기들이라고?'라는 의문과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이기도, 산문이기도 한 것 같은 모호한 경계선 위의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들은 독자들과 직접 만나 들려주기도,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는 낭독회에서 함께 했던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 또는 마치 남의 일인 양 다른 사람을 빌려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자유롭게 삶을 바라보고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의 위치가 모든 걸 결정해, 우리가 감각하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크거나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 없어. 멀고 가까운 것만 있는 거야. 그러니 어떤 대상의 크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어. 그 위치가 우리의 의지를 뜻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작게 만들어버릴 수 있어. 그러다가 아주 멀어지면 어떻게 되지?" "소실점으로 사라집니다." 지훈이 대답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물리적 세계에는 그런 소실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지. 지금도 수많은 것들이 그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있어 이게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의 참모습이야. 그럼 그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풍화에 대하여 中 p. 137)'


작가도  낭독회에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준 이들에게 감사하고 이 세상 속에서 소설을 쓰는 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 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 中 p. 113)'


'너무나 많은 여름이'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다양한 감정들
뜨거움과 그 뜨거움 사이의 시원함의 소중함
그 수많은 여름들이 모여 내 이야기가 되고 , 삶이 되며 그 기억들이 내 삶을 지켜낸다는 것들을 이렇게 소설로 이야기해 주는 작가의 짧은 글들이 참 좋다.

사랑이란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심이다. 그게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다.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그다음의 일들은 저절로 일어난다. 사랑을 통해 나의 세계는 저절로 확장되고 펼쳐진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길.
기뻐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길.
그러기로 결심하고 또 결심하길.
그리하여 더욱더 먼 미래까지 나아가길. ( 너무나 많은 여름이 中 p. 266)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 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내 나이 때의 엄마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먼 훗날 내 나이 때의 열무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너무나 많은 여름이 中 p.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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