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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Nov 02. 2023

[리뷰]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다.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적어도 한 편은 읽어 보는 것이 내 독서의 to do list 중의 하나이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로 음악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희곡과 소설, 시, 산문 등 다채로운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책은 긴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아침 그리고 저녁,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긴, 장편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화를 하는데  대화를 구분하는 기호도 없다. 문체는 간결하고 수식어가 따르지 않는 그야말로 절제된 문장들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더욱더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상상하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호의 있고 없음이 또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북유럽의 추운 지역, 외딴섬에서 어부로 살고 있는 올라이, 지금 방안에서는 아내 마르타가 늙은 산파 안나와 함께 힘겨운 출산을 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올라이는 태어날 아들 요한네스(이미 아들임을, 그래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이름까지 지어놓은 상태이다)에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해 주고 있다.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p. 15)


2부에서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렇게 태어난 요한네스가 노인이 되어있다.

아내 에르나와 절친인 페테르도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고 일곱의 아이들은 장성하여 부모 곁을 떠나 요한네스는 홀로  지내고 있다.
오늘따라 여느 때보다 가벼운 몸으로 산책을 나가고 그 길에서 친구인 페테르를 만나 배를 타고 게를 잡으로 간다. 그 과정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페테르와 오랜만에 하루를 보내게 된다. 친구의 죽음을 알고 있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하루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벼운 몸상태로 친구와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느낀다... 즉 그도 죽음을 맞이했고 영혼의 하루 여정을 담담하게 담아낸 것이었다.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모든 것이 그 자신처럼 나이 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
그러나 물건들은 제각기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p43)


한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것, 그가 살아냈던 행복했던 , 힘겨웠던 과정을 보지 않더라고 그의 독백, 그리고 페테르와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했다. 긴 얘기를 하지 않고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지는  대화만으로도 그 삶의 녹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긴 소설보다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너무 평범하고 단순해서 이것도 이야기가 될까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이렇게 먹먹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짧지만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p.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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