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라고.
아이들의 겨울방학이다. 애들이 온종일 집안을 어질러 놓는 것도 모자라 삼시 세끼 차리기에 엄마는 출근을 넘어 특근을 하는 기분이다. 보통은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오고, 내 손으로 차려 주는 밥은 저녁 한 끼뿐이었는데 방학이 되니 삼시 세끼가 다 내 몫이 되어 하루 종일 먹고 치우다가 끝나는 날도 있다. 자연히 한 번에 만드는 음식의 양이 많아졌다.
미역국도 한 솥이 되고, 카레도 한 솥이 된다. 볶음밥도 산처럼 볶았다. 의도한 바는 아닌데 무의식이 내 손을 지배한 모양이다. 다음에 한 번 더 먹자. 카레는 카레 우동으로 한 번 더 먹고, 볶음밥은 위에 오믈렛을 얹어 오므라이스로 한 번 더 먹자는 무의식으로 평소 먹는 양의 두 배씩은 더 만들어 냉장고에 먹을 것들이 그득하다. 냉동실에 냉동식품으로 김말이, 탕수육을 사놓았는데도 이번 주말엔 핫도그와 떡갈비를 더 살 궁리를 하는 중이다. 일요일에 먹을 떡국 재료도 사놓고 김, 햄, 달걀의 재고를 확인한다. 평소에는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것을 싫어하는 나인데도 애들 방학 앞에서는 장사 없나 보다. 집 앞 마트에서도 배달을 해 주고 새벽 배송도 가능한 세상이라 집에 식재료가 떨어질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만들어 쟁이고, 사서 쟁이는 심리란, 뭔가 큰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것 마냥 진지하기까지 하다.
가끔 단수가 될 때가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물을 받아야 할 정도의 단수를 경험한 적은 없는데 예전엔 종종 하루 이상 단수가 예정되어 욕조에, 들통에 물을 받아 놓고 써야 했던 일이 몇 번 있었다.그런 공지가 내려오면 아주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욕조에 가득 채우고, 커다란 들통마다 물을 가득 채워 놓고는 혹시라도 물이 떨어질까 아껴 쓰고 아껴 쓰다 보면 단수가 해제되는 날 물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물을 많이 받아 둔 것이 허무할 만큼, 혹은 평소엔 단수 될 때 처럼 의식하고 물을 아껴 쓰지 않았다는 것이 뜨끔할 만큼 말이다. 물을 동이 동이 받아 두던 그 불안한 마음, 아마 이것저것 먹을 것을 쟁이는 마음이 그런 불안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일은 단수 에피소드가 생각날 만큼이나 큰 압박인가 보다.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닌데, 앞으로도 수없이 닥칠 일인데 말이다.
냉장고 반찬 그릇들을 보며 버리지 말고, 까먹지 말고 꼭 다 먹어야지, 다짐을 했다. 많이 사면 물러서 버리고, 물려서 버리고, 많이 만들어서 냉장고에 잘 쟁여 놓아도 까먹고 먹지 않아 버린 반찬들이 많아서 냉장고는 할랑하게 유지하는 편인데도 꼭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아이들의 방학이 되면 나는 손이 커진다. 사고, 쟁이고, 만드느라 몸도 마음도 아주 바쁘다. 다음 방학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이게 뭐라고 불안한 거야, 자존심 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