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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29. 2022

방학, 엄마는 손이 커진다.

이게 뭐라고. 

 아이들의 겨울방학이다. 애들이 온종일 집안을 어질러 놓는 것도 모자라 삼시 세끼 차리기에 엄마는 출근을 넘어 특근을 하는 기분이다. 보통은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오고, 내 손으로 차려 주는 밥은 저녁 한 끼뿐이었는데 방학이 되니 삼시 세끼가 다 내 몫이 되어 하루 종일 먹고 치우다가 끝나는 날도 있다. 자연히 한 번에 만드는 음식의 양이 많아졌다. 


 

 미역국도 한 솥이 되고, 카레도 한 솥이 된다. 볶음밥도 산처럼 볶았다. 의도한 바는 아닌데 무의식이 내 손을 지배한 모양이다. 다음에 한 번 더 먹자. 카레는 카레 우동으로 한 번 더 먹고, 볶음밥은 위에 오믈렛을 얹어 오므라이스로 한 번 더 먹자는 무의식으로 평소 먹는 양의 두 배씩은 더 만들어 냉장고에 먹을 것들이 그득하다. 냉동실에 냉동식품으로 김말이, 탕수육을 사놓았는데도 이번 주말엔 핫도그와 떡갈비를 더 살 궁리를 하는 중이다. 일요일에 먹을 떡국 재료도 사놓고 김, 햄, 달걀의 재고를 확인한다. 평소에는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것을 싫어하는 나인데도 애들 방학 앞에서는 장사 없나 보다. 집 앞 마트에서도 배달을 해 주고 새벽 배송도 가능한 세상이라 집에 식재료가 떨어질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만들어 쟁이고, 사서 쟁이는 심리란, 뭔가 큰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것 마냥 진지하기까지 하다.


 가끔 단수가 될 때가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물을 받아야 할 정도의 단수를 경험한 적은 없는데 예전엔 종종 하루 이상 단수가 예정되어 욕조에, 들통에 물을 받아 놓고 써야 했던 일이 몇 번 있었다.그런 공지가 내려오면 아주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욕조에 가득 채우고, 커다란 들통마다 물을 가득 채워 놓고는 혹시라도 물이 떨어질까 아껴 쓰고 아껴 쓰다 보면 단수가 해제되는 날 물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물을 많이 받아 둔 것이 허무할 만큼, 혹은 평소엔 단수 될 때 처럼 의식하고 물을 아껴 쓰지 않았다는 것이 뜨끔할 만큼 말이다. 물을 동이 동이 받아 두던 그 불안한 마음, 아마 이것저것 먹을 것을 쟁이는 마음이 그런 불안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일은 단수 에피소드가 생각날 만큼이나 큰 압박인가 보다.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닌데, 앞으로도 수없이 닥칠 일인데 말이다. 


떡볶이 떡도 쟁였다. 

 냉장고 반찬 그릇들을 보며 버리지 말고, 까먹지 말고 꼭 다 먹어야지, 다짐을 했다. 많이 사면 물러서 버리고, 물려서 버리고, 많이 만들어서 냉장고에 잘 쟁여 놓아도 까먹고 먹지 않아 버린 반찬들이 많아서 냉장고는 할랑하게 유지하는 편인데도 꼭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아이들의 방학이 되면 나는 손이 커진다. 사고, 쟁이고, 만드느라 몸도 마음도 아주 바쁘다. 다음 방학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이게 뭐라고 불안한 거야, 자존심 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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