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Dec 20. 2022

손이 시려워,

꽁꽁꽁!! 도 모자라 쩍쩍쩍!!

나는 수족냉증이 있다. 일 년 내내 손 발이 차다. 한 여름에도 뙤약볕을 맞으며 야외 활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에 손발이 먼저 차게 식는 사람, 나는 추위를 심하게 타기도 하지만 춥지 않은 계절에도 손발은 언제나 차다. 거의 일 년 내내. 12월부터 시작되는 맹추위에는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나도 괴롭지만 혹시라도 남 하고 악수라도 할 일이 생길라 치면 그것도 조심스럽다.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상대방이 놀라기 때문에 최대한 손을 안 내밀거나, 장갑 낀 손을 내민다. 차가운 손과 발은 언제나 문제이자 걱정이었다. 애를 낳으면 체질이 변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손발이 더 차가워졌으니, 엄마는 생강청을 해주시고 시어머니는 흑염소 진액을 갖다 주신다. 그래도 차다. 그야말로 뭘 어떻게 해도 “찰놈찰” 인가보다. 혹시 나는 항온 동물이 아니라 변온동물인가.


그렇게 내 손과 발은 찬 것만 문제일 줄 알았는데,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이런 동요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게 생겼다. 손이 시려워, 쩍, 발이 시려워 쫙. 찬 바람이 들고 날이 건조해지니 본격적으로 손 발이 찬 것도 모자라 건조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진 않았는데 애 낳고 이렇게 되었다. 애를 낳고 체질이 바뀌어 손이 따뜻해진 것이 아니고, 애 낳고 정신없이 살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손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를 낳고부터 정말 손에 물 마를 틈이 없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기저귀를 수시로 갈며 손 씻고, 분유 타기 전에 손 씻고, 이유식에 간식 챙기기 전에 손 씻고, 먹이고 나서 애 씻기면서 씻고, 흘린 자리 청소하고 나서 씻고, 과일 깎으면서 씻고, 밥하며, 설거지하며 씻고 씻고 또 씻으니 손에 윤기가 남아 있을 리가.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져 씻는 것도 모자라 알코올 소독제까지 수시로 바르니 정말 손이 말도 못 하게 미워졌다. 속상하게.


나는 스스로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며 은혜를 베푸는 어머니와는 거리가 먼데, 그나마 빨래를 세탁기가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 고작 네 식구 사는 소박한 살림을 꾸리는데, 좋은 화장품, 핸드크림이 흔해진 세상을 사는데, 그래도 이렇게 손이 망가지고 갈라지는데 생각할수록 옛날 엄마들이 존경스럽다. 대식구 살림을 빨래까지 손으로 하셨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보일러로 뜨거운 물 쓰기도 여의치 않았을 텐데. 평일에 성당에 가면 버스를 타고 미사에 오시는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가 계시다. 미사가 끝나면 할머니를 내가 댁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는데, 날씨가 너무 춥다고, 건강 조심하시라고 했더니 겨울이 이 정도는 추워야 겨울이지 옛날엔 더 추웠다고 하신다. 요새는 화장실도 집에 들어있고, 부엌도 집에 들어 있으니 하나도 안 힘들다고,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의 라때 이야기엔 정말 숙연해진다. 내 손을 잡으시며 아이고, 이렇게 손이 차서 워뜨켜, 하시는 할머니 손은 따뜻하다.


나의 고사리 손, 내가 좋아하는 사진인데 오늘은 손만 보인다.


올해는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 새로 이사 온 집이 예전 집 보다 더 추운 느낌이다. 내 손발도 더 차고, 시리고, 건조하다. 아이와 공부를 마치면 하이 파이브를 하는데, 오늘은 그때 찍은 사진에서 내 손만 보인다. 세상에, 너무 쪼글쪼글 해 졌다. 예전부터 매니큐어엔 관심이 없어 색칠하고 꾸미던 손은 아니었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웠어도 이렇게 밉진 않았는데 몇 년을 손을 아주 열심히 씻으며 살았더니 손이 변했다. 다른 곳은 쪼글쪼글해지지 않았는데 어쩜 손만 이렇게 되었을까. 바셀린을 손에 잔뜩 바르고 위생 장갑을 낀다. 장갑이 커서 손을 쓰기 불편해 그 위에 라텍스 장갑을 한 겹 더 꼈다. 그리고는 한 나절을 지내니 조금 나아지는데 저녁 한 상 해 먹고 치우고 애들 씻기고 나니 말짱 도루묵이다.


내 손. 어쩌지?   

혹시 나도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 어머니?

그럴 리가.


작가의 이전글 망각의 축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