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의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다. 가공식품의 홍수, 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삼시 세끼를 차리지 않는 사람의 언어이다.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나는 가공식품과 홍수라는 부정적인 어감이 담긴 단어를 감히 조합하지 못하겠다. 가공식품은 값싸고, 맛있고, 편하고, 아이들이 잘 먹고, 보관도 용이하다. 어쩌면 그렇게 잘 생긴 오각형처럼 균형이 딱 잡혔는지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다섯 가지 중에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데쳐 삶은 소시지, 그냥 그릴에 구워 먹는 소시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훌륭한 반찬이다.
아이들의 밥을 하기 시작하며 식재료를 살 때 성분표를 주의 깊게 읽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그 전에는 생각지도 못 하던 일이다. 딸기 우유를 살 때 원유의 함량을 본다. 어느 딸기우유는 원유가 하나도 안 들고 탈지 환원유와 물, 설탕, 향료, 색소 등으로 채워진 것들도 있다. 지금은 어느 브랜드의 가공 우유가 원유 함량이 제일 높은 지 알게 되었다. 육가공식품을 살 때도 고기 함량을 본다. 되도록이면 돼지고기 함량이 높은 것을 사려고 한다. 성분표에는 내가 모르는 말들이 많이 쓰여 있다. 식품 첨가물들인데 되도록이면 성분이 심플한 것들을 고르려 한다. 이거나 저거나 건강에 안 좋기는 오십 보 백보라고 한다면 뭐,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먹을 것이 아니고 애들한테 먹일 거라 그 <되도록이면>이 습관이 되었다.
데쳐낸 면발로 사리 곰탕을 끓여 수육 한 점 올렸다.
내가 아이였을 시절에는 가공식품이 이렇게 접근성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먹긴 먹었지만 자주 먹진 않았다. 어쩌면 지금에 와서나 먹거리가 흔해지고, 먹거리의 질에 대한 인식이 생겨 가공식품이 안 좋다고들 하지 그때만 해도 귀한 식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장을 보던 시절이 아니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고 생선을 사고 고기를 사서 요리했다. 대형 마트란 장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요즘은 냉동 시제품으로 많이 먹는 돈가스, 만두, 튀김 같은 것들은 집에서 직접 다 만들어 먹었고 치킨은 아빠의 월급날을 기다려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을 수 있었다. 요즘처럼 에어 프라이어에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가공식품은 없었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사정이 그러하니 식품 첨가물이나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인식이 별로 없었고, 인식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공식품과 식탁은 가깝지 않았으니 우리 엄마의 식탁은 그만큼 더 건강했고, 엄마는 더 고단했을 것이다.
조금은 귀찮은 전처리 과정.
요즘은 다행인지 어쩐 건지 가공식품이 흔해졌다. 건강을 생각해 피해야 하는데, 피하는 것이 어려워질 만큼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 된 세상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식품 첨가물을 조금이라도 빼서 먹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뜨거운 물에 데치기만 해도 유해한 기름과 첨가물이 상당 부분 제거된다 하니 굳이 귀찮게 그렇게 해서 먹는다. 이것도 그나마 뜨거운 물에 데쳐낼 수 있는 가공식품에 한해서 가능한 얘기이다. 치킨 너겟까지 데쳐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니 햄, 소시지, 어묵, 라면 같은 것들이라도 한번 삶아 내고 요리한다. 그것이 나의 정성, 나의 마음, 내 품에서 내가 만든 밥을 먹을 때나 가능한 나의 선물이라 하면 너무 거창하려나.
햄을 데치면 기름이 동동 뜨며 부연 물이 우러나온다. 아마 색소, 기름기, 방부제 이런 것들이 빠질 것이다. 소시지는 햄보다는 덜 하지만 비슷하다. 어묵도 데쳐내면 기름기가 상당한데 어묵을 데쳐낸 물에서는 정말 맛있는 꼬치 어묵 냄새가 나서 데쳐내기 아까울 때도 많다. 라면도 한번 데쳐내면 라면 국물에 기름기가 눈에 띄게 적어진다. 그렇게 유난 떨고 귀찮게 굴 거면 그냥 먹지 마!!라고 할 수가 없다. 신선 식품만 먹으며 살기는 너무 팍팍하다. 돈도 더 많이 들고, 힘도 더 많이 들고, 시간도 더 많이 드는데 내 솜씨로는 백 퍼센트 맛 보장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환경오염에, 미세먼지, 바이러스로 힘든 세상을 사는 값으로 가공식품의 은혜 정도는 입어도 되지 않을까. 최소한의 정성을 갖추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햄을 삶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