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
'-그래? 넌 이야기가 왜 좋은데?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이⋯⋯⋯⋯⋯ 있어서?
소리가 신기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난 반댄데.
- 뭐가?
-난시작이 있어 좋거든. 이야기는 늘 시작되잖아.
지우가 잠시 먼 데를 봤다.
-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하지 않아? 그게 끔찍 한 이야기면 더.
소리도 시선을 잠시 허공에 뒀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시작조차 안 되면 허무하지 않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그런가?
-응. (p. 66)'
'지우에게 책을 읽어주던 어른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다정했다. 그건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이들의 평온함,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얼마나 난폭하든 또는 얼마나 위험하는 주인공도 또 자신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것임을 아는 이들의 온화함이었다. ( p. 9)'
'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과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 건 아니'라고 했다.'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 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 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재능은 있되 그게 압도적인 재능은 아님을 깨달아서였다. 사실 그걸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p. 130)'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 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 지우는 '그렇다'라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 p.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