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의 취학 통지서가 나왔다. 아니, 프린트로 뽑았다. 취학 통지서에는 예비소집 일정까지 적혀있었다. 입학 전 준비를 내년 2월로나 생각하고 있던 초보 학부모는 12월에 나와버린 취학 통지서에 사뭇 당황했다. 아니, 벌써? 예비소집까지?
통지서에 적혀있는 예비소집 일자는 평일 오후 한 시. 그런데 유치원 방학 기간이라 동생을 데려가도 되는지가 궁금하다. 친구들 단톡방에도 물어보고, 오며 가며 만나는 초등학생 아이 키우는 엄마들한테도 물어보는데 공통적인 대답이, 기억이 안 나….이다. 코로나 시기라서 어영부영 넘어가서 그런 것 같다고도 하고, 대면으로 했는지 비대면으로 했는지, 자기 혼자 가서 싸인만 하고 왔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물어본 나도, 대답하는 상대방도 모두 당황한다. 그때 현직 초등교사 친구가 등판했다. 동생도 데려가도 되고, 아이가 있는지,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너만 가면 안 되고 주인공을 꼭 데려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올해 4학년, 2학년인 그 친구네 딸들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업무를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는데 우리 딸들 예비소집은 정말 기억이 안 난단다.
취학 통지서를 받은 큰 아이 친구 엄마들은 다 묘한 감정에 빠졌다. 세 살 때 어린이 집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동네 친구로 잘 지내는 아이들인데, 기저귀 차고, 말도 잘 못 하던 아기들이 어느새 커서 학교에 간다니, 더구나 큰아이 친구들은 거의 첫째들이 많아서,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초보 학부형의 묘한 마음을 모두 공유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예비 소집의 감정과는 또 다르게, 예비소집의 실제 과정은 어느덧 뿌옇게 잊히나 보다. 이미 아이가 초등학생인 엄마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예비소집에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걸 보면.
잊기를 잘했지, 장염의 아픔. 잊지 않았다면 꿀맛을 다신 못 볼 뻔했어.
얼마 전에 생굴을 사고 통삼겹살 구이를 해서 굴 보쌈을 해 먹었다. 올해 초에 생굴을 잘 못 먹고 노로 바이러스로 크게 고생한 후로는 생굴은커녕 익은 굴도 먹지 않겠다고 진절머리를 냈었는데, 그 아픔을 홀라당 까먹고 생굴을 고기와 김치와 함께 먹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그때 또 한 번 느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망각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걸. 망각이 있으니 첫째를 낳으며, 또 돌 전까지 키우며 했던 만 가지 고생을 다 까먹고 둘째를 낳았을 것이다. 망각이 있으니, 아이들도 아침에 엄마가 불같이 화낸 것을 잊고 하원하며 엄마에게 웃으며 달려올 것이다. 일상에서 깜빡깜빡하는 정신머리는 삶의 질을 다소 하락시키는 면이 있지만, 인간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망각이란 없으면 안 될 정말 축복 같은 존재이다. 다 기억하고는 살 수가 없다. 창피해서, 미안해서, 민망해서, 그렇게 머리가 복잡해서 말이다.
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애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 말이다. 아니, 12시에 집에 오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애들 보내고 집에 와서 씻고 커피 한 잔 마시면 애가 하교를 한다는 거다. 학원을 돌리는 것도, 집에서 삐대는 것도 다 여의치가 않다. 엄마표 학습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하나, 이것 저것 학습지도 알아보고 엄마표 독서 논술도 기웃거리고 있다. 집에 있으면 활동량이 줄을 것 같아 태권도나 줄넘기도 알아봐야 하나, 저학년이니 미술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온갖 것들이 다 고민이다. 취학 통지서를 생각보다 빨리 받았더니, 이 고민들이 더 구체화되어 머릿속을 뱅뱅 돌았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 동네 엄마들, 친구들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지금 불과 2년 뒤면 기억조차 안 날 만큼 소소한 고민들을 하고 있구나. 망각의 은혜를 바라며, 오늘의 고민, 오늘의 걱정을 적당선에서 넘겨 보기로 한다. 둘째가 입학할 무렵, 나도 그렇게 되려나. 첫째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